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살이의 중국 여행수업 이야기-1]'일송정'에 올라 '선구자'를 부르다

제주도의 문화교육들살이는 늦봄학교, 곡성평화학교와 함께 지난 4월 23일~6월 23일까지  2개월간의 중국 여행수업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고구려 지역 역사기행까지 마친 이들은 검게 그을린 피부와 맑아진 눈동자가 더욱 또랑져 보입니다. 주변의 도움과 인연으로 다행히 경비는 1인당 월 50만 미만의 저렴한 비용으로 해결 할 수 있었습니다. 김유라 문화교육들살이 생활교사(일명 '유라샘')의 중국 여행수업 이야기를 세차례에 걸쳐 싣습니다/ 편집자 주

▲ 중국어 수업을 받고 있는 들살이 아이들

4월 23일-생전 처음 맞는 장기 여행의 설레임

우리 아이들이 몇 달간 손꼽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우리가 중국으로 이동 수업을 떠나는 날이 왔다. 미리 곡성에 도착하여 함께 갈 친구들과 인사를 나눈 우리 아이들은 일찍 일어나 아침을 든든히 먹고 인천 여객 터미널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 표정 하나하나에 기대와 흥분이 충분히 넘치고 있었다.  도착한 인천 여객터미널에서 마지막 점검을 하며 들뜬 마음을 한껏 누리고 있는 아이들은 생기가 돌았다.

어린아이 물가에 내 놓은 듯 양파는  근심어린 얼굴로 마지막을 힘차게 응원해 주셨다.
우리 잘 다녀올께요.. 파이팅!!! 들살이 파이팅!!!  

곧 저녁을 먹으라는 방송에 저마다 신이 난 아이들은 처음 타보는 큰 배에서 첫 식사를 맛있게들 끝냈다. 잠들기 전까지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아이들은 저마다 짝을 이루어 룰루 랄라 신이 났다..~~~ 
 우리 즐겁고 행복한 이동 학습을 해 보자 꾸나. 들살이 파이팅!

▲ 본계수동 안의 박쥐와 종유석

4월 24일-중국과의 첫만남, 위화도와 본개수동

오전에 기상을 하고 보니 어렴풋이 섬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 했다.
마치 옛 흑백 사진 한 장면을 찍어 놓은 듯 한 풍경에 다시 한번 중국에 다 와가는구나~ 실감이 조금 났었다.조용하고 삼엄한 입국장 분위기는 참 낯설고 다른 분위기임을 우리 아이들도 느꼈다.

입국 수속을 하나하나 잘 하고 있었다.  연태는 워낙 작아서 공안이 일어나 한참 살피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 졌다. 시내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중국에 왔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지 그저 쭉 펼쳐진 바닷길과 가끔 보이는 중국 시골집이 그저 약간 지루했지만, 시내에 도착하자 아이들은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에 이리저리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차를 타고 지나가며 철조망 건너로 보이는 북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정말 손만 뻗으면 만질 수 있듯 가까이에 있는 북한의 허름하고 쓸쓸해 보이는 모습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우리 아이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지나는 길에 위화도 회군으로 유명한 위화도도 보았다 그곳은 비만 오면 침수가 되어 많은 사람이 살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 일정에 없는 특별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바로 “본계수동”이라는 동굴 탐험이다.

▲ 본계수동(45만년 전에 생성된 천연동굴) 앞에서 들살이와 곡성평화학교

아시아에서 가장 크다는 이 동굴은 안에 물로 가득차서 배를 타고 한바퀴 둘러 보게 되어 있었다. 동굴안은 상상보다 크고 물도 깊었으며 갖가지 신기한 종유석과 돌들, 무엇보다도 동굴안을 배를 타고 탐험 한다는 자체가 우리를 아주 즐겁게 해 주었다.

아이들은 춥다고 저마다 난리 였지만, 가끔 스릴있는 구간을 지날때면 저마다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약 40분간의 신나는 체험 이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약3시간 심양으로 이동, 중국에서는 보통 버스 타면 3~4시간 이란다. 참 크기는 크구나.!!!  저녁을 푸짐히 먹었다. 잘 먹는 우리 들살이를 곡성 교장선생님은 예뻐 하셨다. 호텔로 이동하여 하루를 마무리 하였다. 호텔에서 잔다는 사실에 또 한번 우리 아이들은 들뜨고...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나니 피로가 조금 풀리고 좋았다.

우리 아이들 하루를 마무리하는 토론 , 회의를 하며 저마다 하는 말이 “오늘이 중국에 온 첫날이라니 믿어지지 않아요!!  한 일주일 지난것 같아요”  *^^*   집생각은 별로 안 나는것 같다. 새로움에 대한 기대와 신비 그리고 긴장감 즐거움으로 우리 아이들의 얼굴에 꽃이 핀다.
 하루를 알뜰히 24시간 쪼개고 쪼개 쓴 기분이다. 이렇게 산다면 아마도 1년을 10년 같이 살 수 있지 않을까 .....

▲ '롯데리아'의 중국식 표현은? 아하 그렇구나~~
4월 25일-말타고 고구려를 달리다

중국에서의 두 번째 날이다.
우리는 옛 고구려인들이 말타고 달렸다던 기반산 이란 곳으로 이동하여 말타기 체험을 했다. 연태와 현태를 빼고는 모두 스스로 말을 몰아 산 한바퀴를 돌았다. 먼저 말에 한명씩 오른 다음 그곳 가이드가 길을 안내해 주면 한 10분쯤 지나 스스로 말을 몰고 달리며 자유를 만끽했다.

약 40분 가량 놀랍기도 하고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고 참 재미나고 신나는 체험 이었다. 말에서 내리니 온몸이 쑤시고 저렸지만 우리 민주는 한 시간 정도 더 타고 싶다고 난리였다. 점심은 심양시내에 있는 중국 만두 음식점을 갔다.

여러 가지 종류의 만두를 맛 볼 수 있어 참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대체로 잘 먹었지만, 강한 향과 기름진 음식이 썩 좋지는 안았던것 같다.  점심후 우리는 요녕성 박물관을 관람 했다. 큰 규모에 비해 그리 훌륭한 전시를 해 놓은 것 같지는 않았다.

▲ 요녕성박물관에서의 즐거운 한때
고구려와 발해의 유물을 가지고 있다 들었건만, 그 흔적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중국어와 영어로만 표기 되어 있어 관람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여행에 있어 그 나라 박물관을 가보는 것은 꼭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드디어 침대 기차를 타러 가는 시간. 짧은 시간에 자기보다 큰 짐을 옮기느라 전쟁을 치르고야 기차에 정착했다. 조그마한 몸집에 큰 가방을 이고지고 나르는 모습에 중국인들은 미소와 박수를 보냈다. 생전 처음 타는 침대 가차는 3층 침대가 마주 보고 있고 좁은 복도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침대 기차가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 있기도 한지 아이들은 재잘재잘 떠들고 놀기에 바빴고 간식으로 준비한 중국 컵라면을 맛보며 즐거워했다. 9시30분 소등이라 모두들 자리에 눕히고 나니 곤했는지 금방 아이들의 잠든 소리가 들렸다. 아~~ 오늘 같이 계속 기차를 타라면 ~~ 난 아마 몸살에 쓰러 지지 않을까?  

눕자마자 금방 잠이 들었지만 새벽에 추워 잠이 깨었다. 내 바로 위 층에서 자던 민수가 슈~욱 떨어지는 바람에 잠이 확~~ 달아 났지만, 민수는 언제 떨어 졌냐는둥.. 금방 다다닥 올라가더니 다시 코를 골았다. (뭐가 방금 지나갔냐~!!!!) 그렇게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아이들이 하나 둘씩 춥다며 깨기 시작 했고 다시 짐을 챙겨 이번에는 기차 내리기 대작전에 돌입했다. 한번 해 봐서인지 서로 도와 가며 잘 내렸다.

▲ 윤동주 생가를 돌아보며...
4월 26일-대성중학교의 윤동주, 문익환, 홍범도

기차에서 내린 곳은 연길(연변) 이었다. 조선족이 50%이상 거주한다는 이곳은 마치 북한의 거리를 보는듯 모든 간판에 중국어와 한글이 같이 적혀 있었고 건물이며 거리 풍경이 심양보다 덜 발전된 모습. 우리가 옛 영화에서나 보았을 것 같은 풍경들 그리고 북한을 보여주는 다큐에서 본 듯한 모습들이 참 신기했다.

아이들도 간판을 보며 재미있어 했다. 연길은 심양에 비해 많이 쌀쌀했다. 그곳에서 새로운 가이드 선생님과 함께 윤동주, 문익환, 홍범도등 여러 선생님들이 다녔다던 대성 중학교를 방문했다. 이곳은 현재 조선족 학생들이 다니고 있었고 우리가 도착 했을때 마침 점심시간이라 점심을 먹으러 가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모두들 똑같은 모양의 체육복을 입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니 수줍게 웃고 지나가는 모습이 왠지 낯설지 않았다. 우리아이들은 그곳 학생들이 마냥 신기 했는지.. 열심히 쳐다보지만, 숫기 없는 우리 들살이 누구 하나 다가가서 말을 걸지 못했다.  학교 안에 마련된 전시관을 그곳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관람하고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한게임 하고 가려 했는데..

공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아쉽게 그냥 떠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한 민족이고 서로 돕고 살아가야 한다는 설명을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윤동주 생가를 방문하고 두만강을 보며 강 건너 북한을 조망 했다. “저곳이 정말 북한땅이예요” “왜 우리는 못가요”

“이다리 건너면 바로 금방이네요” 이렇게 말하는 우리 아이들도 이산의 아픔을 느끼고 있는 것이겠지...우리 아이들 오늘 본 북한의 모습과 가지 못하는 아픔을 잊지 않을 것이다.

다시 버스를 타고 일송정을 보러 출발 했다. 산위에 덩그러니 정자 하나가 눈에 띄었다. 바로 일송정 그곳에 올라 해란강을 보며 선구자를 한번 불렀다. 이곳에서 독립운동을 위해 애쓰던 우리의 선조를 생각하며.. 뜻깊은 방문이었다. 오늘의 저녁은 연길 시내에서 아주 유명 하다던 꼬치구이 집에 가서 갖가지 꼬치구이를 먹었다. 우리 아이들 어찌나 잘 먹던지 ....  많이 먹고 기운내서 이동 수업 잘 해 보자.

▲ '일송정'에 올라 '해란강'을 보며 '선구자'를 불렀다
4월 27일-왕청 가나안학교에서의 첫날밤

지난번 보다 시설 좋은 호텔에서 하루를 푹 쉬고 다시 하루가 시작 되었다.  오전 일정은 연길에 있는 연길 과기대 방문으로 시작했다. 이 대학은 우리나라 사람 그리고 해외 동포들의 성금과 모금으로 세워진 대학으로 지금은 아주 유명한 대학이라 한다.

학교 방문후에 도문으로 이동하여 두만강을 넘어 함경북도 남양시를 조망 하였다. 아이들이 큰소리로 인사를 해 보았지만, 북한 사람들을 볼 수는 없었다. 그곳을 떠나 우리가 한달간 지낼 왕청 가나안 농군 학교에 입교했다. 입교식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우선 기본 유의사항과 식탁 예절 그리고 방배정등의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휴식에 들어 갔다.

이곳은 들어서면서부터 아~~ 이제 외출은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골짜기 산골마을에 참 예쁜학교가 있었다. 건물의 깔끔함과 정돈되어 있는 모습에 약간은 위압감을 느끼며 우리는 오리엔테이션을 받았다.

특이한 점은 항시 쉴 때는 이불을 펴지 말고 등을 벽에 기대지 말것 그리고 이불은 반드시 정해 놓은 규칙대로 정돈되어 있을 것, 식사 때는 차례로 앉아 마지막 사람이 앉으면 식사 묵념 그리고 식탁 구호를 외치고 식사를 시작할 것 등등이 있다. 

아주 생소한 식탁예절에 아이들은 신기하고 흥미로운 얼굴로 잘 적응해 갔다. 또한 밥 한톨도 남겨서는 안 되는 규칙도 있다. 학생 대표가 된 중현이는 매번 강의전후에 학생대표 인사를 하게 되었다. 인사란 : 정신/개척 이다.  그렇게 왕청 가나안 학교에서의 첫날밤이 저물었다.

▲ 백두산을 배경으로 노천온천 앞에서 한 컷. 글쓴이인 유라샘(사진 뒤.김유라 생활교사)과 올해 졸업한 민주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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