[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 (20) 서귀포시 상예동 책방 카페 ‘그건, 그렇고’

마을책방은 단순한 기호품을 파는 곳이 아닙니다. 대형서점처럼 책을 어마어마하게 팔아치우는 곳은 더욱 아닙니다. 후미진 도심 골목이나 시골 언저리에서 마을책방을 만난다면 그것은 행운이지요. 마을 초입 팽나무 아래 마을사람들이 모여들듯 책벌레들이 도란도란 어우러질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곳입니다. 제주도 마을 곳곳에 작은 책방들이 사람을 살리고, 다시 사람이 마을을 살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마을책방의 가치입니다. [제주의소리] 시민기자 고봉선 시인이 바람을 쐬듯 책방마실을 다니고 있습니다.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마을 책방’에서 책방지기의 책 살림 이야기를 시인을 통해 듣습니다. [편집자 글] 

돌이라도 씹어먹을, 한라산이라도 옮길, 가시낭에 걸어져도 잘 때인 젊음, 참으로 좋을 때다. 이번에 내가 찾은 책방 카페 “그건, 그렇고”는 젊음이 가득한 책방이었다. 이 봄날, 화사하게 피어나는 꽃들처럼, 초록을 길러내는 연둣잎처럼 책방지기도 화사했다. 여행에서 제주에 반한 김중범 씨는 6년 전 게스트하우스를 시작으로 제주에 정착하고, 젊음의 길을 돌고 돌아 이제 오롯이 “그건, 그렇고”의 책방지기가 되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 앞 널따란 주차장 둘레에 핀 뽀리뱅이가 4월 햇살을 즐기고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을 출산하다”
책방지기가 여행에서 만난 제주는 바다도 하늘도 너무 아름다웠다. 어디에 간들 하늘이나 바다가 없으랴만, 김중범 씨가 만난 제주 바다와 하늘은 특히 더 아름답고 더 특별했다. 금능해수욕장에서 만난 쪽빛 바다는 말 그대로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영영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바다였다. 그 하늘과 바다에 반한 김중범 씨는 결국 서귀포시 상예동에 눌러앉았다. 

상예동에서 김중범 씨는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했다. 그리고 3년이란 시간이 흐르다 보니 슬슬 좀이 쑤셨다. 정신이 고팠다. 짬이 날 때마다 책을 읽었다. 책이 쌓이는 걸 보며 정신이 고팠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쩌면 우리 삶 자체가 신들의 세계인지도 모른다. 책방을 하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하고 3년이 흐른 어느 날, 김중범 씨는 신들의 세계에 진입한 듯 게스트하우스의 자궁을 빌려 책방을 품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저 책이 좋았을 뿐이다. 그리고 다시 3년, 게스트하우스는 책방을 품을 수 없게 되었다. 코로나19 때문이다. 할 수 없이 게스트하우스의 자궁을 빠져나온 책방은 올해 3월, 이곳으로 이사했다. 그러고 보면 제주에 정착한 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게스트하우스를 대신한 카페”
게스트하우스의 분위기는 늘 시끌벅적했다. 김중범 씨는 그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다. ‘차라리 책방을 해볼까?’ 자연스럽게 책방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서가를 꾸미고 책을 갖다 놓았다. 손님들이 묵는 동안 읽을 수 있는 책과 함께 판매가 시작됐다. 그렇게 게스트하우스 자궁에 북스테이로 착상한 책방은 독립을 꿈꾸며 자랐다.

그런데 코로나19가 공포를 휘몰고 다녔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툼벙! 책방을 자궁 밖으로 밀어낸 게스트하우스는 뒤로 물러났다. 자식을 살리고픈 어미의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김중범 씨는 게스트하우스와 안녕을 고하고 책방을 데리고 나왔다. 하지만 게스트하우스를 대신할 조력자가 필요했다. 책방 혼자서는 아직 설 수 없기 때문이다. 비록 게스트하우스에서 빠져나왔다고는 하나 책방은 아직 유아 단계다. 홀로 설 수 있을 때까지, 아니면 영원한 동반자로서 누군가는 품어줘야 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에서 손님들이 차를 마시면서 읽을 수 있는 책들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근본적으로 타고나기를 모든 생명은 먹고살아야 한다. 특히 사람은 먹고사는 것 외에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누리기 위해서는 또한 경제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책방 혼자서는 어림도 없다. 물려받은 재산이라도 있다면 모르겠지만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한다. 산 입에 거미줄 치게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책방 옆엔 큼지막한 관광 식당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관광객 손님도 꽤 있을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처음 이곳으로 책방을 옮길 땐 관광객을 믿는 구석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이다. 그도 그럴 것이 책방은 쉽사리 눈에 띄지 않았다. 내가 침착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책방 앞에 도착하고서도 한참을 헤맸다. 입구에 간판이 있다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책 냄새를 맡을 줄 아는 사람, 즉 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보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 눈은 관심 있는 것에 쏠리기 마련이다. 

2009년 제주도 한 바퀴 도보여행에 도전했을 때다. 하루는 중학교 동창 몇몇이 응원 겸 같이해 주었다. 그때 나와 같이 걸었던 친구들은 그랬다. “봉선이, 눈 좋대. 우리 눈엔 안 보이는데 봉선이 눈엔 손톱만 한 풀꽃들도 다 보여.” 나에겐 풀꽃이 관심 대상이었기 때문에 발밑으로 시선이 가 있다는 증거다. 친구들은 풍경을 중시 여겼기에 앞에 펼쳐지는 경관이 관심의 대상이다. 책 냄새를 맡지 못하면 지나는 손님이 책방에 들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SNS 등을 보며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곳으로 오기까지 상예동에서만 세 번 이사했는데, 공교롭게도 책방은 모두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판매되는 책들은 주로 에세이, 시집 소설로 80%가 독립출판물이다. 모두 책방지기가 좋아하는 장르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게스트하우스와 책방”
게스트하우스에선 밤낮이 없다. 물론 출퇴근 개념도 없다. 조식까지 공급하기 때문에 아침부터 종일토록 움직여야 하는 일이다.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다. 그저 몽롱한 의식 속에서 습관적으로 하는 일들이다. 날마다 녹초가 된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른다. 날마다 하는 일이 똑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방은 그렇지 않다. 책방 역시 거의 같은 일들이지만, 그래도 하루는 미묘하게 다르다. 일단 출퇴근이 있다. 

문제는 수입이다. 가장 호황기를 기준으로 했을 때 수입은 게스트하우스가 훨씬 낫다. 그러므로 처음엔 책방을 수입원으로 삼지 않았다. 되면 좋은 거고, 안 돼도 책을 보는 손님들이 계시기 때문에 이로 만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게스트하우스는 떠나갔다. 다른 수단을 동원해야 했다. 그래서 책과 함께 시원한 음료를 취급하는 책방 카페로 방향을 틀었다. 

3년 동안 게스트하우스만 하다가 이사하며 북스테이를 시작했다. 곁에 책이 있다는 사실은 행복의 크기를 높여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소리소문없이 코로나19 바람이 불어닥쳤다. 그 바람이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잠시 머물다 떠날 것이라 여겼던 그 바람은 점점 거세지며 공포를 조장했다. 그렇게 코로나19는 주 수입원이던 게스트하우스를 쥐고 흔들었다. 김중범 씨는 눈물을 머금고 게스트하우스와 안녕을 고해야 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판매되는 책들은 주로 에세이, 시집 소설로 독립출판물들이다. 모두 책방지기가 좋아하는 장르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은 게스트하우스와 달리 정신적인 노동이 더 크다. 그 정신적인 노동 뒤엔 누릴 수 있는 정서가 있다. 그 정서는 곁가지를 치며 또 다른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책방지기 김중범 씨는 손님을 위해서 기왕이면 더 맛있는 커피, 기왕이면 더 맛있는 미숫가루를 구하기 위해 제주도 구석구석을 찾아다닌다. 게스트하우스를 할 때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예를 들어 미숫가루 하나를 구하기 위해 세화에 간다고 했을 때, 오가는 시간이 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시간은 무의미하지 않았다. 곁가지에서 여유가 뻗어나고, 또 다른 관심의 폭을 넓혀주는 기회가 따랐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그동안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날마다 똑같은 일을 했다. 손님도 늘 신사적인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새벽이든 한밤중이든 항시 ‘춥다, 어느 방이 시끄럽다.’ 등 컴플레인이 기다린다. 전화조차도 개인적인 건 못 받을지라도 하우스 안에서의 일은 늘 대기해야 했다. 대놓고 표현은 못 해도 컨디션에 따라 짜증 날 때도 있다. 욕도 나오려고 한다. 하지만 다 참아야 한다. 늘 예민한 상태였다. 당연히 신경이 곤두섰다. 그런데 책방을 하면서 좀 편안해졌다. 심리적으로 훨씬 보드라워졌다.

“때로는 운명”
내가 운명론자는 아니다. 그래도 무시할 수 없는 게 운명임을 종종 느낄 때가 있다. 책방지기가 제주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걸어온 길이 운명은 아니었을까. 책방지기의 이야기를 들으면 든 생각이다. 누구에게나 적성이며 취향, 타고난 재능이 있다. 일찌감치 제 갈 길로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재능조차 발견 못 하고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있다.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 길로 가는 사람도 있다. 나 역시 그랬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취향이나 적성을 무시한 삶은 녹록지 않았다. 자꾸만 삐거덕거리고 엎어지며 무릎이 까졌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치유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온몸에 삐죽삐죽 솟아있던 가시들도 사라져갔다. 

한때는 형제들도 말을 못 붙일 정도로 내 몸은 온통 가시투성이였다. 이런 내가 언제부터인가 시를 쓰게 되었고, 독서지도를 하게 되었다. 그 후 한국해양아동문화소 연구소장인 장영주 선생님께서 동화를 써 보라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몽유계 동화를 써보고 싶었었다. 이를 기회로 아이들과 주고받던 이야기를 동화로 쓰기 시작했다. 부를 누리지는 못할지라도 마음만은 지극히 편안해졌다. 돌이켜보면 가야 할 길이 아닌 길을 걸어서 그런 게 아닐까. 보이지 않는 힘, 즉 운명이 내 손을 잡은 건 아닐까도 생각되었다. 결론은 책방지기도 책방을 하면서 얻는 정서와 여유로 아직 가지 못한 길을 찾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책방지기는 지금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가는 중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전통이란 말에 특별한 의미가 담긴 건 아니다. 무엇을 갖다 붙이던 자유겠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엔 예전의 동네책방이 돌아오길 바라는 소망이 깔려 있는지도 모른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기회는 언제나 우릴 돕기 위해 찾아온다. 하지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떠날 수밖에 없다. 책방지기가 미숫가루를 찾고 녹차밭을 찾아다니는 경험은 언젠가 다가올 기회를 위한 또 다른 준비가 될 것이다. 게스트하우스가 가야 할 길로 가기 위한 일종의 수련이었다면 이제 한 발 더 앞으로 디딘 셈이다. 

내가 처음 독서지도를 할 땐 방문 수업이었다. 몇 년 후 가게를 빌려 외도에서 하게 되었다. 방문 수업이란 과정이 없었다면 생각도 못 할 일이다. 처음엔 임대료가 연 4백만 원이었다. 그런데 계약 기간인 5년 동안 집세는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았다. 계약 기간이 끝나갈 무렵 은근히 걱정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연세는 900만 원으로 올랐다. 게다가 없던 보증금도 900만 원이 붙었다. 당장 1,800만 원을 마련해야 한다. 오함마로 뒤통수를 맞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다른 곳으로 옮긴다 해도 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고 때려치울 수도 없다. 고민 끝에 철학관을 하는 친구에게 갔다.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친구는 나의 결정을 도와주었다. 친구 덕분에 허름해도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시골집을 리모델링했다. 핑계에 집을 고치고, 나만의 시간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비록 많은 회원은 아닐지라도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만약 외도에서 5년이란 시간이 없었다면 이 또한 어림없는 일이다. 집에서 일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손, 즉 운명의 끌림에 따라 난 걸어온 것이다.

책방지기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가 만약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책방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게스트하우스가 있었기에 그 안에서 북스테이를 할 수 있었고, 코로나19란 바람이 들이닥칠 때 책방은 살아남았다. 그러고 보면 본인만 모르고 있었을 뿐, 그가 제주에 눌러앉을 때 이미 책방을 하라는 무언의 암시가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야간에 바라보는 책방 정면이다. 판매되는 책들은 주로 에세이, 시집 소설로 독립출판물이다. 모두 책방지기가 좋아하는 장르이다. 사진은 책방 ‘그건, 그렇고’에서 제공해 주셨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게스트하우스에서”
게스트하우스는 공용으로 사용하는 공간이 많다. 그러므로 호텔이나 펜션보다 제한되는 게 많다. 행동에 많은 제약을 둔다는 뜻이다. 그런데 어딜 가나 안하무인인 손님이 있다. 그렇다고 일일이 터치할 수도 없다. 서로가 불쾌할 뿐이다. 조금만 배려해준다면 좋으련만, 이를 어기는 손님이 있을 땐 힘들다. 불쾌했던 경험이 적잖다. 

종종 물음표 손님도 있다. 책방지기는 휴게실에서 손님들과 자주 마주치게 된다. 마주치는 손님 중에서 무언가 궁금하지만 끝내 물어볼 수 없었던 손님이 있었다. 그 손님은 게스트하우스에 자주 오는 분이다. 그런데 업무도 아니고 관광도 아닌 것 같다. 무엇 때문에 왔는지를 모른다. 낮에 어디를 나가는 것 같지도 않다. 며칠씩 묵으면서도 오직 방에만 계신다. 그저 휴게실에 와서 책만 가져간다. 궁금하지만, 분위기상 물어볼 수 없다. 기분이 상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김중범 씨는 그저 조용히 바라만 보았다. 배려와 존중이 필요한 것 같았다.

보통 며칠씩 있게 되면 친하게까지는 아니어도 말을 풀고 가벼운 인사 정도는 주고받게 된다. 하지만 그분은 몇 번 오셨는데도 대화를 해본 적이 없다. 객실에 계시지만 얼굴 또한 보기가 힘들다. 단순한 뇌피셜이지만, 그 손님은 아마도 업무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제주로 오는 게 아닐까. 김중범 씨가 주저앉을 정도로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은 손님을 불러들이기에는 충분한 조건을 갖췄다. 게다가 그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엔 손님이 좋아하는 책까지 있다. 최적의 쉼터다. 모든 시름 다 내려놓고 실컷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 최상의 휴식이 아닐까. 물론 나만의 뇌피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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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 게스트하우스와 책방을 같이하던 때의 간판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을 즐기는 젊은이”
게스트하우스에서 북스테이를 할 때는 거의 하우스 손님이 고객이다. 책방 손님이 관광객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근처에 사는 도민이 많이 온다. 대부분 육지에서 이주한 젊은이들이다. 자녀교육을 위해 이주한 분들일 거라 여겼다. 하지만 아니다. 그냥 젊은이들이다. 책을 찾아오는 이 젊은이들에게 참 고마운 생각이 들면서도 기뻤다. 

요즘은 책 읽는 젊은이들이 드물다. 독서습관이 길들지 않은 때문이다. 나의 세대에선 누가 독서습관을 길들여줘서 책을 읽은 게 아니다. 그냥 읽었다. 전기도 없던 시절, 난 등잔불 밑에서 책을 읽었다. 만화책도 읽으면 안 되는 시대였다. 만화책을 읽으면 불량 학생이다. 그러므로 만화책은 이불속에 숨어서 읽어야 했다. 다행인지 모르지만 난 만화책을 선호하지는 않았다. 동화책이 좋았다. 지금 내 집엔 읽어보지도 않은 책들이 꽤 있다. 그만큼 책이 넘쳐나는 시대다. 하지만 내가 자랄 땐 정말 책이 귀했다. 넘치는 만큼 책과 멀어지는 사람도 많다.

나에게는 오빠가 한 분 계시다. 그런데 좀 유별났다. 어느 동네 누구네 집에 동화책이 있다면 오빠는 어떻게든 그 책을 빌려왔다. 그리고 책꽂이에 꽂아두면 나는 그 책을 밤새워 읽었다.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내 아이들도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그래서 책을 읽으라는 소리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독서는 습관이다. 유혹의 요소가 너무 많은 요즘이다. 그 유혹을 마다하고 책을 찾아오는 젊은이들이 부러우면서도 기뻤다. 책들은 에세이, 시, 소설이 주를 이루며 독립출판물이 80% 정도다. 다른 장르는 모르기 때문에 섣불리 갖다 놓지 못한다고 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판매되는 책들은 주로 에세이, 시집, 소설로 독립출판물들이다. 사진은 책방 ‘그건, 그렇고’에서 제공해 주셨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에너지원, 연금술사”
김중범 씨는 지금도 무언가를 하다가 ‘이게 맞나?’ 싶을 때는 “연금술사(저자 파울로 코엘료, 역자 최정수, 출판 문학동네)”를 꺼내서 읽는다. 20대 초반에 처음 이 책을 읽었다는데, 그때 이 “연금술사”는 김중범 씨를 거의 흔들었다고 했다. 

목표를 향해 나가다 보면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서 방해요소가 나타난다. 힘든 일도 있다. 그때 책 “연금술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결론을 내려준다. 그래서 책방지기는 힘들 때마다 이 책을 읽는다. 수십 번 읽었지만 지금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책 “연금술사”가 김중범 씨에겐 에너지원인 셈이다. 용기야말로 만물의 언어를 찾으려는 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사람이 어느 한 가지 일을 소망할 때, 천지간의 모든 것들은 우리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뜻을 모은다. 김중범 씨는 이 책에서 용기를 얻는다. 

소년 산티아고의 부모는 아들이 신부가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산티아고는 양치기가 되기로 했다. 세상을 두루 여행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현실과 타협하기보다는 아들을 지지해 주었다.

양을 치던 산티아고는 이집트 피라미드로 가는 꿈을 연달아 두 번 꾼 뒤 늙은 왕을 만난다. 늙은 왕은 자아의 신화를 찾기 위해 떠나라고 했다. 앞날을 결정할 때 쓸 수 있는 우림과 툼밈이라는 보석도 주었다.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스스로 결정을 내리도록 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남들이 뭐라고 하지는 않을까, 웃지는 않을까,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살 때가 많다. 늙은 왕의 말처럼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 내는 것이 세상 모든 이에게 부과된 의무인지 모른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우리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줄 것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는 나를 중심으로 나가야 한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이치다. 

아프리카에 도착한 산티아고는 단검에 한눈팔다가 전 재산을 잃어버렸다. 한눈을 팔았던 대가다. 살다 보면 예기치 불행이 따른다. 이를 깨닫는 데도 수업료가 필요하다. 이 수업료야말로 생 자체를 휘청거리게 할 정도로 비싸다. 산티아고는 다시 양치기로 돌아가고자 크리스탈 가게에서 일했다. 살면서 때로는 원치 않았던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하나의 과정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에서 돌아오는 길, 엉뚱한 곳으로 차를 돌렸다. 막다른 골목길인 줄도 모르고 달리던 길에 일본붓꽃이 줄지어 있다. 낯선 길엔 언제나 새로운 만남이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원한다면 양치기로 돌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피라미드에 갈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산티아고는 사막을 건넜다. 꿈에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자아의 신화는 진정한 이유로 다가온다. 우리는 수없이 많은 길을 돌아가지만 언제나 한곳을 향해 가고 있다. 오아시스에서 산티아고는 매의 신호를 통해 사막의 표지를 전하고, 사흘 동안 죽음을 미룰 수 있는 금을 얻게 된다. 사랑은 결코 자아의 신화와 결별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 준 여인도 만난다. 

훌륭한 스승은 말로 가르치지 않는다. 오직 행동을 통해 가르칠 뿐이다. 진정한 연금술사는 자아의 신화를 몸소 살아내려는 자다. 산티아고는 연금술사를 만나 진정한 자아의 신화를 조금씩 찾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한순간에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때론 죽을 위기를 겪었고, 꿈보다 더 소중할 것 같은 운명의 짝을 만나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산티아고는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과연 나의 소리에 얼마나 귀를 기울이고 있을까? 아니다, 나는 언제나 합리화를 위한 변명만을 일삼고 있을 뿐이다. 뒤에 두고 온 것들을 생각에서 지우기란 힘든 일이다. 연금술사는 결코 말로 가르치지 않았다. 오직 터득하도록 했다.

우리는 성공을 찾아 어디로든 떠날 준비에 늘 조급하다. 하지만 그 조급한 마음도 원하는 건 한곳에 이르는 거다. 바로 자아의 신화 그곳에. 그렇다고 자신을 질책할 필요는 없다. 조급함 역시 마음이 살아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시련도 꿈의 일부다. 그러고 보면 산티아고가 보물을 찾아가는 동안의 날들은 빛나는 시간이다. 그 과정에서 이전에 꿈꾸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했다. 해보겠다는 용기가 없었다면 꿈도 꿀 수 없었을 것들이다. 피라미드 앞에서 산티아고는 무장한 병사의 꿈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보물이 어디에 있는지를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가장 어두운 시간은 바로 해 뜨기 직전이다. 꿈을 이루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오직 하나,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가장 밑바닥에 이르렀다면 곧 해가 뜬다는 징조이기도 하다. 책은 우리에게 ‘자아의 신화는 우리가 자신의 삶을 살아내길 원한다.’고 말하고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나의 근본적인 자아를 깨닫고 찾으며 살아가는 거다. 나는 없고, 타인의 기준과 시선에 나를 맞춰 살아간다면 이보다 불행한 건 없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에서 돌아오는 길, 동네 장수물에 들렀다. 냇가를 오락가락하다가 만난 이 녀석, 문득 영화 ET가 생각났다. 영화에서 ET는 자신의 별로 돌아갔는데 아닌가 보다. 상심한 듯 풀 죽은 모습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면서 김중범 씨는 열심히 살았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조금은 무리하여 확장도 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불어온 바람, 코로나19가 김중범 씨를 흔들었다. 그 결과 게스트하우스는 접어야 했다. 하지만 이 또한 자아의 신화를 이뤄가는 과정일 뿐이다. 

김중범 씨는 딱히 계획을 세우지 않고 산다. 오직 하루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렇다고 하루 목표가 없는 건 아니다. 당일 아침이든 전날 밤이든 소박한 계획을 세운다. 예를 들면 오늘은 ‘녹차밭에 가자.’ 아니면 ‘제주시 오일장에 가서 무엇을 사자.’ 등이다. 이 소박한 계획 중에서 가장 보람찬 건 강아지 산책이다. 특별한 일이 아님에도 보람찬 이유는 자주 산책을 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날씨 때문에, 혹은 일이 있어서 등 핑계는 무덤만큼이나 많다. 강아지를 산책시킨 날이 보람찰 수밖에 없다. 부디 책방이 쑥쑥 자라서 하루빨리 자아의 신화를 이루는 그날이 오기를 빈다.

“책방 카페 ‘그건, 그렇고’는”
젊음을 느끼고 싶으신가요? 책방 카페 “그건, 그렇고”로 가 보세요. 깔끔하고 산뜻한 분위기와 함께 나의 정서를 파고드는 시와 에세이, 소설책이 있습니다. 그리고 시원한 음료가 있습니다. 분위기에 젖어 잠시나마 젊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찾아가는 길 : 서귀포시 상예로 224 
영업시간 : 화~일 12:00~19:00 (월 휴무) 
홈페이지 : www.instagram.com/btwjeju 

# 고봉선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식물과 함께 자랐다. 지금은 허름한 고향 시골집에서 꽃과 함께, 독서지도사를 하며 아이들과 지내고 있다. 한국해양아동문화연구소 운영위원, 애월문학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를 통해 격주로 독자들을 만난다. 마을 책방에 깃든 사람과 책 이야기가 소개된다.저서로는 시집 ‘詩를 먹고 자라는 식물원’, 꽃과 함께 사는 이야기 ‘詩가 사는 기행식물원1, 2, 3, 4’, 동화집 ‘지우개’가 있다. 식물원 시리즈로 전자도서관에 식물원을 꾸미는 게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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