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째 투병중인 아빠, 엄마의 입원, 침수피해까지…생계 '막막', 그래도 희망을 꿈꾼다

제주 동부지역에 최고 40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지던 지난 11일 밤. 북제주군 조천읍 신흥리 한 가구에는 엄마·아빠 없는 집에서 도훈이와 도연이만이 자고 있었다. 옆집에 사는 할머니가 쏟아지는 폭우에 도훈이와 도연이가 걱정이 돼 밤중에 도훈이네를 찾은 것은 큰 다행이었다. 할머니가 도훈이와 도연이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안방까지 빗물이 들어찬 상태. 할머니는 집이 침수되는 줄도 모르고 자고 있던 도연이를 업고 도훈이의 손을 잡고 집을 빠져나왔다.

▲ ⓒ제주의소리
도훈이는 올해 14살로 조천중학교 1학년에 다니고 10살 된 여동생 도연이가 있다.

도훈이가 폭우 속에 동생 도연이와 단둘이 집에 있던 이유는 부모님이 모두 병원에 입원해 계시기 때문.

만성신부전증으로 13년간 투병생활을 해 오고 있는 아빠는 지난 8월18일 건강이 악화돼 병원에 다시 입원하셨다.

아픈 아빠를 대신해 생계를 꾸려가던 엄마마저 아킬레스건 파열로 입원한지 열흘이 조금 지난 때였다.

평소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는 것을 좋아하던 도훈이와 도연이는 그 날 어떤 예감(?)을 받았는지 부모님이 사용하는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침대에서 잠든 탓에 집에 빗물이 들어오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자고 있었고 다행히 옆집 할머니의 도움으로 침수된 집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 지난 11일 내린 폭우로 침수피해를 입은 도훈이네 집.ⓒ제주의소리
도훈이 아빠 김세완씨(40·북제주군 조천읍 신흥리)와 엄마 황인순씨(38)는 새벽녘에 옆집 할머니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은 그 때를 잊을 수가 없다고.

황인순씨는 "새벽에 옆집에 사는 할머니가 전화를 하셨는데 집이 물에 다 잠겼다고 하더라고요. 다행히 할머니가 아이들을 피신시켜 무사했지만 엄마, 아빠 모두 병원에 있는 상태에서 애들이 그런 일을 당했고 잘못했으면 아이들을 잃을 뻔 했다는 생각을 하면 지금도 아찔하다"고.

도훈이는 그 날 이후 장염이 악화돼 병원에 입원을 해야 했다. 평소에도 장이 좋지 않은데 부모님이 집에 계시지 않자 동생과 둘이 라면 등으로 생활하면서 병이 악화된 것.

그래도 도훈이는 씩씩하다. 병원에서 통원 치료를 할 때는 엄마, 아빠에게 치료 사실도 알리지 않았다. 보호자도 없이 입원하게 됐을 때도 "걱정하지 말고 잘 계세요"라며 오히려 부모를 걱정하고 안심시키는 든든한 아들이다.

▲ 지난 폭우에 동생과 함께 침수된 집에 고립돼 있다 옆집 할머니의 도움으로 무사히 빠져나온 김도훈군(조천중 1).ⓒ제주의소리
도훈이가 입원해 있는 병원을 찾았다. 병실의 도훈이 침대는 비어 있었다.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같은 병원에 친구가 입원해 있어 아마 거기 갔을 거란다.

조금 앉아있자니 친구를 태운 휠체어를 밀며 짧은 머리 소년이 등장한다. 또래보다 약간 큰 키에 까만 눈이 참 예쁘다.

첫 대면에 낯을 가리는지 말 없이 TV에서 하는 축구 중계만 보던 도훈이.

축구 얘기를 하자 금새 얼굴에 화색이 돈다.

좋아하는 축구를 위해 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부에 가입할 정도로 축구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지만 지금은 발목 부상으로 잠시 축구를 그만둔 상태. 그래도 중학교 2학년이 되면 축구를 다시 할 것이라고 밝힌다.

비록 아빠가 건강이 좋지 않아 도훈이와 같이 축구를 할 수는 없지만 축구선수 최진철과 아빠가 아는 사이라며 자랑하는 도훈이의 얼굴이 참 맑다.

도훈이는 오늘도 아빠의 빠른 완쾌를 기원한다.

아빠의 긴 투병생활과 일 때문에 집에 계시지 못하는 엄마에 대한 원망도 있음직 한 나이인데 도훈이에게서는 그런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힘든 생활 속에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것일까?

이런 아들을 보며 김세완씨와 황인순씨는 마음이 아프다.

▲ 김세완씨는 혈액투석이 불가능해 복막투석을 위해 복부에 관을 삽인한 상태.ⓒ제주의소리
13년이라는 긴 투병생활로 인해 혈관이 막혀 이제는 혈액투석도 불가능한 김세완씨.

그의 팔에는 온통 굳어버린 혈관을 제거한 수술자국이다. 10년 가까이 오른 팔을 통해 투석을 해 왔지만 이젠 그마저도 힘들어 복막투석을 시작했다.

복막투석은 복부에 특수 제조된 부드러운 관을 삽입해 이 관을 통해 투석액을 주입하고 배액함으로써 말기 신부전증 환자의 체내 노폐물과 수분 등을 제거하는 방법이다.

6시간마다 2ℓ의 투석액을 주입, 하루 4번 교환한다.

복막투석으로 김세완씨는 이제 투석을 위해 매번 병원을 찾지 않아도 되지만 6시간 이상의 외출을 하게되면 투석장비를 모두 챙겨서 나가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혈액투석을 할 때는 가끔 소일거리로 용돈을 벌어 쓰기도 했지만 이제는 노동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제 진정한 백수로 놀고 먹게 생겼다"며 쓴웃음을 짓는다.

▲ 도훈이 아빠 김세완씨. 현재 만성신부전증으로 13년째 투병중이다.ⓒ제주의소리
김세완씨는 "아이들이 집이 어려운 것을 알아서 그런지 너무 빨리 철이 들어버린 것 같다"며 "도훈이, 도연이 둘 다 갖고 싶은 것도 많을 나이인데 무엇을 사달라고 조르는 적이 없다"고 말한다.

'분홍공주'라고 불릴 만큼 분홍색을 좋아하는 도연이지만 엄마와 아빠가 행여 비싼 것을 보고 있으면 "엄마, 이게 더 예쁘다"하며 다른 것으로 엄마, 아빠의 시선을 돌린다.

발병 후 어렵게 가진 아이여서 태어나기 전에도 걱정이 많았지만 태어난 후에도 사업실패 등으로 제대로 보살펴 주지 못해 도연이가 기침이라도 할라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는 김세완씨.

도연이가 8개월이었을 때 분유 살 돈이 없어 남의 밭에 있는 무를 하나 뽑아다 된장국을 끓여 그 국물만 며칠동안 아이에게 먹여야 했던 시절을 얘기하는 남편의 옆에서 황인순씨의 눈에는 끝내 눈물이 고인다.

"너무 배가 고파서 그랬는지 그 국물도 잘 받아먹더라"고 말하는 김세완씨의 눈도 촉촉하다.

▲ ⓒ제주의소리
그 당시 김세완씨는 혈액투석을 위해 병원을 가야하는데 차비가 없어서 봉개에서 제주시내 병원까지 걸어가기도 했다고 한다.

발병 후 기울어진 집안 형편이 평소 알고 지내던 형님에게 사기를 당하면서 최악의 상황까지 갔었다고.

조건부 수급가정으로 책정돼 한달 22만원정도 되는 기초생활보조금과 황인순씨가 북제주군자활후견기관 간병사업단에서 일해 받는 80만원이 채 되지 않는 금액으로 도훈이네 4식구는 한 달을 살아간다.

병세가 조금 호전됐을 때 가끔 트럭을 운전해 받은 돈이 김씨의 수입으로 잡혀 보조금의 액수가 낮지만 황인순씨는 "2년 전 의료보험이 통합된 것만도 다행이다. 그 전에는 남편은 수급권자로, 아이들과 나는 지역의료보험으로 나뉘어 보험료 부담이 컸었다"며 작은 것에서부터 행복을 찾는다.

황인순씨가 지금 가장 소망하는 것은 남편에게 맞는 신장을 찾아 이식수술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 아킬레스건 파열로 입원중인 도훈이 엄마 황인순씨.ⓒ제주의소리
몇 년 전 김세완씨와 조직검사 결과 맞는 신장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30분 안에 1500만원을 입금하고 1시간 내로 환자를 서울로 이송해야 하는 상황에서 환자 이송도 문제였고 돈을 구하지 못해 2순위인 다른 환자에게 신장을 양보할 수밖에 없었던 그 때를 생각하면 황인순씨는 지금도 아쉬움이 많다.

황인순씨는 "퇴원하기 전에 조직검사를 받아 내 신장이 남편에게 이식이 가능하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교환이식이라도 생각해 볼 참"이라고.

황씨는 일하는 중에 아킬레스건이 파열돼 완치되려면 6개월이 소요된다.

남편의 신장이식수술 말고 황씨가 바라는 또 하나의 작은 소망은 자신의 부상이 산재처리 되는 것.

앞으로 6개월간 일을 할 수 없게 된 황씨에게 그간 받아온 월급의 70%를 지원해주는 산재적용은 중요하다.

그리고 3개월 후 깁스를 풀고 보조기구를 장착해야 하는데 그 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생활고와 거듭되는 시련으로 힘들어할 만도 한데 황인순씨는 밝은 표정에 마음을 열고 사는 것 같다.

"힘들어도 개선되기 힘든 상황이라면 괴로워만 하기보다 한번 더 웃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황인순씨를 보며 물이 반쯤 들어있는 컵을 보며 '물이 반 밖에 없네'라고 생각하는 것과 '물이 반씩이나 있네'라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 것인지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금전적인 빚도 많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진 마음으로 받은 빚이 더 많다는 부부는 도훈이, 도연이를 강한 아이로 키우면서 열심히 사는 것이 그 빚을 갚는 길이라고 생각하며 오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도훈이네 집수리하던 날
도훈이네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동생 도연이의 친구 부모님이 거의 무상에 가깝게 빌려줬다.

그렇게 꾸며진 도훈이네 보금자리가 지난 폭우로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가구며 생활가전 등 모든 것이 물에 젖어 사용이 불가능하게 됐다.

그렇지만 수호천사가 나타났다. 북제주군자활후견기관의 집수리사업단.

▲ 북제주군자활후견기관 집수리사업단이 침수피해를 입은 도훈이네 집을 청소하고 있다.ⓒ북제주군자활후견기관 제공
침수로 못 쓰게 된 집의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수리하느라 바쁘다.

가구를 모두 들어내서 볕에 말리고 쓸고 닦고 장판을 깔고 도배를 하고….

언제 침수피해를 입었냐는 듯이 깔끔하게 단장된 도훈이네 집을 보며 집수리사업단도 뿌듯하다.

지난 5월 신설된 북제주군자활후견기관은 현재 집수리사업과 간병인사업에 13명이 종사하고 있다. 오는 10월부터는 혼자 사는 노인에게 도시락을 제공하는 도시락사업도 시행한다.

▲ 북제주군자활후견기관 집수리사업단이 도배작업을 해(왼쪽) 도훈이네 집이 새단장을 마쳤다.ⓒ북제주군자활후견기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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