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희의 예술문화이야기] (47) 위기 앞에 행동했던 기록들

지구의 기온이 상승하면서 한때 ‘기후변화’라고 불리던 현상은 이제 ‘기후위기’라고 불린다. 이 위기는 단순히 지구의 위기만이 아니라 인류에게도 큰 위협이다. 온실 가스로 인해 기온과 수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데 그 온실 가스의 대부분을 차지한 이산화탄소는 바로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인간 때문에 생긴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이 계속되면서 호주, 미국, 아마존 원시림이 몇 달씩 불이 타기도 하고, 갑자기 내린 비는 폭우가 되어 기존의 생태계를 위협한다. 

제주도도 이러한 기후위기의 시대에 예외일 수 없다. 학자들의 연구를 보면 기후변화는 제주에도 산불, 화재, 강우량의 급격한 변화를 초래하고 있으며 한라산의 구상나무가 사라지는 등 침엽수 면적이 축소되고 있다고 한다. 겨울철에는 수온상승으로 갯녹음 해역이 증가하고 더운 바다 속에는 예전에 알던 어류들이 사라지고 있다. 화석 연료로 생산된 후 인간이 사용하다 버린 플라스틱은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분해되어 제주의 해안을 거쳐 우리의 입과 신체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그동안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정치인도 시민단체도 애를 써왔지만 오히려 문제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과학자, 시민운동가 등이 연설, 강연, 글 등을 통해 기후위기 시대의 변화를 경고하고 있고 그에 공감하는 시민들도 늘고 있으나 이미 경제논리에 매몰된 현대사회는 서로 눈치만 볼뿐 큰 변화가 없다. 지구가 하나의 하늘과 바다로 연결되어 있기에 어느 한 지역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며칠 전 세계 지도자들이 서울에 모여 ‘서울 선언문’을 채택하고 그 안에 기후변화를 실질적으로 이끌기 위한 실천의지를 담았다고 한다. 말 그대로 선언문이기는 하나 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강화하여 문제 해결을 이끌려는 노력이 멈춘 것은 아닌 듯하다.

그런대도 일상에 퍼진 과대 포장된 제빵, 제과 문화, 페트병 물을 바꾸는 것만 해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최근 삼다수병에 라벨을 뗀 상품이 새로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국내에는 이미 페트병이 아닌 ‘그린 플라스틱’에 암반수를 담아 판매하는 제품이 나오고 있다. 그린 플라스틱 병에는 자랑스럽게 ‘이 용기는 식물(사탕수수 100%)로 만든 바이오 플라스틱 용기로 산업용 퇴비화가 가능하며 180일 내 물, 이산화탄수, 양질의 퇴비로 완전 분해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페트병과 미세 플라스틱으로 신음하는 제주의 해양과 토양에 이런 용기는 언제쯤 들어올까. 실천의 속도와 범위에 신경을 써야 할 때이다.

사진=양은희.
그린 플라스틱으로 만든 암반수 상품. 사진=양은희.

기후위기 시대의 제주는 섬세한 정책과 실천이 필요하다. ‘탄소제로’를 외치지만 제주와 외부를 연결하는 필수 교통수단인 비행기는 엄청난 탄소배출의 주범이다. 한 보고서에 의하면 코로나바이러스 상황 이전에 세계 최상위 부자 1%인 6천3백만 명이 배출한 탄소량은 세계인구 하위 50%가 배출한 양의 7배가 넘는다고 한다. 그 부자들이 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분야가 바로 여행이었다. 최근 여행 산업이 예전만 못하지만 전문가들은 2024년까지는 과거 수준으로 회복될 것이라고 본다. 그러니 지구를 위한 실천에서 관광지 제주는 다른 곳보다 더 힘든 환경에 처해있다. 

작년 한국에서 시작된 ‘기후시민3.5’ 프로젝트는 그러한 미래를 막기 위해 ‘뭐라도 해보려고’ 시작된 글로벌 운동이다. 이 프로젝트는 미국의 정치학교수인 에리카 체노워스의 3.5% 이론에서 출발했다. 체노워스 교수는 지난 100년간 일어난 수백 건의 사회 운동을 분석한 결과 비폭력 운동이 폭력적 운동보다 목표 달성율이 2배 이상 높았으며, 인구의 3.5% 정도가 적극적으로 운동에 참여하게 되면 의미 있는 정치적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기후시민3.5’ 프로젝트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모사업에 선정된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지구 인구의 3.5%를 확보하여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겠다는 야심찬 발상에서 시작되었고, 그 창의적 호소에 호응한 전 세계의 시민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대진대학교 이혜원 교수의 지휘로 진행되고 있는데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이미 활동하고 있는 시민과 단체들을 연결하여 온라인상으로 기후위기의 문제를 공유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것은 특정 직업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참여해야 하는 공적 영역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미 페이스북으로 그 연대가 시작되었고, 홈페이지( climatecitizens.org 또는 climatecitisens-en.org )가 가동되기 시작했다. 

사진=양은희.
기후시민3.5 홈페이지. 사진=양은희.

제주 사람들도 이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8개의 하위 범주 하나에 ‘기후제주’라는 섹션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제주의 환경변화를 사진으로 기록하는 프로젝트가 담겨있고 제주의 환경과 생태를 지켜온 노력을 기록한 ‘제주33프로젝트’가 들어있다. 그중에서 후자는 필자가 기획한 것으로 한반도 남단 북위 33도에 위치한 제주도에서 지난 30여년 동안 제주의 NGO, 예술가, 지식인 등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섬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는지 30여개의 사례를 찾아 인터뷰와 리서치로 살펴본 것이다. 

사진=양은희.
제주33프로젝트 포스터. 사진=양은희.

제주33프로젝트’는 1990년대 제주도가 신자유주의 실험의 장으로 변모한 후 경제적 생존과 생태적 생존의 충돌 속에서 제주의 환경을 지켜온 노력의 총량을 개괄적이나마 정리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바다에 떠다니는 페트병 하나가 단순히 누가 버린 플라스틱 병이 아니라 그 뒤에는 30여년의 역사가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고자 했다. 1991년 소련 대통령 고르바초프와 노태우 대통령이 제주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이후 평화, 세계화라는 모토가 제주의 언어에 들어왔고 이후 자본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국제 휴양지이자 국제자유도시를 지향하며 오늘의 제주가 되었다. 

‘제주33프로젝트’는 이런 개발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노력도 만만치 않다는 점을 기록하고 싶었다. 자신의 몸을 불사른 양용찬의 정신은 비치코밍을 하는 예술가부터 기후변화로 생존을 위협받는 이주노동자 문제를 해결하려는 녹색당 청년회원까지 여러 사람에게로 이어지고 있고 깨어있는 시민들이 있는 한 제주의 생태가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정된 팀원과 시간 때문에 더 많은 이야기를 담지 못한 것은 아쉬우나 섬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다른 세계 시민들에게 알려졌으면 좋겠다. 자세한 내용은 위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의 제주33프로젝트 페이지에서 볼 수 있으며 홈페이지에서는 정리된 pdf 파일을 다운로드 할 수 있다.

사진=양은희.
제주33프로젝트 진행 중 답사에 나선 팀원들. 사진=양은희.

‘기후시민 3.5’가 주는 교훈은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며 그 시간이 종료되고 난 후의 생존 위협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섬은 우리가 보호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는 점을 다시금 일깨워 준다.

# 양은희

양은희는 제주에서 나고 자라 대학을 졸업한 후 미학, 미술사, 박물관학을 공부했으며, 뉴욕시립대(CUNY)에서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9 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 <조우: 제주도립미술관 개관 1주년 기념전>, <연접지점: 아시아가 만나다> 등의 전시를 기획했으며, 여러 미술잡지에 글을 써왔다. 뉴욕을 현대미술의 눈으로 살펴 본 『뉴욕, 아트 앤 더 시티』 (2007, 2010), 『22개 키워드로 보는 현대미술』(공저, 2017)의 저자이자 『기호학과 시각예술』(공역, 1995),『아방가르드』(1997),『개념 미술』(2007)의 번역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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