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년恨 온 몸에 역사로 새겨 와...후유장애와 노환으로 8일 하직

▲ '무명천 할머니' 진아영씨 - (김동만ㆍ고성만著 - '몸에 새긴 역사의 기억'에서 발췌) 
4.3의 아픔과 고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반세기 이상 턱에 하얀 무명천을 두르고 다녀야 했던  ‘무명천 할머니’ 진아영 할머니가 8일 오전 9시5분 한 많은 이승을 하직했다. 향년 90세.

진아영 할머니는 제주4.3이 일어난 다음해인 1949년 1월 한경면 판포리에서 경찰이 쏜 총을 맞아 턱을 잃었다. 이 사건으로 진 할머니는 지난 60년 가까이 제대로 말을 하지도 듣지도 못해 제주4.3의 아픔을 대변해 준 상징적인 인물로 인식돼 왔다.

진 할머니는 그 고통의 턱을 감추기 위해 평생 무명천을 두르고 다녔다. 음식을 먹을 때도 물 한잔을 마실때도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음식을 흘리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진 할머니는 진통제와 링거가 없으면 잠을 잘 수 없을 만큼 고통을 겪으며 모질게 살아왔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4.3의 비극을 반증하듯 국가와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핍박받는 삶을 살았다.

진 할머니는 일제, 해방정국, 4.3으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혼란스런 시절을 온몸으로 관통해 온 제주지역 아픔의 역사였다. 

▲ 병상에 누워있는 '무명천 할머니'
할머니의 삶은 마지막까지 순탄치 않았다. 월령리에서 홀로 지내던 그는 병세가 악화되자 2년 반동안 이시돌요양원에서 요양을 받으며 4.3 후유장애와 더불어 심장질환과 골다공증 등 노환으로 하루도 편치 않았다.

시대가 바뀌어 4.3특별법이 제정되고, 4.3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는 시절, 평생의 한을 이제야 풀 수 있는 호시절이 왔지만 진 할머니는 이를 아는 듯 모르는 듯 8일 오전 9시5분 조용히 눈을 감았다.

다시는 4.3과 같은 엄청난 비극과 고통이 없는 저승길로 말 없이 떠났다. 진아영 할머니의 발인은  9일 오전 9시이며, 묘지는 한림읍 대림리 성이시돌 요양원 공동묘지이다.  

이승의 고통과 한을 저승에서는 부디 푸시길 바라며 진 할머니의 한 많은 삶을 기리는 허영선 시인의 시집 ‘뿌리의 노래 중 ‘무명천 할머니 -월령리 진아영’을 제주의 소리에서는 바친다. 부디 영면하소서.

 

무명천 할머니

 - 월령리 진아영


한 여자가 울담 아래 쪼그려 있네

손바닥 선인장처럼 앉아 있네

희디 희 무명천 턱을 싸맨 채


울음이 소리가 되고 소리가 울음이 되는

그녀, 끅끅 막힌 목젓의 음운 나는 알 수 없네

가슴뼈로 후둑이는 그녀의 울음 난 알 수 없네

무자년 그 날, 살려고 후다닥 내달린 밭담 안에서

누가 날렸는지 모를

날카로운 한발에 송두리째 날아가 버린 턱

당해보지 않은 나는 알 수가 없네

그 고통 속에 허구한 밤 뒤채이는

어둠을 본 적 없는 나는 알 수 없네

링거를 맞지 않고는 잠들 수 없는

그녀의 몸의 소리를

모든 말은 부호처럼 날아가 비명횡사하고

모든 꿈은 먼 바다로 가 꽂히고


어둠이 깊을수록 통증은 깊어지네

홀로 헛것들과 싸우며 새벽을 기다리던

그래 본 적 없는 나는

그 고통을 진정 알 길 없네

그녀 딛는 곳마다 헛딛는 말들을 알 수 있다고

바다 새가 꾸륵대고 있네

지금 대명천지 훌훌 자물쇠 벗기는

베롱한 세상

한 세상 왔다지만

꽁꽁 자물쇠 채운 문전에서

한 여자가 슬픈 눈 비린 저녁놀에 얼굴 묻네

오늘도 희디흰 무명천 받치고

울담 아래 앉아 있네

한 여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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