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어멍 동물愛談] (43) 인간을 위해 헌신한 동물 존중해야

4년 동안 내리 경찰 수색견이었던 레이를 면회했다. 몸이 불편했던 퇴역 경찰견 퀸을 입양하고 오래지 않아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 실의에 빠져있을 때 퀸을 돌봐주었던 고마움과 미안함 때문인지 그녀의 동생이라며 레이를 소개받았다.

차분했던 퀸과 다르게 레이는 아주 유쾌하고 쾌활한 친구였다. 모습이 닮았다고 성격까지 같지 않았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주 잠시라도 레이를 보러 갔다. 매번 짧은 만남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의 신뢰는 쌓이게 마련이다. 

언젠가 레이와 한집에서 지낼 거라는 생각을 단 한번도 놓아본 적이 없었다. 우리의 관계를 알고 있는 몇몇 사람도 같은 생각이었다. 4년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를 만나러 가서 놀라는 눈치였다. 레이을 보는 순간부터 아니 퀸을 만나는 순간부터 운명 같은 우리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인류를 위해 헌신하는 수많은 동물에게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 묻게 된다.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고통 없고 정의롭고 아름다운 선택을 해야 할 도의적 책임이 있다. 나의 전부였던 코코가 내 곁을 떠난 날과 레이의 생일이 겹친다. 모든 만남은 운명이다. 사진=김란영
인류를 위해 헌신하는 수많은 동물에게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 묻게 된다.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고통 없고 정의롭고 아름다운 선택을 해야 할 도의적 책임이 있다. 나의 전부였던 코코가 내 곁을 떠난 날과 레이의 생일이 겹친다. 모든 만남은 운명이다. 사진=김란영

4년이라는 시간은 왜 그리 길게 느껴지는지 짙은 갈색과 까맣던 얼굴은 어느새 턱 밑이 하얗게 바뀌었다. 레이와 함께 집으로 오는 날, 반갑지만 한편으로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지난 9년 동안 많은 일을 겪었을 그가 안쓰럽기만 하다. 

나의 마음과는 다르게 레이의 얼굴에는 과거의 힘겨움은 이미 멀리 떠나보낸 듯하다. 얼굴 가득 환한 웃음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레이가 느낄까 조심하면서도 그와 비슷한 인생을 살아가는 많은 그의 동료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은 쉽사리 떠나지 않는다. 

환경에 따라 다르지만, 인간과 다르게 동물들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늘이 없다. 대부분 인간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 살아가지만, 동물은 누구보다 상황에 최선을 다하며 순간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과거의 힘겨움도 접고 미래의 불안함도 밀어내고 동물은 현재를 산다. 이러한 차이가 동물은 작은 것에 만족하고 행복해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 행복한 시간도 잠시 대부분의 삶을 불안 속에 살아간다.

그래서 순간을 살아가는 동물과 함께 있으면 행복 바이러스가 전염되듯이 사람들도 편안하고 시름을 잊게 만든다. 가까이 있는 반려동물이 아니어도 동물은 인간에게 편안함과 즐거움을 주는 존재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인류와 지구에 헌신한다는 것을 인간만 모르는 게 아닌가 싶다.

아사 직전의 뼈만 남은 상태로 코피를 흘리며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생식기만 기이하게 커져 있는 은퇴 탐지견 '메이', 은퇴한 검역 탐지견으로 동물 실험에 이용되다 죽음을 맞이했다. 사진 출처=비글구조네트워크 영상 캡쳐
아사 직전의 뼈만 남은 상태로 코피를 흘리며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생식기만 기이하게 커져 있는 은퇴 탐지견 '메이', 은퇴한 검역 탐지견으로 동물 실험에 이용되다 죽음을 맞이했다. 사진 출처=비글구조네트워크 영상 캡쳐

2019년 검역 탐지견 메이 사건은 우리 사회가 인류에 헌신하는 동물을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사 직전의 뼈만 남은 상태로 코피를 흘리며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생식기만 기이하게 커져 있는 은퇴 복제견 '메이', 국가 사역견은 은퇴 후 동물 실험이 금지되어 있지만, 서울대 수의대에서 은퇴한 검역 탐지견을 동물 실험에 이용하였다. 메이는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

메이 외에도 심장 박동수 변화를 측정하기 위해 강제로 끊임없이 러닝머신을 달려야 했던 ‘동이’는 실험이 끝나면 휴식도 없이 다시 검역 탐지 임무에 투입되었다. '동이'는 눈이 뒤집혀 발작하기도 했으며 스트레스일 가능성이 높다는 수의사의 소견이 있지만, 고통을 견디라고 마약 성분 약을 먹이며 하루하루 버티다 결국 생을 마감했다.

이처럼 알려진 사례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지금도 인간의 물질적 풍요와 개인적 안위를 동물 학대와 교환하고 있다. 인간처럼 동물도 켜켜이 쌓여가는 고통과 죽음의 공포에서 도망치고 싶지만, 세상은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차를 타고 온 세상을 누비고 싶은 레이 집에 도착해도 내릴 생각을 안 한다.  사진=김란영
차를 타고 온 세상을 누비고 싶은 레이 집에 도착해도 내릴 생각을 안 한다.  사진=김란영

언젠가 다큐멘터리 촬영을 따라갔다 놀라운 경험을 하였다. 양돈 농가에서 4년을 일하다 직장을 바꾼 사람이 구제역 당시 돼지를 죽이는 장면을 보고 그 이후로 붉은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양돈장에서 몇백 마리 돼지를 돌본 적이 있는데 모든 돼지마다 얼굴과 모습이 달라요. 각자 개성도 다르고요. 그런데 TV에서 구제역으로 돼지를 살처분하는 장면을 보고 속으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더는 돼지를 먹을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일도 그만두었어요”라고 한다. 

물론 개인의 선택에는 자유가 있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의 선택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이길 바란다. 고통 없고 정의롭고 아름다운 그런 선택을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의 자유가 있다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양돈장의 아름다운 노동자처럼 말이다. 

퇴역 경찰견 레이가 며칠 전에 큰 수술을 받았다. 함께 지내고 몇 달 되지 않은 상황에서 삶과 죽음을 오갔었다. 씩씩한 웃음을 잃지 않는다. “나는 퇴역한 경찰 수색견 레이입니다. 당신은 누구신가요?” 사진=김란영
퇴역 경찰견 레이가 며칠 전에 큰 수술을 받았다. 함께 지내고 몇 달 되지 않은 상황에서 삶과 죽음을 오갔었다. 씩씩한 웃음을 잃지 않는다. “나는 퇴역한 경찰 수색견 레이입니다. 당신은 누구신가요?” 사진=김란영

가족이 된다는 것은 모든 퍼즐이 맞춰진 것처럼 마치 처음부터 생을 함께한 느낌이다. 몇 개월 되지 않았지만, 레이는 우리에게 그런 존재이다. 여전히 수색견들이 가질만한 오만가지 냄새를 맡는 습관은 보이지만 퀸이 그랬듯이 고양이들과도 잘 지낸다.

레이는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는 친절하고 선한 성품의 소유자이다. 장담컨대 그를 만나면 당신도 짧은 시간에 그 매력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주 가까운 미래에 레이와 그의 동료들이 들려주는 희망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지난 12월 11일 토요일, 퇴역 경주마를 이용한 대규모 반려동물 사료 공장 계획 철회와 퇴역 경주마의 전 생애 복지체계 구축을 위한 대한민국 2차 행진 ‘도축장 가는 길’을 마무리 하였다. 2022년 1월 두 번째 토요일 3차 행진을 한다. 영상 제공=(사)생명환경권행동 제주비건

# 김란영

코코어멍 김란영은 제주동물권연구소 소장, 사단법인 생명·환경권행동 제주비건( www.jejuvegan.com ) 대표이다.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UN의 IPCC(정부간 기후변화 협의체)에서 제시하는 지구 온난화 위기에 대한 핵심적인 정책인 육류와 유제품 소비의 문제점과 최상의 기후 해결책으로 빠르며, 쉽고, 경제적이고, 건강한 비건 식단(완전채식)과 라이프 스타일을 알리고 있다. 현재 구조 및 유기견 11마리와 구조된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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