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미래주의, 제주 설화와 SF가 만나 새로운 꿈을 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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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世通, 제주 읽기] (213) 켄 리우 외, 박산호 · 이홍이 역, 『일곱 번째 달 일곱 번째 밤』, 알마, 2021.
켄 리우 외, 박산호 · 이홍이 역, 『일곱 번째 달 일곱 번째 밤』, 알마, 2021. 사진=교보문고
켄 리우 외, 박산호 · 이홍이 역, 『일곱 번째 달 일곱 번째 밤』, 알마, 2021. 사진=교보문고

마블의 슈퍼히어로 영화 <블랙 팬서>는 여느 슈퍼히어로 영화와 다른 점이 있었다. 주인공이 흑인인데다 그의 고향은 아프리카의 ‘와칸다’라는 비밀스러운 나라라는 것. 흑인 관객들이 이 영화에 열광적으로 반응했던 것도 이해가 간다. 다른 슈퍼히어로 영화의 주인공은 대부분 미국인이고 그 절대다수는 백인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왜 지구와 인류를 지키는 정의의 사도는 항상 미국인이고 백인이어야만 할까? 박민규의 소설 지구영웅전설은 슈퍼히어로 서사에 내포된 제국주의를 비판적으로 풍자한 텍스트다. 하지만 이 소설도 비판과 풍자에서 또 다른 대안으로까지는 나아가지는 못했다. 

<블랙 팬서>와 같은 SF의 경향을 ‘아프로퓨처리즘’(Afrofuturism)이라고 부른다. 즉, 아프리카의 전통적인 문화와 가치관이 첨단의 과학기술과 만나 새로운 미래를 상상하는 예술적 경향이다. 물론, 아프로퓨처리즘은 백인 중심주의나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지니고 있기에 대안적인 정치적 관점 역시 중요한 문학적 이념으로 작동한다. 아프리카의 기술적, 정치적, 사회적 미래에 대한 상상력 못지않게, 과거의 신화와 역사, 철학이 아프리카의 현실에 대한 철저한 인식과 대안적인 상상력과 접속하고 결합되어 있다. 

그런데 아프로퓨처리즘과 같은 예술 경향 또는 SF(Science Fiction, 과학소설)의 하위 장르는 아프리카 지역에만 존재할까? 차별과 억압을 받는 민족과 사회는 지구상에 너무도 많다. 수많은 민족과 국가, 부족 들이 겪은 디아스포라나 제국주의 지배, 인종 차별, 학살의 경험은 서구를 중심으로 한 미래 이야기가 얼마나 보편적이지 못한지를 알려준다. 

이를테면, 미국의 인디언들은 토착민이나 바다 건너에서 도착한 이들에 의해 수탈당했다. 이들은 이른바 ‘토착/원주민 미래주의’(Indigenous Futurisms)를 통해 자신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새롭게 대안적으로 상상해보려고 한다. 태평양 바다 멀리의 하와이는 또 어떤가. 제국주의적 침탈의 역사가 바로 하와이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와이 예술가들은 그리하여 하와이 미래주의(Hawaiian Futurism)라는 배를 미래의 바다를 향해 띄워 보냈다. 하와이를 비롯해서 폴리네시아 지역의 예술인들은 폴리네시안 미래주의(Polynesian Futurism)라고 자신들의 예술을 정의한다. ‘태평양 미래주의’나 ‘섬의 미래주의’라는 표현도 보인다.

하와이 예술가 솔로몬 로버트 누이 이노스의 '폴리판타스티카'에서.
하와이 예술가 솔로몬 로버트 누이 이노스의 '폴리판타스티카'에서.

그렇다면, 제주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담는 서사(예술)는 가능한가? 이런 질문을 던져 보았다. 제주는 ‘1만 8천 신들의 이야기’인 신화와 ‘4.3’과 같은 역사, 다시 말해 과거에 예술적 방향이 집중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 제주의 대안적 미래는 어떻게 가능할 것인지? 제주의 젊은 예술가들이 이러한 작업들을 해주기를 마음속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일곱 번째 달 일곱 번째 밤』은 이러한 비평가의 갈증을 조금은 채워주는 소설집이다. 

비록 제주 예술가들의 기획이나 창작은 아니지만, 제주의 설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SF가 주요 작품들이다. 최초의 기획은 제주 설화를 통해 소설 창작을 한다는 의도였는데, 중국과 일본 작가들이 참여하면서 아시아로 그 지역을 확대했다고 한다. 『일곱 번째 달 일곱 번째 밤』은 제주 문학과 한국 SF의 외연을 크게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값진 시도이다. 시간이나 공간적 배경이 확장되는 것만 문학적 시공간의 확장은 아니다. 제주라는 지역이 본격적으로 한국 SF의 장에 출현하고, 제주 신화와 전설의 강에 합류한 것은 문학 장르의 심화에 크게 기여한다. (기자 출신 소설가 고종석의 「우리 고장에선 그렇게 말하지 않아!」(2008)가 제주의 미래를 다룬 적 있다.)

아흔아홉 골 설화, 설문대할망 신화, 서복 전설, 용두암 설화를 비롯한 제주 설화 일곱 가지가 일곱 작가들의 손에 다시 쓰였다. (세 명의 중국, 일본계 작가들의 작품도 아시아 설화를 바탕으로 한 SF로 태어났다.) 제주 설화를 바탕으로 재창조된 소설들이다 보니 제주의 지명이나 문화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곽재식의 「내가 잘못했나」는 한라산 백록담에 얽힌 이야기라 한라산을 오르는 남녀 주인공들을 볼 수 있다. 모슬포는 홍지운 작가의 「아흔아홉의 야수가 죽으면」에서 은하항구 터미널이 위치한 우주적인 지역으로 탈바꿈한다. 남세오의 「서복이 지나간 우주에서」는 제주 해녀가 “산소통만 메고 우주를 유영하며 잔별을 캐는 잠수”(182쪽)로 새롭게 태어난다. 

이 소설집은 ‘아시아 설화 SF’를 표방했다. 이때의 SF는 과학소설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더 넓은 의미에서 ‘사변소설’(Speculative Fiction)의 약어로 쓰일 때 더 정확할 것이다. 사변소설은 과학소설을 지칭하는 다른 용어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현실을 벗어나는 요소가 포함된 다양한 소설들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사변소설이란 용어는 과학소설, 환상소설, 공포소설 등의 장르들을 포함하는 방식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 소설집에 실린 다양한 소설들은 과학소설이 중심이지만 신화와 소설, 민담에 뿌리를 내리고 있거나, 과학기술에 대한 상상이 환상적인 요소들과 결합해 있다. 더 쉽게는, (공상과학소설이 아니라) 과학환상소설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제주의 설화와 지명, 문화가 SF로 들어온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앞으로의 일이 더욱 기대된다. 고종석의 소설이 제주의 언어, 정치와 역사를 바탕으로 했지만, 이 소설집에는 설화에 접속한 대신 그러한 역사적, 정치적 인식이 아직은 깊지 않기 때문이다. 제주 미래주의라는 새로운 문학-예술의 미래는 더 넓은 바다로 열려 있다.

# 북세통(Book世通) 제주읽기 서평 코너는 매주 월요일 고정 연재물입니다. 이번주는 필자 사정으로 하루 늦게 게재됐습니다. 독자들의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  

# 노대원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신문방송학 전공, 동대학원 국문학 박사과정 졸업
대산대학문학상(평론 부문) 수상 
201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제주대학교 국어교육과 부교수 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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