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 듸 껄 안 난다
덴 듸 껄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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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의 借古述今] (245) 덴 데 털 안 난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편집자 글]

* 덴 듸 : (끓는 물에) 덴 데, 덴 곳
* 껄 : 터럭, 털

재미있게 표현한 말이면서 직설적이고 간결하다. 어떤 상황을 극단적으로 가져갔으니 그럴 수밖에. 일상에서 적지 않게 겪는 일이기도 해서인지, 상당히 감작적으로 다가온다.

사람은 여러 부위에 털이 나 있다. 머리에서부터 손가락 발가락에 이르기까지. 한데 어쩌다 부부의해 화기(火器)를 잘못 다루다 사고를 당하는 수가 있다. 치솟는 불길이나 펄펄 끓는 물에 닿았다면 화상을 입는다. 2~3도 화상일 경우, 피부 조직이 크게 파괴돼 원상 복원이 어려울 정도가 되면 심각한 처지에 놓인다.

1971년 8월에서 10월 사이, 제주시 오라1동에서 촬영한 제주 전통 가옥의 정지(부엌). 사진=이토 아비토, 제주학연구센터.
1971년 8월에서 10월 사이, 제주시 오라1동에서 촬영한 제주 전통 가옥의 정지(부엌). 사진=이토 아비토, 제주학연구센터.

행여 그 부위가 털이 나 있는 곳일 때는 상처가 아물어도 털이 나지 않는다. 이만저만 낭패가 아니다. 외관이 일그러져 버린 사람을 대하면 참 안타깝다. 털을 심는 시술도 있을지 모르나 그게 의도대로 잘되겠는가.

‘덴 듸 털 안 난다.’

어떤 일이 결정적으로 어긋났을 때, 가슴을 쓸어내리며 내뱉는 탄식의 말이기도 한다.

“이이고, 게난 가마솟에 돗괴기 솖는 물에 얼굴까지 데였댄 말가? 어떵허단 그영 돼시니게. 멩심허래 그만이 곤단 보난게. 잔치가 내일인디 이 일을 어떵허민 될 거고게. 
(아이고. 그러니까 가마솥 돼지고지 삶는 물에 얼굴까지 데었단 말이냐? 어떡하다 그렇게 됐느냐. 명심하라고 그렇게 말하다 보니까. 잔치가 내일인데 이 일을 어떡하면 될 거냐.)”

이건 내가 연전에 살던 바로 이웃집에서 일어나 실화다. 그것도 독자 결혼식이 내일인데. 50대 젊은 어머니가 가마솥 걸어 돼지고기 삶는 화덕 곁에 갔다 뜻밖에 변을 당한 장면이다. 화상이 중해 장기간 입원 치료를 받았다. 그나마 생명엔 지장이 없었기 망정이지 큰일이 날 뻔했다. 독자 결혼식 어머니 자리에 나가 앉지 못한 것은 물론이다. 동네방네 소문났던 불상사였다. 

불에 덴 자리에 털이 안 나는 것은 강한 화기(火氣)에 데어서 피부 속의 모근(毛根)이 손상됐기 때문이다. 그러니 화상이 흉터로 남아 생전 없어지지 않고 남는다. 큰 재앙이 덮치면 다시 회복할 수가 없다.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런 흉측한 일도 일어나는 법이니, 매사에 신중을 기해야 함을 암시한 말인데, 표현이 ‘불에 덴’에 맞게 사실 그대로 서술함으로써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최대한 미연에 방지하자는 강한 의도가 엿보인다.

큰 화상은 원상으로 되돌릴 수 없는 결함을 만들지 않는가.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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