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57) 달걀은 잿속에 묻고, 자식은 가슴속에 묻어라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편집자 글]

* 독새기 : 달걀, 계란
* 묻곡 : 묻고, (깊이) 품고
* 조식 : 자식, 자녀

옛날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이 어디 있었겠는가. 김치를 담가 두고 일 년 내내 먹으려면 기온 변화로 빨리 시어 버리므로 뒤란 같은 데 땅을 깊이 파묻었다. 오래 두고 먹기 위한 지혜였다. 갈치, 고등어, 우럭, 멸치 같은 어물을 볕에 말려 두었다 먹는 것도 부패를 막기 위한 경험칙의 소산이다.

잘 말린 우럭을 고팡(광) 보리쌀 항아리에 넣었다가 제삿날 내놓아 바람 쐬고 석쇠에 구워 제사상에 올리던 기억이 난다.

달걀을 잿속에 묻는 것도 한가지다. 재는 독한 성분이 있어 균의 범접을 막아준다. 달걀은 날이 더우면 쉽사리 고려 버린다(썩어 버린다). 변질한 것을 먹었다 탈이 날 것은 말할 나위가 없는 일이다.

이처럼 자식을 잘 키우려면 그냥 내버려 두어서는 안되고, 부모가 가슴속 깊이 품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순조롭게 장성하도록 잘 먹이고 잘 입힐 뿐만 아니라, 잘 가르쳐 올바른 길을 걷도록 보살피면서 지켜보아야 한다. 자식은 곧 인생을 살아가는 가장 큰 보람이고, 삶의 근본이 아닌가. 

1988년 제주에서 촬영한 애기구덕과 어머니. 사진=강만보, 제주학아카이브.
1988년 제주에서 촬영한 애기구덕과 어머니. 사진=강만보, 제주학아카이브.

‘조식은 가슴에 묻으라’란 말엔 이런 훌륭한 일꾼이 되도록 훈육(訓育)을 해야 한다는 뜻도 내포돼 있음을 마저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잘 먹이고 입히는 것은 일차적인 것이고, 사람답게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나라의 동량(棟樑)이 되게 해야겠다는 신념을 지녀야 한다는 뉘앙스를 놓쳐선 안될 것이다.

혹여 부모 품에서 어른으로 장성하지 못하고, 어린 자식이 세상을 먼저 떠나는 경우에도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산다’고 한다.

하지만 ‘독새기’와 ‘조식’을 대구(對句)로 하고 있는 이 말에서는 부모 곁을 먼저 떠나가 버린 운운으로까지 가지 않아도 좋겠다. ‘자식을 사랑으로 따뜻이 가슴속에 품는다’ 정도로 해석해서 모자람이 없을 것 같다.

당연한 말이 아닌가. 우리 부모들 그 자식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가. 예전엔 아기 때 그 어미가 쌀을 입에 넣어 자근자근 씹어서 먹이기까지 하면 키웠다. 이 어떤 사랑인가. 당신들을 곯은 배를 물로 채워 가며 아이들에게 김이 무럭무럭 오르는 밥을 먹였다. 헐벗었으면서 입히고 추운 밤 문풍지 우는 소리에 잠에서 깰라 꼬옥 품에 품고 다독이며 재웠다. 

그게 부모의 내리사랑이다.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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