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제주 다민족문화제에 다녀와서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 제주종합경기장 내 한라체육관 일대에서는 다(多)민족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행사장에 도착해 보니 아그들 밴드와 꿈꾸는 공부방 지역아동센터 어린이들이 무대공연을 펼치고 있었다. 구석구석에서는 바람개비 만들기, 비눗방울 만들기, 요술풍선 만들기, 페이스페인팅, 어린이 놀이공원 등의 부대행사도 펼쳐지고 있었다. 제주세관과 출입국관리사무소 등 정부 산하기관에서도 나와 있고, 무료진료, 이․미용 봉사, 제주외국인근로자센터 홍보부스, 천주교제주교구 이주사목위원회 외국인쉼터, 만인․만국의 쉽터 등의 부스도 보인다.  

엽서를 쓰면 무료로 보내준다기에 얼른 썼는데 써놓고 보니 주소를 기억해내지 못한다. 손으로 직접 써서 엽서를 부쳐본 지가 너무 오래되었다는 걸 새삼 느꼈다. 각 나라의 부스로 통하는 길목에 KT에서 제공하는 국제전화 무료서비스가 이뤄지고 있었다. KT 직원에 의하면 통화 건 수로는 몇 건인지 정확히 파악이 안 되지만, 추석날과 오늘까지 약 200만 원 상당의 무료 통화를 해주었다고 한다. 약간의 후원금보다 가족의 목소리를 직접 듣게 해주는 게 더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기획하게 되었다고 한다.  

   
 
▲ 무료통화를 하고 있는 외국인들 ⓒ 양영자
 

부스를 죽 돌아보려는데 이상한 복장을 한 학생들이 눈에 띈다. 백설공주, 게이샤, 스파이더맨, 베트맨, 스크림, 마녀 등 이색적인 복장을 한 이들은 제주여상 자원봉사 학생들이다. 20여 명의 학생들이 이 행사에 동참했다는데,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어주고 행사 안내를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들 중에는 내 제자도 한 명 있었다. 중간고사 일정 때문에 봉사활동에 참여하지 못한 우리 학교 학생들의 볼멘 얼굴이 떠올랐다. 
 

   
 
▲ 자원봉사 하고 있는 제주여상 학생들 ⓒ 양영자
 

나무 그늘마다 외국인 이주자들이 비스듬히 드러눕거나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다. 여기저기 자기 나라의 민속 의상을 입고 나들이 나와 시선을 끈다. 

▲ 론다를 쓰고 아오자이를 입은 여성

▲ 필리핀 남.녀 복장을 한 사람들

체육관 일대에는 미국, 우즈베키스탄, 몽골, 중국, 베트남,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일본, 필리핀 등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나라별 부스가 설치되어 있었다. 인도네시아 부스에서 젊은 청년을 만났다. 그는 돌 공장에서 일한다고 한다. 영어는 못하며, 인도네시아말만 한다는 그는 어눌하지만 또박또박, 우리말로 자신의 이름을 적어주었다. 가족이 보고 싶지 않냐는 말에 브이자를 그려 보이며 환히 웃었다. 
 

▲ 아립 빈(남, 25세)

몽골 부스에서는 하루 운세를 점치는 샤가이 놀이가 아이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자원봉사자 대학생이 성읍민속촌에 와 있는 몽골 기예단에게서 배우고 와서 어린 아동들에게 가르쳐주고 있었다. 바로 옆의 우즈벡스탄 부스 앞에는 고비에서 건너온 낙타 한 마리가 역시 동심을 잡아끌고 있다.

잠시 후 고 씨와 필리핀에서 온 아가씨의 전통혼례를 올린다는 안내방송이 나와서 급히 가보았다. 보름달 같이 둥근 여인이 수줍은 얼굴을 하고 초례청 앞에 서 있었다. 혼례 진행자는 의식에 대한 순서와 자세 등을 자세히 설명해 주면서 혼례를 이끌어 갔다. 하객은 그리 많지 않았으나 신부의 함박웃음은 한가위만큼이나 넉넉하기만 하다.

▲ 전통혼례를 올린 신랑과 신부

신랑, 신부 양옆에서 마치 아들, 딸을 혼인시키듯 정성스럽게 시중들고 있는 이들은 제주시여성단체협의회 소속 어머니들이었다. 이 분들은 한 부스에서 빙떡과 오메기떡 무료 시식을 하고 있었다. 추석 지내랴, 행사 준비하랴 손이 부족했을 것을 생각하니 고맙기 그지없다.

▲ 제주시여성단체협의회 회원들
 
오후에는 난타 공연을 비롯하여, 노래자랑, 패션쇼,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몽골의 전통춤 공연 등이 펼쳐진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이 적을 것 같아 내심 속으로 걱정된다. 태풍 ‘나리’의 피해 복구 작업과 맞물려서인지, 행사장에는 외국인 이주자와 자원봉사자들이 대부분이고 내국인은 그리 많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침착해진 사회 분위기 탓도 있지만, 우리 사회의 무관심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이제 외국인 이주자들은 우리 속의 외국인이 아니라 엄연히 우리 사회의 일부가 되었고, 함께 나누고 더불어 살아가야만 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 행사가 그들만의, 그들을 위로하는 일회성 잔치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풍토를 조성하는 밑거름이 되기 위해서 좀 더 진지한 사회적 성찰이 필요한 때이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