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의 섬에서 상생의 길을 찾다] 제주 액탑, 부정과 액을 막는 마을공동체적 민간신앙

 
▲ 제주시 이호동 골왓마을에 있는 방사탑
ⓒ 김강임
 
방사탑, 마을의 민간신앙이 깃든 액탑

흔히 사람들은 제주도를 일컬어 지상의 파라다이스라 부른다. 산과 바다가 조화를 이룬 섬, 화산폭발로 잔돌이 많은 화산섬, 사면이 바다인 변방의 섬. 하지만 섬사람들에게 있어 산과 바다는 늘 아름다운 풍경만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바다와 산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아름다울 테지만, 섬사람들은 마을에서 훤히 내다보이는 산과 바다에서 부정한 액운이 들어온다고 믿었다. 그래서 마을의 경계나 허한 곳에 탑을 쌓았다.

제주도를 돌다보면 마을 어귀나 바닷가 근처, 관광지 등에서 바위섬 같은 탑을 만난다. 조형물 같기도 하고 돌무덤 같기도 한 이 탑은 방사탑. 방사탑은 제주인들의 마을 공동체적 민간신앙이 깃들여 있는 돌탑이다.

방사탑은 말 그대로 '사악한 기운을 막아주는 탑'으로, 육지의 장승과 솟대와도 같은 속신이다. 제주인들은 지형적으로 허한 곳에서 부정과 액이 들어온다고 믿었다. 그리고 사악하고 부정한 액은 마을 전체로 퍼진다고 믿었다. 이 사악한 기운을 방지하기위해 액탑을 쌓았다.

이 탑 속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걸까?

탑을 쌓아 불길한 징조 막아내다

 
▲ 도로 옆에 또하나의 방사탑이 잡초속에 서 있다.
ⓒ 김강임
 
현재 제주도 민속자료로 지정된 방사탑은 17기. 제주시 이호동과 제주시 한경면용수리,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 등에 산재해 있다. 특히 마을사람들은 풍수지리설에 따라 마을의 한 방위에 불길한 징조가 비치거나 액운이 따르면 힘을 합쳐 액탑을 쌓았다고 한다.

지난 7월 15일, 제주시 이호동에서 80대 할머니를 만났다. 극구 카메라를 피해 달아나는 할머니는 이 마을 사람 중에선 유일하게 액탑을 쌓을 때 함께 했다고. 할머니 말에 따르면 "마을에 이유 없이 화재가 나고 불길한 징조가 비쳐 탑을 쌓았다"고 한다.

이렇듯 탑을 쌓았던 사람들은 하나 둘 이 마을 떠났거나, 세상을 떠나 아쉽지만, 아직도 마을 사람들은 이 방사탑의 의미를 예사롭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

 
▲ 2개의 방사탑을 사이에 두고 도로가 생겼다.
ⓒ 김강임
 

골왓마을 방사탑, 도로확장으로 흩어져

지난 7월 15일, 제주도민속자료 8호로 지정된 골왓마을 방사탑을 찾아가 보았다. 제주공항에서 10분정도를 달리자, 제주시 이호동 골왓마을에서 방사탑 5기를 찾을 수 있었다. 금방이라도 와르르 허물어질 것 같은 돌탑이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표지판을 읽어보고서야 방사탑임을 알 수 있었다. 이 탑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 표지석을 읽어 보고서야 방사탑을 알수 있을 정도다.
ⓒ 김강임
 
골왓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북쪽지대가 낮고 바다가 훤히 들여다보여 액운이 이쪽으로 들어온다고 믿어 탑을 쌓았다. 마을 사람들은 탑이 새워져 있기 때문에 큰 재앙을 막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탑 위에는 새 모양의 길쭉한 돌이 있다. 새는 신의 사자로 재앙을 쫒는 상징물인 까마귀를 형상화한 것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점은 이호동 골왓마을의 방사탑이 1995년 8월25일 제주도 민속자료로 지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로확장을 이유로 방사탑 5기가 흩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골왓마을 방사탑을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치 숨바꼭질을 하듯 찾아다녀야 한다.

 
▲ 밭 한가운데 또 하나의 방사탑이 서있다. 이곳에서는 바다가 훤히들여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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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을 심은 밭 한가운데 서 있는 방사탑이 있는가 하면 잡초가 우거져 있는 곳에 있는 것도 있어 마을사람들의 한때 쌓았던 공든 탑의 의미가 쇠퇴되어 가고 있다.

제주시에서 동쪽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풍경이 아름다운 신흥리 마을이 있다. 신흥리 포구에 들어서자 5개의 방사탑이 눈에 띄었다. 2개는 마을이 생길 무렵 생긴 탑이고 나머지 3개는 근래에 생긴 탑이다. 속설에 따르면 신흥리 마을은 게 모양으로, 이 마을엔 인물이 태어나도 게가 집게발로 물어서 성공하지 못 한다는 속설이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마을사람들은 지형이 허한 곳에 액탑을 세웠다.

 
▲ 잡초로 우거진 방사탑 주변은 식별이 어렵다. 문화재 관리가 요구된다.
ⓒ 김강임
 


우리문화 제대로 알고 보존하는 의식필요

방사탑은 거욱대, 가욱, 거왁, 극대라 하며 방사탑을 쌓을 때는 주로 좌우, 음양, 남북 대칭으로 쌓는다. 그 돌무덤 속에는 무쇠 솥이나 밥주걱을 넣는다. 그리고 탑의 상단은 새와 돌 형상으로 장식을 한다.

이에 대해 제주전통문화연구소 박경훈 소장은 "마을의 재앙을 막아달라는 의미에서 강인한 도구를 사용했다"며 "현재 방사탑은 제주인들에게 있어 마을 공동체적인 민간신앙이 깃들여져 있는 귀중한 민속자료임에도 불구하고 무분별한 도로확장 등으로 인해 관심 속에서 멀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문화를 제대로 알고 보존하는 의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제주시 신산공원에 있는 4.3 해원탑
ⓒ 김강임
 
 
▲ 제주시 신산공원 내에 있는 4.3 해원탑의 석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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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해원탑, 역사와 현실을 이어주는 끈

제주시 신산공원에서 아주 특별한 방사탑을 만났다. 크고 작은 돌로 쌓아 올린 4·3 해원탑은 제주 역사의 아픈 상처를 딛고 우뚝 서 있었다. 4·3 해원탑은 4·3의 비운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염원에서 세워진 액탑이다. 특히 역사와 현실을 이어주는 끈이라는 사실이 더욱 진한 감동을 준다.

4·3 해원탑은 지난 1998년 4·3 50주년을 맞아 부정을 막고 원혼을 위무하며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세운 탑이다. 특히 4·3 해원탑은 '제주 땅에 다시는 죽임의 광풍이 불지 않게 하는 방사탑으로 억울하게 돌아가신 조상의 한을 풀어주고, 더불어 살며 평화의 미래를 가꾸는 상생의 탑으로 쌓은 것'이다.

 
▲ 탑 상단에 돌로 장식을 해 놓았다.
ⓒ 김강임
 
 
▲ 제주시사라봉에 있는 타임켑슐은 방사탑 조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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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인간을 접속하는 메신저

이렇듯 화산섬 제주에선 마을공동신앙으로 돌탑, 즉 액탑을 쌓았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방사탑을 쌓았던 의미가 상실되어 간다는 점이다. 특히 현대인들은 방사탑을 조형물로 이용하고 있다.

풍수지리적으로 전염병과 화재예방은 물론 해상의 안전과 아이를 낳게 하고 보호해준다고 믿었던 방사탑, 마을 사람 모두가 한마음으로 돌을 날라 키워왔던 마음속 돌탑, 강한 풍우에도 끄덕 하지 않고 마을을 지키는 '바위섬'은 신과 인간을 접속해 주는 메신저가 아닐 런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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