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귤재배 40년 변용부씨의 ‘한숨’...“공무원 동원 뭐하는 일이냐. 농가가 정신 차려야”

▲ 4일 서귀포시 서홍동 농장에서 열매따기에 나서고 있는 제주도청 공무원들.
감귤 열매따기에 비상이 걸렸다.
올해산 노지감귤이 과잉생산 될 것으로 관측돼 두 차례에 걸친 감귤원 폐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감귤생산 예상량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지금 이 상태로 방치할 경우 지금까지 감귤폐원 등을 위해 쏟아 부은 800억원이 수포로 돌아가게 됨은 물론 올해산 감귤 가격 폭락도 불을 보듯 뻔한 상황에 처해 있다.

제주도와 농•감협은 열매가 지나치게 작아 상품으로 유통될 수 없는 1•2번과를 9월 한달 동안 따 줄 것을 당부하고 있으나 농가들의 참여가 극히 부진해 지난 2일 현재 열매따기 실적은 계획량 8만톤에 비해 2362톤으로 3%에 불과한 실정이다.

제주도는 4일과 10일을 '감귤 열매솎기의 날'로 지정해 도•시•군 공무원과 농•감협 직원 등을 대대적으로 동원해 감귤 열매따기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행정당국이 주도(?)하는 열매따기가 과연 '8만톤 감산'이라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현재로써는 극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농가의 자발적 참여가 없는 10% 열매따기는 자칫 행정의 낭비를 초래하고, 행정에 기대려는 타성만 키워줄 뿐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마저 일고 있다.

▲ 지금은 감귤 밑가지에 있는 0번과와 1번과를 따내야 한다. 하루종일 허리를 굽힌 채 따내야 하는 결코 쉽지 않은 작업니다.
"참으로 딱한 노릇입니다. 열매를 따주겠다니 나야 고맙죠. 그러나 공무원들이 이게 뭐 하는 겁니까. 공무원은 공직에 충실하면서 나라에 충성해야지, 농가가 해야 할 일을 공무원들이 하다니…"

공무원들이 투입돼 열매따기가 한창 벌어지고 있는 4일 오전 서귀포시 서홍동 1874번지 감귤원.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구부려 밑가지에 달려있는 1•2번과를 따는 공무원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감귤원 주인 변용부씨(71)의 얼굴에는 고마움 반, 염려 반으로 가득 차 있다.

“아니 어떻게 할 겁니까. 이렇게 공무원들이 매달린다고 될 일이 아니 예요. 농가들이 직접 따야 합니다. 공무원들에게 감귤농사를 맡길 것도 아니잖아요. 공무원들도 하나하다 안되니까 어쩔 수 없이 나서는 것이겠지만 농가들이 각성해야 합니다. 이게 멉니까.”

지난 67년부터 감귤을 재배해 왔다는 변씨의 과수원은 공무원들이 이날 도착하기 이전부터 변씨 스스로 열매를 딴 흔적이 이곳저곳에서 발견됐다.1600평의 농장에 3분의 1은 이미 열매따기를 마쳐 있는 상태였다. 시청에서 동사무소에서 열매따기 인력을 신청하라는 성화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이날 인력지원을 신청한 그였다.

"지금 67만톤이 생산될 거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10~15%는 과감히 따야 합니다. 10%만 따도 6만7000톤, 그리고 나머지는 10월쯤에 가서 가을전정을 하면서 대과(9번 10번과)를 따주면 10만톤 이상은 될 겁니다. 우리가 56만톤을 적정생산으로 본다면 지금 과감히 따야 합니다.”

▲ 37년간 감귤농사를 지어 온 변용부씨. 그는 제주감귤을 살아나기 위해서는 농가가 먼저 각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씨는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에 대해 너무나 고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농가들에게 잘못된 타성만 심어주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감추지 않았다.

“예전에야 좋았죠. 나무에 달려있기만 하면 가리지 않고 팔렸으니까. 한 관에 4천~5천원 할 때야 정말 좋았죠. 이걸로 자식들 교육시키고, 결혼시키고 했으니까. 그때는 정말 감귤나무가 노다지였어, 노다지.”

3남5녀를 두고 있는 변씨는 1600평 감귤원으로 자식농사를 마쳤다. 그리고도 돈이 약간 남자 의귀리와 상천에도 조그마한 땅을 사서 칠순의 나이에 혼자 감귤농사를 짓고 있다. 감귤나무를 ‘노다지’라고 한창 칭찬하던 그도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고 말할 때는 어쩔 수 없이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 1600평의 과수원으로 3남5녀를 키운 변용부씨는 감귤농사도 이제는 변해야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좋던 시대는 갔어. 이젠 경쟁해야 하는데 예전처럼 창고에 쌓아두면 무조건 돈이 될 거라고 생각하면 안돼. 물론 이유야 있지, 이해도 돼. 서귀포에서 4천~5천평 하는 농가가 많지 않아. 대부분 2천평 이하야. 나중에 가격하락 할 것은 생각하지 못하고 당장 생계문제로  나무에 열렸다고 무조건 팔려고만 하니 안 되지. 아직도 많이 달리면 많이 줄 것으로 생각하는데 판단 잘못이냐 잘못.”

그에게 “그렇다면 농가들이 열매따기를 잘 하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그러니까 문제지. 제주도에서 지원을 하겠다고 하면 (열매따기를) 해야 하는데 눈막고 귀 막아버리니 문제지. 나도 시범적으로 신청을 하긴 했지만 공무원들을 보면서 정말 답답해. 관에서 아무리 잘 하겠다고 해도 우리가 말을 안 들으니 될 수가 없어. 공무원들이 감귤농사를 책임질 수 없잖아. 잘 되도 농가가 돈 버는 것이고, 망해도 농가 책임이야. 공무원에게 책임을 돌리던 시대는 이제는 지나갔어.”

수년동안 감귤열매따기를 해 왔던 변씨는 감귤열매 따기에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감귤 열매를 따주는 게 경제적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요즘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아. 감귤을 따려면 하루 인건비 3만5천원을 줘야하는데 그들이 하루에 고다마(0번•1번과) 50관을 못 따. 재작년에 파치 값이 kg당 80원, 관당 300원했는데 50관하면 1만5천원. 인건비는 고사하고 농약값도 안 나오잖아. 그럴 것을 뭐 하러 놔두냐 말야. 공무원들이 따준다고 할 때 지금 따 버려야지. 지금 적과를 해주면 150관을 딸 수 있어. 엄청난 이익이지. 무조건 창고에 쌓아 놓기만 하면 돈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제는 달라. 3~4년전만 해도 상인들이 2번과를 알아줬어. 숫자 많으니까 갈라먹기 좋잖아. 그런데 이제는 아니 잖아. 9번 10번과는  솔직히 말해 껍질도 두껍고 맛도 없고 이제는 따서 버려야해.”

일부농가에서 감귤 열매따기 지원 신청을 기피하는 이유가 지원인력이 상품 비상품을 가리지 않고 마구 따버리기 때문에 인력지원을 요청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그런 문제가 있지. 맡겨 버리면 박박 훑어 버리는 경우가 있어. 때문에 주인이 알아서 부탁해야지 그대로 나두면 안 돼. 어제 나도 시청에도 이야기 했고, 오늘 온 공무원들에게도 이야기 했어. ‘0~1번과만 따라. 2번과는 놔두면 3~4번 상품이 되니 0~1번과만 따라. 그리고 9~10번과는 나중에 내가 10월달에 따겠다.’고 했지. 그들에게 그냥 맡겨버리면 안돼. 주인이 직접 챙겨야 돼.”

▲ 바닥에 버려진 1번 2번과. 마음은 마프지만 적정생산과 가격보장을 위해 열매따기를 반드시 해 줄 것을 제주도는 당부하고 있다.
변씨와 몇 마디 나눌 즈음 공무원들이 잠깐 휴식을 하기 위해 옆자리에 앉았다. 공무원들이 있다고 해서 다른 말을 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에 제주도의 감귤정책이 잘됐는지에 대해 물어봤다.

그의 입에서는 단번에 “모르커라”며 화가 난 듯 이야기가 이어졌다.

“잘하는지 못하는지 모르커라. 잘 하겠다고 해봐도 농민들이 따라줘야 하는 데 말을 듣지 않으니 잘 하는 것 같지가 않아. 공무원들이 나오는 것도 세금 아니라. 우리가 세금내고 우리 돈으로 열매를 따는 것인데 왜 하지 않는지 모르크라 정말. 이제는 농민들이 먼저 정신을 차려야해.”

“이렇게 열매따기를 하지 않다가도 막상 풍년이 들어 감귤 값이 떨어지면 도청 책임이라고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의 입에서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쏟아져 나왔다.

“감귤을 위해선 선거를 아예 없애버려야 돼. 도지사나 누구나 감귤 값이 떨어지면 감귤표가 도망 갈까봐 이 정책 저 정책 쓰고, 돈도 마구 쓰곤 하는데  아예 선거를 없애버려야 해. 그래야 농민들도 정신을 차릴꺼라. 내가 분명히 말하지만 소과를 따면 인건비가 30%는 절약되고, 감귤 값은 관당 1천원이라면 1500원은 갈꺼라. 지금부터라도 소과는 가감해 따야 해 10~15%씩 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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