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64) 큰 소 큰 소 하면서 꼴은 안 준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편집자 글]

* ᄒᆞ멍 : 하며, 하면서
* ᄎᆞᆯ : 꼴(마소의 먹잇감이 되는 풀, 산에서 다량으로 베어다 말려 마당에 눌 눌어 놓고 건초로 먹였다.)

일을 공평하게 하기란 쉬운 것이 아니다. 바르게 나눈다고 하다 봐도 한쪽으로 치우치는 게 사람의 일인지도 모른다. 세상사를 돌아보면 고르지 못한 경우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집안 형제간에 더 가기도 하고 덜 가기도 해서 불만을 터트리는 일이 많다.

이 말은 예로부터 많이 화자돼 온다. 농경사회에서 소는 엄청난 힘으로 농민들을 도왔던 가축으로 사실 말에 비할 바 아니다. 말은 우마차를 끌고 등에 짐을 져 날라 주고 밭을 갈았지만, 소라고 말 못지않았다. 말아 끄는 마차도 끌었지만 역시 밭갈이는 소를 당하지 못한다.

농사일을 돕는 것도 빼놓을 수 없지만, 소 값은 몇 마리면 웬만한 밭 하나와 맞먹는다. 그러니 소 한 마리는 자체로 재산이다. 또 새끼를 번번이 낳으니 재산 증식에 기여하는 가축으로 소 이상이 없다. 마당 구석에 웅크렸다 낯선 사람이 오면 월월 짖는 개를 보면 안다. ‘개 팔자 상 팔자’라 하지 않는가. 하는 일 없이 하루 두 끼는 축내지 않으니 말이다.

한데 소 중에도 큰 소는 황소든 암소든 주인을 위해 힘을 다해 꾸역꾸역 일을 하는데, ‘ᄎᆞᆯ’을 잘 주지 않아서야 될 일인가. 소의 입장에서 이런 억울할 데가 없다.

조금만 시야를 넓혀 보면 비슷한 일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 공평하게 대우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좀 많은가.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조금만 시야를 넓혀 보면 비슷한 일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 공평하게 대우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좀 많은가.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아이고, 그 집 돌아가는 뽄 보민 ᄎᆞᆷ 우습나게. 다섯 성제가 있는디 우으로 큰아덜만 공불 안 시겨시녜게. 그 알로 세 성제는 크찡이 다 고등과꺼진 나왔는디 말이여. 그 집 큰아덜 속이 ᄉᆞ뭇 좋질 않을 거여. 경 아니ᄒᆞ냐? (아이고, 그 집 돌아가는 모양 보면 참 우습다. 다섯 형제가 있는데 위로 큰아들만 공부를 안 시켰잖아. 그 아래로 세 형제는 가지런히 다 고등학교까진 나왔는데 말야. 그 집 큰아들 속이 사뭇 좋지 않을 거야.)” 

남 얘기 좋아하는 세상에 이런 쑥덕공론인들 왜 없을까.

상급 학교를 보내지 못했으면 대신 밭ᄃᆞᆯ냉이(밭뙈미)라도 더 주어야 함에도 어찌어찌하다 보니 그렇게 되지 못했을 때는 속이 끓을 만도 하다. 그런 처지에 놓인 큰아들 입에서 딱 나올 만한 말이다.

“큰 쇠 큰 쇠 허멍 ᄎᆞᆯ은 아니 주곡!”

조금만 시야를 넓혀 보면 비슷한 일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 공평하게 대우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좀 많은가.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 말할 때 대놓고 얘기하기 거북하니 가까이 있는 소를 빌려 빗댄 것이다. 

때로 직설보다는 우회적으로 둘러 말하면 듣기도 좋은 것 아닌가. 이런 화법이 얼마나 여유로운가를 음미해 볼 만하지 않은가.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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