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소리 × 제주MBC 공동기획] ③ 휴일 없는 삶-폐업 위임까지 강요..."불공정 법률행위 소지"

독립언론 [제주의소리]와 제주MBC가 더 나은 제주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공동 탐사보도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따라 플랫폼이 서로 다른 지역매체 간 특성을 십분 살려 독자 여러분께 더 정확하고 다양한 뉴스를 제공하려는 새로운 시도입니다. 그 첫걸음으로 호황의 이면에 가려진 제주동문재래시장 야시장 청년 창업가들의 좌절 사례를 네 차례에 걸쳐 집중 탐사보도합니다. <편집자 주>
광범위한 청소 구역을 감당하고 있는 제주동문재래시장 야시장 상인들. ⓒ제주의소리

제주동문재래시장 야시장 상인들을 옥죄는 규약은 단순히 불쇼, 호객행위 등의 영업 방식에 그치지 않는다. 휴일이 없는 삶, 상인회의 강압적인 태도와 관리 방법, 기존 상인들과의 형평성 문제 등 일주일 만에 6개 매대가 입점을 포기하며 학을 뗀 데는 나름의 내부적인 이유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모든 야시장 상인들은 입점 직전 동문재래시장 상인회와 '제주동문재래시장 야시장 매대 위수탁 협약'을 체결해야 한다.

협약서에는 △을은 매대 영업을 영위함에 따른 의무를 준수하여야 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별첨 운영규약에 따라 벌칙이 가해지며 이에 따라 퇴출되는 경우 매대 운영권을 갑에게 반환해야 한다 △을은 매대를 통한 영업 관련 사항을 갑이 요구할 경우 제출하여야 한다 △을이 협약 조건을 불이행하거나 을의 귀책사유로 사업 시행이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이 협약을 해지할 수 있다 △이 경우 을은 갑에게 이에 대한 일체의 민형사상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등의 조항이 포함됐다.

대부분 상인회가 야시장 상인들을 관리·감독하는데 용이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개중에는 야시장 상인과의 법적분쟁 발생 시 야시장 업주들의 예치금으로 소송을 진행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즉, 32개 매대 업주 중 1개 매대가 상인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 나머지 31개 매대 상인들이 소송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기형적 구조다.

매대에는 점주가 자리를 지키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하루 4회 출석체크가 이뤄진다. 지인은 물론, 친인척, 심지어 배우자가 대신 자리를 지키는 것도 용납되지 않는다. 개인적인 용무로 잠시 시간을 비우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다.

제주동문재래시장 야시장 매대 위수탁 협약서 내용 발췌. 야시장 청년 상인들에게 불합리하게 느껴지는 조항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동문재래시장 야시장 매대 위수탁 협약서 내용 발췌. 야시장 청년 상인들에게 불합리하게 느껴지는 조항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제주의소리

32개 매대 모든 야시장 상인들이 쉴 수 있는 휴일은 추석, 설날 당일을 제외하면 한 달에 단 2일이다. 나머지 28~29일은 매일 매대에 나와야 한다. 유이하게 쉴 수 있는 그 이틀마저도 밤 10시30분 전체 청소 시간에는 나오도록 하고 있다. 온전히 쉴 수 있는 날이 단 하루도 없는 셈이다.

혹자는 영업시간이 매일 3~4시간에 불과하지 않느냐고 반문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32개 매대의 메뉴를 살펴보면 현장에서 즉석으로 조리할 수 있는 메뉴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몰려드는 손님들을 제 때 대응하기 위해서는 미리 조리를 해둬야 경쟁력을 지닐 수 있는 메뉴만이 살아남는다. 사전조리 과정에 3~4시간이 소요되고, 규약에 따라 1시간 전 매대를 준비해야 하는 시간까지 포함되면 하루 8~9시간이 꼬박꼬박 소진된다.

상인 A씨는 최초 매대 입점 업체로 선정됐지만, 상인회와의 위·수탁 협약 내용을 확인한 직후 곧바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어린 자녀를 두고 있는 A씨로서는 시간을 유연하게 사용하는 것이 원천 금지되는 업무 환경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A씨는 "메뉴를 정하고, 서류 접수하고, 실기 테스트하고, 교육까지 받는 과정에서 협약에 대한 세부적인 조건들은 전혀 안내되지 않았다. 갑자기 상인들을 불러모으더니 상당히 불합리한 조건이라고 느껴진 협약서에 사인하라고, '자기네 말을 따라야 한다'는 식으로 압박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상인회는 자신들이 요구한 조건에 따르지 않거나, 적합하지 않으면 퇴출시키겠다며 위임장까지 작성하도록 했다. 인감증명서를 제출하라는데 어이가 없었다"며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냐. 협약서를 미리 보내 검토하고 사인하게끔 해야지, 미리 자리가 세팅된 곳에서 문서를 읽어 볼 시간도 주지 않고 사인하라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입점 포기 사유를 털어놨다.

실제 상인회는 위·수탁 협약 과정에서 야시장 입점 상인들에게 인감증명서가 첨부된 위임장을 제출토록 했다. 

이 위임장에는 △영업의 신고 △영업자 지위승계신고 △영업신고사항 변경신고 △영업의 폐업신고 등을 상인회에 위임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A씨는 이를 '말을 안 들으면 퇴출시키겠다는 조항'으로 받아들였다.

제주동문재래시장상인회가 야시장 상인들에게 받은 위임장.
제주동문재래시장상인회가 야시장 상인들에게 받은 위임장.

B씨도 준비 과정에 많은 공을 들였지만 결국 일주일을 버티지 못하고 야시장 매대를 철수해야 했던 사정을 토로했다.

B씨의 매대는 본격적인 장사가 시작되기 전에 미리 조리가 상당 부분 이뤄져야 하는 메뉴였다. 이에 연세를 지불하고 시장 근처에 조리용 작업실을 따로 구해놨다. 시장 내 공용작업실은 32개 매대가 동시에 사용해야 함에도 5~6평 남짓이어서 비집고 들어갈 상황이 못된다는 판단이었다. 작업실에 시설을 들인 비용, 매대 준비 비용까지 해 넉넉잡아 2000만원 정도 투자가 이뤄졌다. 

그러나, B씨의 경우도 세부적인 계약조건이 발목을 잡았다. 특히 '말을 듣지 않을거면 나가라'는 식의 고압적인 태도가 등을 돌리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B씨는 "시장 상인회와의 첫 상견례 자리에서 다짜고짜 '지금이라도 자기네 말을 안 들을거면 나가라'는 말을 들었다. '너희들이 나가도 들어올 사람 많다'는 식이었다"며 "상인회는 야시장 상인들을 마치 직원을 부리는 식으로 인식하고 있더라"고 말했다.

B씨는 "생계를 유지해야하니 울며 겨자먹기로 사인은 했는데, 인감증명서에 각서까지 쓴다는 것은 막말로 '수 틀리면 자르겠다'는 소리 아니냐"며 "우리도 정당한 공모를 통해 나라에서 지원 받는 사업에 참여한 것이지 않나. 차라리 협약서를 사용자인 제주시청과 쓰면 모르겠는데, 협약의 주체가 상인회라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분을 냈다.

현재 야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상인 C씨도 이 같은 조항이 강압적이고 불공정하게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C씨는 "우리가 지도·관리가 필요한 사춘기 청소년도 아니고, 다 개인 사업자들이다. 각자의 사정과 여건이 다르다"며 "근로기준법을 적용한 노동자였다면 말도 안되는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C씨는 "상인회는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입장만 고수하며 절충안을 찾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며 "제주시에도 이와 관련된 민원이 제기되는 등 불만을 갖고 있는 상인들이 한 둘이 아니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걱정이 팽배하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상인들이 느끼는 '상인회의 일방적 요구'는 이뿐만이 아니다.

제주동문재래시장 내부를 청소하고 있는 야시장 상인들. ⓒ제주의소리

보통 하루 장사는 손님의 발길이 뜸해지는 오후 10시 전후로 정리된다. 각자 매대를 정리한 후에 오후 10시30분에는 매일 시장 전 구역에 대한 청소가 이뤄진다.

야시장 상인들의 청소 구역은 단순 야시장 범위 내로 국한되지 않는다. 하천을 끼고 양옆으로 맞닿은 모든 길이 야시장 상인들의 청소 구역이다. 멀리 노상주차장을 비롯해 동문재래시장 내부까지 모두 야시장 상인들이 직접 청소해야 한다. 매주 수요일은 대청소 명목으로 더 많은 시간을 들인다.

상인 D씨는 "야시장 주변을 청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처음 받아본 청소구역은 황당했다. 주차장은 물론 재래시장 내부까지 야시장 상인들이 직접 청소해야 하는 것은 다소 이해가 되지 않았다"며 "쓰레기를 보면 바로 알지 않나. 시장에서 발생하는 쓰레기가 모두 야시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데, 야시장이 전 구역을 청소하는게 너무나 당연스러운 분위기"라고 불만을 털어놨다.

D씨는 "5월부터는 하절기가 적용돼 오후 6시부터 시작하던 영업시간이 7시부터 시작하도록 조정됐다. 한 시간이 상인들에게 얼마나 큰 차이인데, '날이 밝다'는 이유로 상인회의 요구에 의해 영업시간이 조정된 것"이라며 "시장 상인들과 야시장이 공존 관계라고 하면서 우리는 '을'도 아닌 '병' 취급을 받는 기분"이라고 하소연했다.

이와 관련 야시장 위·수탁 협의 당사자인 동문재래시장상인회는 야시장에 대한 원활한 관리·감독을 위해 부득이한 조항을 삽입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김원일 동문재래시장상인회장은 "우리 상인회도 야시장이 활성화돼야 살 수 있다. 그만큼 야시장 운영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신경을 쓰다보니 어쩔 수 없이 강제하는 규약이 많아진 것 뿐"이라고 주장했다.

먼저 김 회장은 휴일 제약 규정에 대해 "시장이라는 것이 상인들이 없으면 돌아가질 않는다. 야시장 뿐만이 아니라 기존의 시장 상인들도 휴일을 모르고 지낸다"고 해명했다. 광범위한 청소 구역에 대해서는 "야시장이 밤 늦게까지 영업하다보니 밤 중에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것들이 있지 않나. 이걸 그 시간대에 치우지 않으면 아침까지 방치되고 기존 상인들의 민원이 잦아진다"고 설명했다.

제주동문재래시장 야시장 상인들의 청소 구역. 8개 구역으로 나뉜 가운데 시장 전역의 청소를 담당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인감증명서를 첨부한 위임장과 관련해서는 "만약 32개 매대 중 한 업주가 아무 말 없이 내일부터 문을 닫고 폐업신고를 하지 않는다면 상인회 입장에서는 컨트롤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무것도 없다"며 "이 문제를 원활하게 대응하기 위해 위임장을 받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야시장을 개장하기 전에 타 시도 사례도 철저히 점검하고 따져봤다. 다른 지역의 경우도 운영되는 방식이 비슷하다"며 "야시장 상인들로부터 더 의견 수렴을 해야겠지만, 현재로서는 기존의 규약을 바꿀 계획은 없다"고 못 박았다.

다만, 법률 전문가도 이 같은 협약 조항이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전애 변호사는 "협약서 내용을 검토해보면 현실적으로 갑과 을의 위치에 있는 협약임에도 청년 창업가 입장에서는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청년들로서는 심리적으로 굉장한 부담감을 느낄 수 있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강 변호사는 "법적으로 '갑질 조항'은 직장 내 문제로 고용관계에 있어야 하는데, 이 경우 상인회가 사용자의 위치에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갑질 금지 조항을 적용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민법 104조 불공정한 법률행위 등에 대한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결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판단을 받아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 예상된다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④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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