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호의 짧은 글, 긴 생각] 예순 여섯 번째

1970년 초, 필자가 남양MBC(현 제주MBC) 견월악 TV 송신소에 근무할 때다. 몰아치는 바람에 안테나 방향이 틀어져, 제주시 연주소에서 오는  신호를 잡을 수 없어 낭패를 당한 적이 있다. 그것은 야기(Yagi) 안테나였다.

2000년대는 TV의 수신 상태가 좋지 않을 때, 안테나의 방향을 방송국 송신소 방향으로 돌렸다. 지금은 수신 전계강도가 좋은 유선방송을 많이 보기 때문에 점점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있지만, 우리가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야기 안테나는 바로 TV 안테나다. 

이 간단한 구조의 안테나는 일본의 야기 히데츠쿠(八木 秀次, 1886~1976)에 의해 발명됐다. 야기는 일본의 물리학자로, 라디오파에 대한 연구에 주력했다. 그는 야기 안테나와 함께 오늘날 전자레인지의 핵심 기술인 'Magnetron' 등을 발명한 위대한 발명가다. 

영국 유학 시절 무선통신과 진공관에 인생을 걸기로 작정한 야기는 귀국하여 동북제국대학의 교수로 취임했다. 1926년 ‘단파장 전파의 발생’과 ‘단파장에 의한 고유파장의 측정’이라는 논문과 함께 야기 안테나를 선보였고 발명특허를 냈다. 야기 안테나는 TV 수신 안테나로 세계 곳곳에 볼 수 있는데, 대개 전파가 수평편파로 수평으로 안테나를 설치한다.

야기 안테나의 기본 형태나 구조는 매우 간단하다. 알루미늄-구리 금속의 막대를 수신전파의 반파장의 접은 길이(Half Wave of Folded Length)로 균일하게 배치한다. 이로서 일정 방향으로부터 오는 전파를 공진(共振·Resonance)하여 잘 수신할 수 있고, 반대의 원리로 강한 지향성 전파를 발신하는 것도 가능하다. 

야기 안테나는 지향성(指向性·Direction)을 가진 안테나이다. 방향과 안테나소자의 배열(Array)을 잘 맞추면 최대의 송수신 감도(感度)를 낸다. 이 안테나는 모국인 일본에서는 그다지 인정받지 못했으나 미국과 영국에서는 지극히 높은 평가를 받았다. 야기 안테나의 특성이 바로 전파탐지기, 레이더의 안테나로서의 조건을 매우 잘 만족시켰다. 레이더는 2차 세계대전의 초반, 영국 전투에서 모든 면에서 열세했던 영국군이 나치 독일군의 압도적 공세를 막아내도록 하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해내어 그 이름을 날렸다. 현대에도 레이더가 없는 전쟁은 상상도 할 수 없으며, 전쟁 이외에도 기상관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는 굉장한 발명품이다. 야기 안테나는 이러한 레이더를 구현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로, 2차 세계대전의 승패를 갈랐던 전략무기 레이더의 중추(重推)였다. 자국의 놀라운 발명품을 무시했던 일본, 결국 전쟁에서 패망했다. 

2차대전의 안테나 공학 역사에서 보면 야기 안테나가 처음 발명되었던 시기, 일본은 한창 동남아시아와 태평양에서의 전쟁을 준비했다. 그런데 이 안테나의 가치를 무시해버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영국 전투에서 초기의 레이더가 눈부신 성과를 이뤄내자 세계 각국은 앞 다퉈 고성능 레이더 기술을 개발에 전력투구했다. 당시 전자기술에 상대적으로 뒤떨어졌던 일본은 1941년 태평양 전쟁을 개시했고, 싱가포르를 점령하면서 영국의 레이더 2대를 발견한다. 영국 레이더 조작병이었던 레만 하사관의 노트를 발견했는데, 그 노트에는 레이더의 기술 사양과 작동법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일본군 조사관들은 그 문서를 읽던 중 야기(YAGI)라는 표현을 발견했지만, 이 단어는 사전에 나오지 않아 그 뜻을 알 수가 없었다. 결국 그들은 포로가 되어 있던 레만 하사관을 불러 심문했다. 그러나 그들은 깜짝 놀랄 이야기를 듣게 됐다. 

일본군 조사관이 레만 하사관에게 “이 노트에 적혀 있는 야기(YAGI)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고 묻자, 레만 하사관은 눈이 휘둥글 해지며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인가? 야기는 이 안테나를 발명한 일본인이다. 당신 나라 사람이지 않은가”라고 대답했다. 그는 일본군 조사관들에게 레이더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했는데, 일본 측은 자신들을 고민에 빠뜨렸던 적국의 최첨단 기술이 오래 전에 자국인의 손으로 개발되어 있었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이 사실에 깜짝 놀란 일본은 야기 안테나를 응용한 레이더의 개발을 새롭게 시작했지만, 결국 전쟁이 거의 끝나 갈 때쯤 개발이 완료되었고, 승패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하는 ‘뒷북’이 되고 말았다.

전쟁 기간 동안 제대로 된 레이더를 비롯해 미국의 전자전 능력에 대응할 뾰족한 방법이 없던 일본군은 레이더를 사용하는 미군의 정확한 공격에 번번이 큰 피해를 입은 뒤였던 것. 야기 교수는 전쟁 전부터 일본의 군부에게 야기 안테나, 그리고 레이더를 이용하는 전자전 기술의 잠재적 위협을 설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에 달리 대전 말기로 갈수록 미 해군은 레이더를 이용해 함포를 조준 발사했고, 어떤 조건에서도 정확히 날아오는 명중탄 앞에 야간 전투의 명수였던 일본군은 견딜 수 없게 되었다. 

일본이 진주만 습격 당시 공격 성공을 비는 암호는 ‘도라(Tora) 도라 도라’, 공격개시는 ‘도 도 도’였다.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투하(広島·長崎原爆投下, Atomic bombings of Hiroshima and Nagasaki) 사건은 1945년 벌어졌다. 태평양 전쟁(1941-1945) 당시 승기를 잡은 미국이 일본 제국의 항복을 이끌어내기 위해 일본 제국의 도시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 일본이 손을 들었다. 원폭을 탑재한 B-29, 전폭기 간 통신도 초고주파 야기 안테나로 송수신하며 일본을 때렸다. 혹시 당시 전폭기의 암호는 ‘야기(Yagi) 야기 야기’가 아니었을까. 전쟁 역사의 아이러니(逆說)다. 

사진=픽사베이.
이웃이 잘되면 내가 잘된다는 자리이타(自利利他)를 모르는 일본, 바다에 방류하는 원전 방사능이 이웃 제주로 흘러가는 것을 모르는가. 야기 안테나를 만들고도 2차 대전에서 ‘야기’로 패망했음을 상기해야 한다. 사진=픽사베이.

필자가 2000년 초 독일 아흔공대 연구교수로 갔을 때 이야기다. 당시 독일의 초고주파 연구교수는 독일군이 일본의 야기 안테나를 이용한 레이더 기술을 100% 탱크에 사용해 무적 전차 군단을 만들었다고 자랑했다. 현대전에서도 전자 통신 기술은 대단히 중요하다.. 전장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탐지 기술, 시공(時空)을 넘어 다양한 무기 및 전폭 비행기와 병사들을 서로 유기적으로 연동시키는 무선 데이터 링크 네트워크, 드론 폭격의 원격 조정과 함께 적국의 같은 시도를 방해하는 전파 방해 기술은 같은 무기라도 더욱 강력한 능력을 발휘하게 해 준다. 20세기 전쟁은 정보 통신의 전쟁이다. 배터리와 전자무기로 무장한 병사들의 전장을 누빈다.

야기 안테나의 핵심 기술은 자유공간속이 전자장(電磁場)의 특성임피던스(Impedance)가 377옴(Ohm)인데, 야기 안테나의 저항(抵抗)도 300옴(75옴*4[야기소자의 구부러진 부분, 2의 제곱]=300)으로 임피던스 정합(整合·Matching)이 잘되기 때문에 최대의 송수신 전력이 전달된다. 이 문제를 푼 게 야기 교수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근래에 들어서 일본은 이웃 한국을 왜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다. 일본 대외 정책이 약대강(弱對强), 강대약(强對弱) 아닌가. 미국에 대해서는 ‘굽실’, 한국에 대해서는 ‘뻣뻣’이 아닌가.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한국은 이미 일본 앞질렀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일본 원로 경제학자 일본 대장성(현 재무성) 관료 출신의 원로 경제학자 노구치 유키오(81) 국립 히토츠바시대 명예교수는 지난달 일본의 경제 전문지 ‘겐다이 비즈니스’와 ‘도요게이자이’에 기고문을 내고 자국의 경제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노구치 명예교수가 근거로 제시한 통계와 순위를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2020년 평균 임금은 일본 3만8515달러(약 4619만원), 한국 4만1960달러(약 5033만원)로 한국이 앞선 상태다. 주식 시가총액 세계 100대 기업 중 한국은 최상위가 삼성전자로 14위에 올라있지만, 일본에서 가장 높은 도요타자동차는 36위다. 시가총액 규모 자체도 약 2배 차이 난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최근 발표한 국가 경쟁력 순위에서도 한국은 23위, 일본은 31위로 차이가 난다. 특히 노구치 명예교수는 1인당 GDP(2020년 기준)가 일본(4만146달러)이 한국(3만1496달러)보다 아직 높으나, 문제는 ‘성장률’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은 2000년부터 20년간 1.02배 늘어난 것에 비해 한국은 2.56배 성장했다. 2000년 일본의 31%에 불과했던 한국의 1인당 GDP는 78%로 격차가 좁혀진 상태다. 20년 후 일본의 1인당 GDP는 한국에 2배 이상 뒤질 것”이라며 “주요 7개국(G7) 회원국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바뀌어도 일본은 할 말이 없다”고 쓴소리를 했다.

이웃이 잘되면 내가 잘된다는 자리이타(自利利他)를 모르는 일본, 바다에 방류하는 원전 방사능이 이웃 제주로 흘러가는 것을 모르는가. 야기 안테나를 만들고도 2차 대전에서 ‘야기’로 패망했음을 상기해야 한다.

# 이문호

이문호 교수는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출신 전기통신 기술사(1980)로 일본 동경대 전자과(1990), 전남대 전기과(1984)에서 공학박사를 각각 받고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서 포스트닥(1985) 과정을 밟았다. 이후 캐나다 Concordia대학, 호주 울릉공- RMIT대학, 독일 뮌헨,하노버-아흔대학 등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1970년대는 제주 남양 MBC 송신소장을 역임했고 1980년부터 전북대 전자공학부 교수,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며 세계최초 Jacket 행렬을 발견했다. 2007년 이달의 과학자상, 과학기술훈장 도약장, 해동 정보통신 학술대상, 한국통신학회, 대한전자공학회 논문상, 2013년 제주-전북도 문화상(학술)을 수상했고 2015년 국가연구개발 100선선정, 2018년 한국공학교육학회 논문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제주문화의 원형(原型)과 정낭(錠木) 관련 이동통신 DNA코드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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