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제사장’의 눈물, 그 시적 연행성의 상상력
‘시인‑제사장’의 눈물, 그 시적 연행성의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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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世通, 제주 읽기] (212) 장석원, 『유루 무루』, 파란, 2021.

 

1.
한국 현대시를 하늘에 떠 있는 별 무리에 비유할 때, 모든 별이 깜냥껏 밝기를 지니고 있어 그것들이 어울려 자아내는 현묘한 빛의 교향악이 천궁(天宮)의 지극한 아름다움을 생성하듯, 한국 현대시들은 모어(母語)로써 지상에 있는 만유존재(萬有存在)의 비의성이 창조해내는 아름다움을 절묘히 포착한다. 여기서, 이 아름다움의 세계를 살필 때 남다르게 눈에 띄는 것이 있다. 어떤 별들과 어떤 시(인)들의 존재는 천궁과 지상의 아름다움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2. 
관련하여, 비평의 특권 아닌 특권으로서 창조적 오독이 승인된다면, 장석원의 시집 『유루 무루』에 실린 시편들을 음미하는 내내 그리고 통독한 이후 이 시집의 신묘한 아름다움의 바탕에는 한국 현대시문학의 성좌 중 소월, 만해, 이상, 김수영 등이 포개져 있는 듯 하다. 이들 시인의 면모에서 짐작할 수 있듯, 한국 현대시문학의 얼과 꼴은 바로 이 네 시인을 비껴갈 수 없다. 그렇다면, 장석원 외에도 한국의 다른 시인들 역시 이 네 시인의 시적 유산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유루 무루』의 고유성을 이해하는 데 그리 설득력이 없다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이들 네 시인의 시적 유산을 장석원만의 유일무이한 시 세계로 어떠한 창조적 섭취를 보여주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일반 독자들에게 이 점을 유의하면서 『유루 무루』를 감상할 것을 요구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루 무루』를 음미하는 과정에서, 어딘지 모르게 몹시 친숙하면서도 정겹게, 동시에 대단히 낯설면서도 생경하게, 가령, 대중음악에 비유하면,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중 인기 가요의 정서도 있는가 하면, 전혀 접해보지 않았던 전위 음악의 실험성이 공존하고 있는 것을 자연스레 감상할 수 있는데, 이것은 소월, 만해, 이상, 김수영 등의 시업(詩業)을 장석원의 시적 도가니 안에서 녹여내 『유루 무루』의 신묘한 지경으로 구축하고 있음을 보증해준다. 가령, 다음의 시를 보자.

내 나이 묻지 마세요 무덤에 묻지 마세요 잔디 잔디 묻지 마세요 그 사람의 무덤가에 잔디 잔디 금잔디처럼 부활하는 드라큐라 혁명은 부질없는 것 왔다가 떠나는 전사들 구름일까 아니 고름일까 그냥 쉬었다 가요 몸이나 식히고 술이나 한잔하면서 모두 다 잊으십시다 그럴까 잊을 수 있을 까   잊혀   질까 양념 반 프라이드 반 반도 못먹었는데 반도는 동강 날 것 같은데 못 먹어도 고인데 배가 부르고 토막은 수북한데 남자와 여자가 섞여 떨어지지 않는 밤 은행나무 등에 지고 앉아 돈 떼인 듯 앙앙—불낙처럼 울었습니다 눈물은 왜 남자의 배 위에 떨어지고 분홍 립스틱은 왜 런닝구에 묻는가 아 • 부 • 지들은 왜 이—두 근 삼—두근 박자 잃은 발걸음으로 문을 박차고 뛰쳐나가는가 그 사람은 왜 날 버렸는가


— 「정군비어에서 아파치까지」 전문

전체적으로는 산문시의 외피를 두르고 있다. 그런데 이 산문시를 곰곰 음미하고 있으면, 소월의 「금잔디」(1922)의 시 구절(“잔디 잔디 금잔디”)이 거느리고 있는 사랑과 이별, 그 정념이 시나브로 번져가면서 시적 화자가 놓여 있는 삶과 현실이 해학적이면서도 시니컬하게 시쳇말로 ‘웃픈’ 언어가 거느리고 있는 모던한 심상들이 끊어질 듯 이어질 듯 물리고 물리는 단속적(斷續的) 리듬으로 한 편의 대중 가요처럼 들린다. 그렇다. 이 시는 ‘보여지는 것’보다 ‘들린다’는 게 적확한 말일 터……. 시적 화자를 휩싸고 있는 부조리한 풍경들에 대한 ‘웃픈’ 언어의 모던한 심상(자조와 환멸)의 비조(鼻祖)로서 시인 이상의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과, 이 문명 비판의 감각을 온몸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김수영의 전위성은 서정의 형식보다 악무한의 시대에 대한 만해의 산문시의 외피를 통해 장석원은 그만의 역동적 리듬을 ‘들려준다’. 그래서 위 시를 온전히 감상하기 위해서는 눈으로 더듬는 것보다 시어와 시행이 절로 만들어내는 리듬을 타면서 입으로 소리내 낭송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모어의 자음과 모음이 어우러져 자아내는 소리의 공명은 물론, 들숨과 날숨이 띄어쓰기와 절묘히 접속하면서 만들어내는 박자와 리듬을 감지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의 총체가 어쩌면 김수영의 ‘온몸의 시학’ 안팎을 이루는 시의 현대성(혹은 전위성)을 독자들이 자연스레 미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셈이다. 『유루 무루』의 시적 매혹의 원천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3.
사실, 이 짧은 지면에서 『유루 무루』의 미의식과 관련하여 이와 같은 점을 세밀히 논의하는 대신, 시집의 제목에 초점을 맞춘, 그리하여 ‘눈물[淚]’의 있음과 없음, 눈물의 흐름과 멈춤이란, 형상적 사유를 톺아보자.  

내가 발견한 황홀/그대가 울며 말하네//
손잡고 눈물 흘려요/조금 더 견뎌요/상처를 내게 줘요//
목소리 다가와서 나를 덥히네/사랑하는 사람의 가슴에 귀를 댄다/두근거림 나를 환하게 하네/핏방울 불빛 속에 돋아나네//
영원한 용서/이별의 완성//
한 번 더 버려져도/음악이/내가 절망에 무너져도/음악이/유일한 사랑이라는 것을……/붉은 목소리 나를 찌르네


— 「살아야지」 전문

나는 앞서 『유루 무루』의 시적 매혹을 온전히 체감하기 위해 소리내 읽을 것을 적극 권장하였다. 물론, 『유루 무루』의 곳곳에는 시집 제목이 표상하는 심상들이 눈물의 점액성처럼 틈새로 새기도 하고(“찢어진 몸에서/새어 나오네”—「분비」), 눈물 방울이 그렇듯이 표면 위에 흡사 볼록하게 불거져 맺혀 있기도 하고(“凸/凸/돋는/핏빛/꽃잎”—「방혈」), 불꽃이 하늘로 피어 흩어지기도 하는 등(“火木의 재/묻은 구름/피네 나의 피네/피네 피네 하늘에/불꽃”—「울어라 천둥」), 시각의 심상을 간과할 수 없다. 그럼으로써 눈물이 함의한 애닯고 처연한 그리고 복창 터지는 극한의 슬픔 등속이 버무려진 정념과 정동의 리얼이 보증될 수 있다. 이것을 시인이 등한시 여기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높은 차원의 삶예술의 지경에 근접한 시인들이 그렇듯 장석원 시인은 첨단의 현대시가 자칫 망실하고 있는 심지어 낡고 오래된 것으로 치부하고 있는 시의 음악성을 시적 연행성(詩的 演行性, poetic performance)과 접목하고 있는 시도를 실행하고 있다는 것을 눈여겨봐야 한다. 그의 눈물 관련 심상에서 주목할 것은 바로 이러한 시적 연행성의 상상력이다.

4.
이처럼 눈물의 시적 연행성의 상상력은 『유루 무루』에서 때로는 삶과 죽음의 경계와, 때로는 죽음이 임박한 절체절명의 순간과, 때로는 죽음 이후 무간지옥(無間地獄)의 영원 속에서, 때로는 격렬한 사랑의 사위에서, 때로는 침묵 더께의 이별 등속이 배음(背音)을 이루는 가운데 흡사 요령을 든 제사장의 제의적 퍼포먼스가 상기되는 시적 전율을 일으킨다. 시집의 첫 시(「요령 소리」)와 맨 마지막 시(「이별 후의 이별」)는, 그러므로 장석원 시인이 이번 시집을 예술적 제사장으로서 주관한 시적 연행의 절창으로 손색이 없다.

그 사람/죽음 피하지 못하네//
사랑할 때/발개진 얼굴 쟁강거리는 눈빛//
오늘보다 아름다웠는데//
 (중략)
못 간다 못 간다/나를 두고 못 넘어간다/산령 높아 갈 수 없는데/그 봉우리 밟고 그예 사라지네//
발 없는 구름/연짓빛 노을/해 진다 서산에/해 빠진다


— 「요령 소리」 부분

부스러진 내 몸의 수취(獸臭). 그라인더를 향해 날아가는 나비. 열렸다 닫히는 눈꺼풀. 단심(丹心), 으깨진다.


— 「이별 후의 이별」 전문

“나부터 봉쇄 나부터 붕괴”(「염송(念誦)」)라는 단독 시행이 한 편의 시를 이루듯, 그 자기파괴의 주술이 지닌 비의성은 이승에 대한 미망 속에서 죽음에 굴복한 채 생의 남루함으로 전락하는 것을 넘어선다. 비록 죽음 앞에서 온몸은 부서진 채 삶죽음의 비릿한 냄새를 풍기지만, 구름과 저녁 노을과 서산 너머 가뭇없이 해가 지고, 칠흑 속 밤을 지새우다보면, 온갖 생의 정동이 언제 그랬냐는 듯 활력을 되찾을 터이다. 그래서, 시인과 제사장은 이 피해갈 수 없는 자신의 운명을, 그만의 영험한 언어와 노래가 바탕이 된 눈물의 연행적 상상력을 수행하고 있다. 이것은 그동안 한국 현대시가 소홀히 지나쳐온 것으로, 나는 이것을 『유루 무루』가 성취한 ‘현대성’으로 이해한다.

# 고명철

1970년 제주 출생.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998년 <월간문학> 신인문학상에서 <변방에서 타오르는 민족문학의 불꽃-현기영의 소설세계>가 당선되면서 문학평론가 등단. 4.3문학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세계문학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연구와 비평에 매진하고 있다.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문화)을 공부하는 ‘트리콘’ 대표. 계간 <실천문학>, <리얼리스트>, <리토피아>, <비평과 전망> 편집위원 역임. 저서로는 《흔들리는 대지의 서사》, 《리얼리즘이 희망이다》, 《잠 못 이루는 리얼리스트》, 《문학, 전위적 저항의 정치성》, 《뼈꽃이 피다》, 《칼날 위에 서다》, 《세계문학, 그 너머》, 《문학의 중력》 등 다수. 젊은평론가상, 고석규비평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mcritic@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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