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충석의 칼럼과 에세이사이] (3) 고충석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前 총장

올해부터 시행되는 지방자치법 전면개정으로 지방자치 2.0시대가 열렸다. 지역주민들은 지역에 걸맞은 지방정부 형태를 선택하여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지방의회구성도 기관대립형으로 할 것인지, 기관 통합형으로 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고 기초자치단체 구성 여부도 주민의 결정 사항으로 넘어갔다. 이제 제주 특별자치법은 특별한 것이 없는 법이 되었다. 다른 지방자치단체들도 주민들의 의지만 있다면 제주특별법 같은 것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분권형 지방자치제 실현이라는 꿈을 안고 시행된 ‘제주특별자치’는 과연 성공했을까? 2006년 2월 21일 제정된 제주 특별자치법은 1회 전부개정, 19회 일부개정, 234회 관련법을 개정했음에도 불구하고 현행의 제주도 행정 체제모형은 많은 역기능을 잉태했다. 그중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모든 권력이 도지사에게 집중되는 이른바 ‘제왕적 도지사’ 현상이다. 어느 연구원의 보고서에 의하면 제주도 도지사의 권력이 크기나 강도 면에서 다른 광역자치단체장 권력의 2.7배(?)라는 것이다. 그래서 제주특별자치도 도지사와 주민들과의 권력 거리가 아득하게 멀게 되었다. 도지사는 구중심처(九重深處)에 앉아 있는 격이다. 권력 거리가 멀면 이른바 제왕적 도지사의 출현은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현행의 제주도 행정 체제모형은 많은 역기능을 잉태했다. 그중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모든 권력이 도지사에게 집중되는 이른바 ‘제왕적 도지사’ 현상이다. 김태환-우근민-원희룡 전 제주도지사.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현행의 제주특별자치도 행정 체제모형은 많은 역기능을 잉태했다. 그중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모든 권력이 도지사에게 집중되는 이른바 ‘제왕적 도지사’ 현상이다. 2006년 특별자치도 출범 이후 도정을 맡아온 김태환-우근민-원희룡 전 제주도지사(왼쪽부터)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시·군 폐지 여부를 묻는 여론조사 당시, 소위 혁신안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현행 행정 체제모형은 본래 취지에서 한창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제왕적 권력을 가진 도지사를 견제하기 위해서 현행 도지사가 임명하는 행정시장만큼은 주민 직선으로 뽑아야 한다는 도민들의 의견이 분출되기에 이르렀다. 특별자치도 도입 이후에 연달아 치러진 두 번의 도지사 선거에서 이것이 쟁점이 되었다. 2010년 6.13 지방선거에 도지사 후보로 출마한 우근민 전 지사는 당선되면 임명제 행정시장 문제를 근본적으로 검토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선된 우 지사는 조례를 제정, 이에 근거하여 행정시장 직선제 도입을 검토할 행정체제 개편위원회를 발족시켰다. 당시 우 지사의 권유로 필자는 행정체제 개편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그리고 우 지사는 위원회가 채택한 안을 제도화해서 2014년 지방선거부터 적용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약속했다. 그러나 각고의 노력으로 작성된 보고서는 도의회 문턱도 넘지 못한 채 사문화된 문건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우근민과 원희룡, 행정시장직선제 이룰 신념 없었다 

이후 2014년 6.13지방선거에서도 행정시장 직선 문제가 다시 쟁점이 되었다. 원희룡 지사가 취임한 이후 의회가 나서서 조례를 제정, 적합한 행정시장모형을 제시할 행정체제 개편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이번에는 의회에서 필자에게 위원장을 맡아달라고 해서 그 직을 맡았다. 지난번 우 지사 때는 실패했지만 이번만큼은 꼭 바람직한 행정시장모형을 결말지어야 하겠다는 각오로 열심히 했다. 위원들도 열정적으로 그 과제를 완수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혹시나 했던 기대도 역시나로 좌절되었다. 동 위원회 보고서도 우 지사 때와 마찬가지로 의회에 가보지도 못하고 휴짓조각이 되고 말았다. 분노가 노도처럼 가슴을 때렸다. 지식인이 정치인들을 통해서 세상을 바꾼다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절감했다. 

우 지사와 원 지사 때 제출된 행정체제 개편위원회의 보고서 내용은 조금씩 달라도 기조는 같다. 보고서의 내용을 압축하면 다음과 같다.

- 행정시를 산업구조의 동질성을 기준으로 4개(동제주시·제주시, 서제주시, 서귀포) 시로 나누고 행정시장은 주민 직선으로 선출한다. 
- 행정시장은 당적을 보유해서는 아니 된다. 
- 행정시의 권한은 제주도개발특별법에 열거주의 형태로 나열, 자세히 규정한다. 중요한 사항만 적시하면 행정시는 조례발안권, 4급 이하 인사권, 예산편성권 등을 가지며 행정시의 재원 염출 근거와 행정시에 적용될 예산 배분 기준 등을 명확히 규정한다. 
- 각 행정시는 일본식의 근린의회를 두어서 여기서 사업, 예산 등을 심의하도록 한다.
- 행정시가 도를 거쳐서 올라온 예·결산안, 조례안 등을 도의회에서 심의·의결한다.
- 요약하면 적어도 제주도의 행정시장은 광역시나 특별시의 구청장에 따르는 권한을 부여·보장한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행정체제 개편위원회 보고안이 의회 문턱도 가보지 못한 체 불발로 끝나버린 것은 참 애석한 일이다. 원 지사도 우 지사 모두 꼭 보고서의 내용을 제도로 천착, 행정시장직선제를 도입하겠다고 공적으로 천명했건만 공수표로 끝났다. 도의회 의원들도 이 문제에 대해서 매우 소극적이었고 소위 이론가라는 사람들의 주장은 공리공론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기초의회가 없는 지방정부 구성은 지방자치가 아니라는 지방자치 교과서만 성경 암송하듯이 되풀이했다. 주자 성리학의 근본주의 허구성을 보는 기분이었다. 

위원회 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한 근본적인 원인을 생각해보자.
가장 큰 이유는 두 지사(우근민, 원희룡) 모두 행정시장 직선제를 꼭 하겠다는 확고한 신념이 없었다. 단지 행정체제 개편위원회를 두어 행정시장 직선제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도민여론을 면피하기 위한 도구로 삼았을 뿐이다. 행정시장이 주민 직선으로 선출되면 시장의 권력은 시장을 임명하는 도지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주민들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주민들의 손으로 시장을 직접 선출하는 자체가 직선 시장에게 상당한 정도의 힘을 부여해주는 제도적 근거로 작용한다. 이러한 힘 있는 시장을 반가워할 지사가 몇이나 있을까. 우 지사나 원 지사는 실질적으로는 직선 시장제를 수용할 마음이 없었지만, 시장 직선을 선호하는 도민여론을 무시할 수가 없어 궁여지책으로 시장 직선제를 도입하겠다고 변죽만 울리다 말았다.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현행의 행정체제는 철저하게 실패했다. 민주성도 효율성도 살리지 못한 기형적인 구조를 낳았을 뿐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말하기로 하고 먼저 기형적 구조의 상징이 된 제왕적 도지사 권력을 어떻게 견제할 것이냐 하는 문제에 초점을 맞춰보자. 그야말로 민주성 확보가 문제다. 여러 방안이 논의 될 수 있지만 그나마 실현 가능한 대안이 행정시장 직선제 도입이다. 행정시장 직선제 도입에 대해서는 이미 연구가 많이 되어 있고 당장 도의회 선거구를 손보지 않아도 가능하다. 현실적으로는 주민들의 선호도가 높은 점도 장점이다. 

  기초자치제 부활 지지하지만 실현 가능한 대안인가? 

이와 관련하여 행정시장 직선제보다 기초자치단체 부활을 주장하는 사람도 많다. 필자는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기초단체의 부활이 현실적으로 당장 가능하겠는가 하는 점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가능하지 않다. 그 이유는 기초자치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도의원 수를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 이를 도의원들이 동의하겠는가? 그들은 말로는 기초단체 부활을 이야기하지만, 자신의 선거구를 날려버릴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기초자치 도입을 환영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도의원들은 좀 더 솔직해야 한다.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도 그들은 행정시장직 선제 도입이 정치적으로 잠재적인 맞수를 키워주는 꼴이라며 반대했는데 행정시장보다 더 센 기초자치단체장의 등장을 반기지 않을 것은 뻔한 이치다.

과거에도 제왕적 권력을 가지고 있는 도지사가 행정시장 직선제 도입에 협조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직선 행정시장보다 더 큰 힘을 가지게 될 기초자치단체장의 출현을 반길 리 만무하다. 제주특별법 도입 당시 도민들은 기초의원들이 지역에서 목에 힘이나 주고 다니는 행태에 대한 반발로 기초의회 폐지 쪽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런 정서가 지금이라고 해서 해소됐는지는 의문이다. 이런 이유로 기초자치의 부활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우리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나는 기초자치 부활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지만 뾰족한 해결방안이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나마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안은 이 행정시장 직선제다. 모든 정책이나 제도는 현실에 기반을 둬서 주조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 교과서는 단지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참고 사항일 뿐이다. 행정시장이 직선으로 뽑히고 거기에 법률로 권한을 보장해주면 상당히 힘 있는 행정시장이 될 것이다. 요사이 여권에서 거론된 바 있는 행정시장 예고제나 러닝메이트제는 다 도지사의 전제적 시장임명권을 희석 시키기 위한 세탁용 슬로건이다. 직선시장 하에서도 시장의 역량에 따라 엄청난 권력자원을 개발·행사 할 수 있다. 문제는 제도도 중요하지만 그 제도를 운용하는 지도자의 역량이 더 중요하다. 제도만 탓하는 사람은 매사마다 사주팔자만을 탓하며 운명론자로 살아가는 사람과 같다. 예컨대 고(故) 신철주 북제주군수는 군수 신분이었지만 도지사보다 더 많은 일을 남기고 저 세상으로 떠났다. 신 군수가 법률적으로 부여된 권한만을 행사했다면 그 의미 있는 업적을 어떻게 남길 수 있었겠는가.

기초의회가 없는 지방정부 구성은 지방자치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주장이야말로 자치근본 주의에 매몰된 주장이다. 지방자치는 모범답안은 있어도 정답은 없다. 그 정답은 시대정신, 통신·기술의 발달, 해당 지역의 환경이나 여건에 따라 주민들의 의사 등을 고려해서 작성되는 주관식 시험 답안지 같은 것이다. 본래 기초단체 구역은 영국에서 마차로 한나절 동안 갈 수 있는 거리를 기준으로 획정되었다. 이 기준은 현대에 와서는 시대착오적인 척도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지방자치 모형이 있다. 광역자치단체의 경우, 자치 계층의 수가 두 개인 곳이 다수이지만, 사정에 따라 1개의 경우도 있고  3개인 곳도 있다. 의회는 없고 시장만 있는 예도 있고, 그 반대로 의회만 있고 시장은 없는 예도 있다. 광역자치단체인 제주도가 꼭 전통적인 방식으로 정부 형태를 구성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가 고민할 문제는 현재의 제주특별법하에서 행정시장 직선제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한다면 어떤 제도적 모형으로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런 접근이 매우 실용적이다. 

올해엔 대선 이후 지방선거가 있는 해이다. 이제 얼마 없으면 새로운 도지사가 선출된다. 또 새로운 중앙정부도 출범한다. 이후에도 제왕적 도지사 권력을 이대로 밀고 나갈 것인가? 안될 일이다. 미래의 도지사에게 강력하게 주문한다. 도지사에 당선되면 행정시장 직선제 도입을 위한 작업을 강력하게 밀고 나갈 것은 권고한다. 제도도 진화한다. 행정시장 직선제를 일정 기간 운영하다가 여건이 성숙하면 행정시를 기초자치시로 변환하면 된다. 도의회 의원 수외 기초의원 수만 조정하면 된다. 

이러한 작업은 당장 기초자치를 채택하는 작업보다 훨씬 쉽다. 제도의 축적된 힘 때문에 그렇다. 21세기는 시간과의 경주다. 더 이상 제도 도입 운운하며 갑론을박할 시간이 없다. 새로이 선출된 도지사는 도민여론의 중구난방에 확실한 종지부를 찍고 제주 도약의 기치를 높이 들기를 바란다.

고충석은? 

現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제7대 제주대학교 총장, 제주국제대학교 초대 총장, 제주발전연구원장 등을 역임했다. 제주를 대표하는 원로학자로서 칼럼과 에세이를 넘나드는 노마지지(老馬之智)의 조언을 격주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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