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호의 짧은 글, 긴 생각] 예순 여덟 번째

바람결에 날리는 비바리의 머리칼

비바리는 제주에서는 시집 안 간 처녀를 통상적으로 부르는 이름. 동시에 갯마을의 건강한 처녀를 말한다. 보통 물질은 하지 않고 바닷가 갯벌 같은 데서 채취를 하는 것이 ‘해녀’와는 조금 다르다. 사전 상의 해녀는 바닷물 속에 들어가 물질을 하는 여성이다. 육지에서 살다보면 질문을 많이 받는 단어가 비바리의 어원이다. 기존에 발표 된 게 별로 없어 보인다.

어원을 찾아보면, 처녀의 뜻을 나타내는 말이다. 비바리는 머리를 묶지 않고 생머리로 다니는 것에 착안한다. 그래서 나온 말이, 피발(被髮)이다. 미루어 볼 때 처녀(處女)는 미혼이므로 쪽머리가 아닌, 피발(被髮)→피발이→비바리가 됐다. 기혼녀(旣婚女)는 비녀를 꽂은 쪽머리로 어머니 낭(娘)을 써서 낭자(娘子)를 말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지명이나 인명은 그 모습과 역사적인 관계에 따라 그에 걸맞게 한자로 표기한 것이 많다. 따라서 비바리는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인 피발(被髮)에서 온 것으로 추정된다. 1964년 5월 말경, 아카시아 꽃이 필 무렵 제주로 수학 여행가는 목포-제주 간 남영호 연락선 선창가에서 바람에 날리는 단발머리 하얀 교복 여고생은 지금은 어느 하늘 아래서 늙어가고 있을까?

경상도와 전라도의 ‘가시내’

‘사내’라는 단어의 반대말은 무엇인가? 그 답으로 ‘가시내’를 제시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나 ‘가시내’는 그 답이 될 수 없다. ‘사내’의 반대말은 ‘계집’이나 ‘계집아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의미만을 따진다면 ‘가시내’도 ‘사내’의 반대말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가시내’는 경상, 전라 방언이어서 ‘사내’라는 표준어의 대응어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가시내’는 경상, 전라 방언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지역에서도 많이 쓰고 있다. 그만큼 단어의 세력이 커진 것이다. 그럼 이 ‘가시내’라는 말은 어디서 온 것인가? 제안된 가시네 어원은 계집아이→계집예(倪, 어린아이 예)→계집녜→계지녜→계시녜→가시네로 보여진다.

경상도에서 가시내 어원을 예로 들면, 할머니와 어머니가 딸에게 훈도(訓導)할 때는 ‘계신예야 뭐하노?’라고 말한다. 친구·동류 간에는 친근감에서 ‘문둥이 계시내야 무라 하노!’라고 부른다.

한편, 제주도에서는 여아(女兒)는 지지빠이, 지지빠, 지집년, 지집네로 불렀다. 남아(男兒)는 소내이, 소나이, 소내놈, 남정(男丁)네 등으로 불렀다.

경상도와 제주민의 여아(女兒)에 대한 호칭(呼稱) 차이가 관습화돼 사용되고 있다. 이창화 조천초등학교 교장이 도움을 줬다.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에 비바리, ‘계집’에서 나온 가시내. 정겨운 말 아닌가? ‘큰 애기’의 풋풋함이 아름답다.

# 이문호

이문호 교수는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출신 전기통신 기술사(1980)로 일본 동경대 전자과(1990), 전남대 전기과(1984)에서 공학박사를 각각 받고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서 포스트닥(1985) 과정을 밟았다. 이후 캐나다 Concordia대학, 호주 울릉공- RMIT대학, 독일 뮌헨,하노버-아흔대학 등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1970년대는 제주 남양 MBC 송신소장을 역임했고 1980년부터 전북대 전자공학부 교수,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며 세계최초 Jacket 행렬을 발견했다. 2007년 이달의 과학자상, 과학기술훈장 도약장, 해동 정보통신 학술대상, 한국통신학회, 대한전자공학회 논문상, 2013년 제주-전북도 문화상(학술)을 수상했고 2015년 국가연구개발 100선선정, 2018년 한국공학교육학회 논문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제주문화의 원형(原型)과 정낭(錠木) 관련 이동통신 DNA코드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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