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 사후 후원자 김옥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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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숙의 길 위에서 전하는 편지] (22) 김옥희
길을 걷는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코로나 시국으로 서로 거리를 두고 온전한 마음을 나누기 어려운 지금, 서명숙 (사)제주올레 이사장이 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길이 품고 있는 소중한 가치와 치유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서명숙의 로드 다큐멘터리 <길 위에서 전하는 편지>를 필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한다. / 편집자

그녀의 이야기를 쓰려고 하니, 벌써부터 가슴 한켠이 아려온다. 허나, 그녀는 이런 나를 하늘에서 내려다보면서 활짝 웃으면서 말할 것 같기도 하다. 에이 이사장님, 그냥 담담하게 쓰세요. 제가 올레길에서 얼마나 행복해했는지 잘 아시잖아요. 그리고 제가 온 이곳은 언젠가는 이사장님도 오실 건데요 뭐. 그래, 용기를 내서, 한 해가 저물기 전에 그녀의 이야기를 쓰기로 한다.

"어디서 왜 다치셨어요?" 라는 물음에 활짝 웃기만 하던 그녀

그녀를 처음 만난 건 2019130. 사회적 기업 퐁낭이 주관하는 여행 프로그램인 올레캠프에서였다. 올레길 초창기에 했던 방학올레를 다시 해달라는 올레꾼들의 요청이 많았던 터. 허나 그렇게 길게 하기에는 부담이 많아서 고민 끝에 34일 여행 프로그램을 만들어냈고, 나는 그중 하루는 반드시 동행하기로 스스로 마음을 먹었다. 그녀를 만난 건 캠프 여행 첫날이었다.

사진=서명숙. ⓒ제주의소리

나랑 비슷한 연배인 듯한 중년 여성(나중 알고 보니 나보다 두어 살이 더 많았지만)이 활짝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네 왔다. 내 책을 이미 다 읽은 독자였고, 그전에 혼자서 올레길을 많이 걸었단다. 이름은 김옥희. 초등학교 때 동네 친구였는데 지금은 봉쇄수녀원 수녀가 된 내 친구랑 똑같은 이름이었다. 나는 주변에서 다 인정하듯이 얼굴도 이름도 어지간하면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지만, 그녀의 이름만큼은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지만)

긴 거리를 달린 끝에 버스에서 내려서 코스 걷기를 시작하려는데 그녀의 다소 불편한 걸음걸이가 눈에 띄었다. 아니, 어디를 걷다가 다친 걸까? 저런 상태로 오늘 긴 길을 다 걸을 수 있을까? 싶어서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거친 질문을 쏟아냈다. 아니 어디서 다치신 거예요? 걸을 수 있겠어요? 그녀가 여전히 밝은 미소로 조용히 웃었다. 그러더니 내 귀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 다친 게 아니라 원래 이랬어요. 아주 어릴 적부터요. 그러나 너무 걱정 마세요. 속도는 느려도 얼마든지 걸을 수는 있어요. 민폐 안 끼치고 제 속도대로 갈 테니 제게 넘 신경 쓰지 마세요.

그렇다. 그녀는 지체장애인이었다. 허나, 그녀 말대로 그녀는 제법 긴 그날 코스를 무사히 완주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퐁낭 스태프에게 확인한 바로는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마지막 날도 어김없이 일정을 다 소화했단다. 그런 그녀는 2번째, 3번째, 4번째, 5번째.... 캠프 때에도 단골손님처럼 참가했다. 만날 때마다 한결같이 너무나도 즐거운 표정이었다. 올레 캠프 이전에는 늘 혼자 내려와서 걸었고 그것도 나름 좋았지만, 이렇게 사람들과 어울려서 걸으니 더 행복하고 즐겁다는 그녀. 다리만 살짝 불편할 뿐, 매사 긍정적이고 매번 캠프에 참가할 만큼 경제적 여유도 있는 분이구나, 지레짐작했다. 적어도 그해 830일부터 57일의 스위스 올레 여행을 함께 가기 전까지는.

저 사실은 대장암 말기예요.” 그녀의 담담한 고백

스위스 올레 여행 프로그램은 사실 비용도 만만찮고, 마테호른 근처 체르마트 5개의 호수길과 레만호 길을 걷는지라 코스도 만만찮았다. 김옥희 씨가 속도는 느려도 장시간 걷기는 잘하는 걸 알지만, 제주도와는 달리 제법 높은 곳까지 올라가야 하는 스위스 올레길에 잘 적응할지는 미지수였다. 스태프들은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해야만 했다.

사진=서명숙. ⓒ제주의소리

소수의 인원이 긴 시간을 함께 보내다 보니, 절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긴 길은 얼마든지 걸어도 높은 곳은 힘들어하는 나와 그녀는 속도가 비슷해서 더더욱 긴 시간을 함께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그녀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녀는 이번 여행을 참가할까 말까 무척 고민을 했더란다. 소아마비로 인한 지체장애 때문일 줄 알았는데, 실은 자신이 말기암 환자란다. 아니, 세상에나 말기암 상태에서 이 스위스까지 걸으러 왔다니? 그렇다면 올레 캠프도 이미 그런 상태에서 걸으러 왔던 것일까?

스위스 올레여행 프그램 참여 당시의 김옥희 님. 말기암 상태에서 자신의 첫 해외여행이자, 마지막 여행을 올레길과 함께 하며 내내 밝은 모습이었다.  사진=서명숙. ⓒ제주의소리

그녀는 담담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나마 걸으니까 이만큼이라도 오래 건강하게 살아 있는 거예요. 병원에서는 얼마 안 남았으니까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어요. 그렇지만 전 그래서 길을 걷기 시작한 거예요.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학교 급식소 조리사로 부엌에서 뜨거운 불 앞에서 일만 했거든요. 침대 위에서 죽는 날을 기다리기보다는 죽기 전에 다른 세상을 보다가, 걷다가 죽자고 생각했지요. 마침 방송에서 봤던 올레길이 떠올랐고 이사장님 책을 사다가 읽고 나서 제주도로 걸으러 왔지요. 그 뒤 올레캠프를 참가하면서 함께 걷는 행복도 알게 됐고요. 이번 스위스 여행은 제 인생 첫 해외여행이자 마지막 여행일런지도 몰라요. 그래서 후회하지 않으려고 용기를 낸 거지요.”

병상에서 그녀는 축제를 함께 즐겼다

그녀는 내게 신신당부했다. 다른 참가자들이 부담을 느낄 수도 있으니 그냥 비밀로 덮어두고 다른 참가자들 대하듯 대해 달라고. 어린 시절 부모를 일찍 여의고 어렵게 자신의 힘만으로 살아오면서도 세상에 대해 원망보다도 감사함을 더 많이 표하고 주변을 더 배려하는 그녀의 내공이 새삼 존경스러워졌다.

사진=서명숙. ⓒ제주의소리
사진=서명숙. ⓒ제주의소리

그녀의 믿음대로 그녀는 비장애인들도 힘들어하는 스위스 올레 일정을 누구도 눈치채지 않을 만큼 무리 없이 소화해냈다. 뿐만인가. 그녀는 그해 가을에 열린 올레축제에도 예의 그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참가했다. 올레캠프 참가자들도, 스위스 올레 참가자들도 다 분위기 메이커인 그녀를 가족처럼 반가워했음은 물론이다.

축제가 끝나고 그녀와 얼싸안고 배웅하면서 나는 속으로 낙관했다. 내가 만났던 많은 암환자들처럼 그녀도 걷기를 통해 암세포를 다 무찌른 모양이라고. 허나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가 내게 카톡을 보내왔다. 병세가 갑자기 악화되고 여러 부위로 전이가 돼서 용인의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게 되었다고, 이제는 정말 준비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는 것 같다면서, 그러나 너무 걱정은 마시라고, 제가 길에서 얼마나 행복한 시간을 보냈는지 누구보다도 잘 아시지 않느냐고. 그저 평안한 마지막을 맞을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고. 자신도 올레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병상에서도 기도를 늘 하겠다면서.

사진=서명숙. ⓒ제주의소리

코로나로 대규모 축제가 불가능해진 대신에 소규모 장기간 분산형 축제를 열었던 2020. 올레 사무국에서는 직접 참가하지 못하는 국내외 올레꾼들을 위해 온라인으로 23개 코스에서 열리는 축제 실황을 생중계했다. 그녀는 아날로그 세대인지라 온라인 연결에 서툴러서 젊은 수양딸에게 부탁해서 그 방송을 병상에서 날마다 지켜봤더란다. (이건 나중에 그녀의 수양딸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다). 마치 자신이 참석해서 그 길을 걷는 것처럼 즐거워하고 아쉬워했을 그녀가 눈에 선하게 밟히는 듯했다.

그런 그녀가 끝내, 지난 9월 호스피스 병동 침대 위에서 향년 66세의 나이로 조용히 눈을 감았단다. 그토록 사랑했던 수양딸도 코로나 19로 면회가 안돼 임종을 지키지 못했고, 그토록 좋아하던 올레길도 다시 걸으러 오지 못한 채. 하지만 병원 종사자의 말에 따르면 너무나도 담담하고 평화롭게 자신의 임종을 맞이했단다.

최근에서야 나는 후원팀을 통해 알게 되었다. 20193월부터 제주올레를 후원하던 그 김옥희 씨가 돌아가시기 훨씬 전부터 수양딸에게 자신의 통장을 맡기면서 자신이 죽은 뒤에도 제주올레 후원을 계속해달라고 신신당부했음을. 통장 잔고가 남아 있을 때까지. 그리고 그 유지를 충실하게 받은 그녀의 수양딸이 제주올레 후원팀에 그녀의 사후에도 계속 후원을 하겠노라는 뜻을 밝혀 왔다는 것을.

사진=서명숙. ⓒ제주의소리

그래, 그랬을 것이다. 김옥희. 그녀는 자신이 살아생전에 길에서 위로를 받고 행복을 얻었듯이 또 다른 누군가가 길 위에서 그러기를 바랐으리라. 그녀의 뜻을 전해 들으면서 나는, 그리고 우리 사무국 식구들은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세상을 뜬 뒤에도 후원하며 응원하는 이 길을 정성껏 가꾸고 지키겠노라고, 초심을 잃지 않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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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ffks 2021-12-27 13:01:03
어디선가 뵌분 같은데 그런 사연이 있는 줄 몰랐어요.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겁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어요
119.***.***.168

후원 2021-12-17 08:50:10
입으로만 기부 하고 입으로만 후원 한다는 사람들 반성 하십시요
112.***.***.250

고마워요 2021-12-16 11:25:32
고생하셨습니다.
행복한 길을 걸으셨군요.
평안하시기를♡
14.***.***.36

이유근 2021-12-16 10:22:32
오늘 아침 눈과 마음을 촉촉히 적시는 글 잘 읽었습니다. 올레길을 비판하시는 분들께서도 이 글을 읽었으면 합니다.
220.***.***.179

용담이좋다 2021-12-16 09:12:09
아마 저 세상으로 가시는 순간에도 비극이 아닌 새로운 올레길로 여기고 가벼운 마음으로 가셨을 것 같아요. 부디 좋은 곳에서 편히 계셨으면 합니다.
59.***.***.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