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홍의 세상사는 이야기] (88) 순수하고 수줍던 그때가 우리들의 벨 에포크였다

1. 골빈당의 계보와 의미

지난 주 골빈당 창당 50주년(2022년)을 준비하기 위한 전당대회가 북경반점에서 열렸다. 무슨 거창한 정치인들의 모임이 아니라 골빈당이란 친목 단체의 회동이었다.

골빈당은 1972년 제주시 남문로 소라다방에서 스무 살 남짓한 더벅머리 총각들이 모여 창립했다. 골빈당원들은 소라다방 일대의 술집을 누비며 낭만을 구가하던 로맨티스트였고, 군사독재 시대의 암울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오로지 문학과 술로 허기를 채우며 열정과 광기를 분출하려고 했던 데카당이었다.

시대의 고뇌와 좌절을 짊어진 청년들은 시계와 점퍼를 저당 잡히고 비오는 날은 우산까지 맡기면서 마시고 또 마셨다.

‘기로틴! 기로틴! 슈르 슈르 슈!’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斜陽)'에 나오는 건배사를 제창하면서…. 여기서 잠시 골빈당의 계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833년 명저 ‘엘리아 수필집’을 펴낸 차알스 램은 우자동맹(愚者同盟)이란 단체를 결성한다. 우자동맹의 멤버는 당대 영국의 대표적 지성들이다. 1926년 일본 유학생이었던 당대 최고 문장가인 소설가 이태준, 화가 김용준 등은 백치사(白痴社)란 단체를 조직했다. 

우자동맹―백치사―골빈당의 공통점은 ‘바보들의 모임’이다. 바보는 반어적 표현이다. 중국 속담에 ‘커다란 지혜는 어리석은 것과 같다(大智若愚)’는 말이 있다. 노자와 장자를 배출한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어리석음(愚)은 큰 지혜이다.

어쨌거나 골빈당이 우자동맹(런던)이나 백치사(도쿄)의 맥을 잇는 한국(제주)의 청년지성집단임에는 틀림이 없으리라.

1960년대 칠성로의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1960년대 칠성로의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2. 그리운 소라다방

골빈당의 아지트 소라다방은 이상의 자전적 소설 ‘봉별기’에 나오는 ‘제비다방’을 연상시킨다. 낡은 축음기에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퇴폐의 아우라를 풍기는 이곳에 문학과 정치 지망생들이 둥지를 틀었다. 제비에 마담 금홍이 있다면 소라엔 정 마담과 레지 남 양, 민 양이 있다. 제비엔 기생 출신 금홍의 관능적 교태가 있으나 소라의 여인들에겐 따뜻한 인간미가 있다. 술 먹다가 SOS를 치면 정 마담은 누님처럼 달려와서 술값을 계산해 주었고, 외상 장부에 찻값을 달아놓기도 했다.

폴 고갱이 그린 ‘타히티의 여인’을 닮은 민 양은 바람처럼 스쳐지나간 풋사랑이었다. (아! 그녀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1920~1930년대 유럽 각지에서 모여든 예술가들이 몽파르나스의 허름한 카페와 술집에서 ‘에콜 드 파리’를 형성한 것처럼 골빈당은 해방 이후 제주사회에서 젊은이들로 구성된 최초의 ‘에콜 드 제주’였고 ‘누벨바그’에 다름 아니었다. 소라다방은 에콜 드 제주의 발원지요 근거지였던 것이다.

3. 실존주의, 문학, 자기구원

1970년대의 어두운 분위기는 우리를 데카당으로 몰아갔지만 우리의 이념적 고향은 실존주의였다. 1950년대 유럽에서 유행하던 실존주의가 60년대 한국에 상륙하면서 우리도 그 사상의 세례를 받았다.

샤르트르와 까뮈를 독파하면서 실존주의의 핵심 개념인 피투성(被投性, 던져짐)과 기투성(企投性, 던짐)에 매료됐다. 그러나 나는 훗날 기독교에 입문하면서 실존주의와 결별했다. 실존주의의 무신론적 인간관과 세계관에 동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당시 ‘절망이라는 병’을 치유해준 건 문학이었다. 그래서 나는 “문학은 타자를 구원할 수 없으나 자기구원은 가능하다”고 확신했다. 문학은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지 깨닫게 해준다. 환언하면 어떻게 사는 게 가치 있는 인생인지 알게 해 준다.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시궁창에 있었지만 별을 바라볼 수 있었고, 실의와 낙망의 폐허 위에 희망의 꽃을 피웠으며 마침내 성공의 금자탑을 세웠다. 더 이상 우리는 패배자가 아니며 실패자도 아니었다.

4. 모든 것은 다 지나가고…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엔 항상 ‘순결하고 자유로운 영혼’이 있었고 그 자유혼이 우리를 춤추고 노래하게 한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빈털터리 였지만 ‘한 알의 모래에서 우주를 보고 /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는 우리들의 찬란한 정신이었던 것이다.

어느덧 반기의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우리들 중 누군가는 한때 아나키스트였고, 세상의 변혁을 꿈꾸던 혁명가였지만 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지금은 고단한 방랑자일 뿐이다.

때때로 형해화된 청춘의 잔상들을 떠올리며 나는 오열한다. 돌아가야 할 곳, 돌아갈 수 없는 곳이 없는 자의 슬픔을 아는 자, 누구인가? 흐릿한 기억의 저 편에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순수하고 수줍던 그때가 우리들의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절)가 아니었던가?

아아! 오뉴월 햇살처럼 빛나던 청춘의 그 날로 돌아가고 싶구나! 모든 것은 다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 아름답다.

끝으로 전당대회 참석자와 불참자를 적어 골빈당 일지에 남긴다. / 장일홍 극작가

# 참석자 : 문무병(시인), 장일홍(극작가), 고충석(전 제주대학교 총장), 고희범(전 제주시장), 김상철(전 제주민예총 회장), 김태성(전 YMCA 사무총장), 나기철(시인), 부종호(사업가)

# 불참자 : 이재훈(사업가), 강창일(주일 대사), 김용훈(전 중등학교 교감), 홍진표(전 외국어대학교 학장), 김영범(전 대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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