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호의 짧은 글, 긴 생각] 일흔 세 번째

시간이 지날수록 제주다움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제주출신의 공학자, 이문호 전북대학교 초빙교수가 '제주의소리' 독자들과 만난다. 제주다움과 고향에 대한 성찰까지 필자의 제언을 ‘짧은 글, 긴 생각’ 코너를 통해 만나본다. / 편집자 주

탐라국(耽羅國, ?~1404년)은 제주도의 왕국이다. 통일신라 때까지 한반도의 나라들과 교류를 하고 후삼국 시대에 고려가 분열된 삼국을 통일한 뒤 현으로 복속(復屬)됐다가, 15세기 초반에 조선의 태종 시기에 완전 병합됐다. 탐모라국(耽牟羅國) 또는 섭라(涉羅) 명칭은 신라 선덕여왕 시기인 632년, 황룡사 9층탑 4층에서 탁라(乇羅), 담모라(耽牟羅), 담라(憺羅)라고도 지칭됐다. 백제 문주왕 2년(476)에 탐라국에서 토산물을 받친 것이 삼국사기에 나오고, 고려 대장경(1011-1087) 법주기(法住記)에는 탐몰라주(耽沒羅洲)가 범어(梵語)에서 나왔음을 밝히고 있다. 탐몰라에서 ‘몰’자가 탈락되서 탐라가 된 셈이다. 고득종(高得宗)이 지은 영주지(瀛洲誌)에는 ‘9백년 뒤 세 사람은 각자 활로 돌을 쏘아 용력(勇力)을 시험하였는데, 고씨가 상, 양씨가 중, 부씨가 하, 나라이름은 탁모(乇牟)’라 했다. 탁모(乇牟)를 탁라(乇羅)와 합치면 탁모라(乇牟羅), 탐모라국(耽牟羅國)과 탐몰라주(耽沒羅洲)에서 가운데 ‘몰(모)’가 탈락되어 탐라(耽羅)이다.

삼성설화(三姓說話)는 어떤가? 삼성인(三姓人)의 각(各) 활을 쏘아 소거지(所居地)를 정한바 고을나(高乙那)의 거지(居地)는 등일도(等一都), 양을나(良乙那)의 거지(居地)는 등이도(等二都), 부을나(夫乙那)의 거지(居地)는 등삼도(等三都)라 하였다. 여기에서 도(都)는, 『고읍지(古邑誌)』에서는 도(徒)로 되어 있어 이것이 바로 진한(辰韓)의 도(徒), 신라(新羅)의 훼(喙)[乭;돌], 가야(加耶)의 [도(刀). (아도我刀, 여도汝刀, 피도彼刀)]와 같이 두레도리의 대역어(對譯語)로서 공동집단체(共同集團體)의 뜻이다.

▲ 삼성혈에서 대제를 봉행하는 모습. 초헌관 머리에 쓴 관모로 보아 조선시대로 추정된다. 사진=사진으로 보는 제주역사2.
▲ 삼성혈에서 대제를 봉행하는 모습. 초헌관 머리에 쓴 관모로 보아 조선시대로 추정된다. 사진=사진으로 보는 제주역사2.

지금도 제주도에는 일도(一徒), 이도(二徒), 삼도(三徒) 등이 지역명칭(地域名稱)으로 남아있다. 그러므로 도(都)→도(徒)→나(那)→현(縣)→군(郡)→군∙시(郡∙市)→특별자치도(特別自治道); 시읍면동(市邑面洞) 등으로 분화된다. *등(等)=1, 2, 3은 등위 삼을나(三乙那)의 소거지(所居地),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의 성이 고을, 양을, 부을이고 끝에 ‘나’는 지명이다. 제주말에 ‘도나리(徒那里)’란 말이 있다. 이 뜻은 ‘이웃(鄰, 隣, Where) 또는 옆’으로 네이버 사전에 나와있다. 예를 들어, 방목하는 우마(牛馬)가 있는데, 오름 목장에서 찾지 못해 물을 때 ‘남송이 오름 동쪽 도나리에서 봤수다’라고 답하고 일본에서는 도나리가 흔히 쓰인다. 이름에 장소를 붙여 쓰는 말로는 전주여자가 제주로 시집왔을 때, ‘전주 댁’으로 곧잘 쓰인다.  

다음은 고양부와 양고부 논쟁의 역사적 근거다. 

                  제일도(第1都)=일도리(一徒里)이니 금[今 濟州]요
                  제이도(第2都)=산방리(山方里)이니 금[今 大靜]이요
                  제삼도(第3都)=토산리(土山里)이니 금[今 旌義]이다.  
                               『영주지(瀛洲誌) 고득종서세문(高得宗序世文)』
                 

                  제일도(第1都)=양을나(良乙那)   
                  제이도(第2都)=고을나(高乙那)
                  제삼도(第3都)=부을나(夫乙那)
                               『고려사高麗史)와 세종실록(世宗實錄)』

고려사와 세종실록에서는 양고부, 영주지에는 고양부로 순위가 나와 있다.

부처 석가모니(BC 563?-483?)의 제 6제자, 나한 발타라(跋陀羅 Bhadra, 목욕을 즐기는 가운데 물의 신성성으로 도를 득함), 본래의 이름은 발타라루지(跋阤邏縷支)인데 뜻은 현애(賢愛)이며 서인도인이다. 그는 사론(邪論)을 파하여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존자는 논법에 대해 투철하게 관통하였으며 학풍이 순박하고 계행(戒行)은 엄격하나 마음은 자비했다는 평가다. 발타라존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죽림정사(竹林精舍)에 계실 때나 외출할 때나 늘 가까이에서 떠나지 않고 따라다니던 지능집단(知能集團, Intelligence Group) 900여명의 제자와 함께 인도 탐몰라주(耽沒羅洲)에서 불교의 진리를 가르친다. 후에 신성한 물을 찾아 정착한 곳이 지금의 제주도다.

가장 궁금한 것이 물의 신(神) 발타라(跋陀羅, Bhadra)존자가 왜 제주를 찾았을까? 답은 세계에서 가장신성한 물(神聖性, Heiligkeit)을 통한 불교의 전파다. 4대 원소는 물, 불, 공기, 흙인데, 으뜸인 물은 정화와 신성함의 의미로 인간사회에 존재한다. 세계 4대 문명의 발생지도 흐르는 큰 강물 유역이다. 사람이 양수를 터뜨리며 물속에서 태어나고, 신을 받아들이는 세례 의식에서 축수하고, 죽어서 몸을 씻기고 성수로 축수하는 순간까지 물은 항상 인간의 삶의 여정을 같이 한다.발타라 존자가 살았던 당시 존자암에서 성스런 물을 찾지 못했지만, 약 2000년 후 1980년대 와서야 제주 사람들이 ‘삼다수’의 성스러운 물을 찾았다. ‘탐라수’다. 2000년 후의 기적은 한라산과 368개의 반반나한(半半羅漢) 오름에서 19년을 숙성하고 내려간 성수(聖水)로, 발타라(跋陀羅, Bhadra)존자의 소원을 푼 것은 제주도 사람들 이다.

 발타라존자는 세상에서 가장 신성성(神聖性, Heiligkeit)인 성(聖)스러운 물을 찾고, 불도(佛道)를 전파하기 위해 약1만 마일이 먼 바다를 건너 탐라(기원전 미정-1402)에 도착한다. 당시 이름도 없는 제주섬, 인도의 탐몰라주(耽沒羅洲)처럼 불렀을 제주 땅이다.

이능화(1868-1945)의 ‘조선불교통사하(下)’에는 발타라존자의 인도권속 9백여명이 아라한(阿羅漢)과 더불어 탐몰라주(지금의 제주)에 나눠 살았다고 밝히고 있다. 왜 900명이냐면, 인도 탐몰라주에서 불교의 진리를 가르친 그 제자들을 데리고 온 것이다. 발타라존자가 서거 시 사리는 존자암에 봉안하면서 ‘영수리(靈鷲)’가 ‘영실(靈室)’로 바꿔졌다. 

존자암 터에는 상고시대 부도(浮圖)와 열평전후의 자연동굴이있고 자연석으로 된 불상이 있다. 역사적으로 김정(金淨)의 ‘존자암기(尊者庵記)’에는 “존자암은 고·양·부(高良夫) 삼성(三姓)이 처음 일어났을 때에 세워졌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김상헌의 남사록에도 같은 내용으로 표기되어 있다. 따라서 고·양·부(高良夫)는 발타라존자의 인도권속 9백여 명이 아라한(阿羅漢) 지능집단(知能集團Intelligence Group)의 3개 그룹(3x300)이 리더(Leader)일 가능성이 있다. 고려 대장경(1011-1087) 법주기에 따르면 석가가 돌아간 뒤 기원전 540년 전 후에 발타라존자 권속이 탐몰라주(지금이 탐라) 곳곳에 살면서 불교를 전파하였는데 그 흔적은 제주의 해안 마을마다 절을 지은 흔적인 절왓(寺田)과 인도 희말리아 산맥농촌의 돼지 통시와 쇠 말똥을 말리는 풍습도 제주의 웃드르에 그대로 남아 있다.

*본 글은 제주의소리 2021년 12월 21일자 이문호의 ‘3을나(乙那)의 1도, 2도, 3도동’ 글에 대한 많은 전화와 댓글 질문에 대한 답글임을 밝힙니다.

# 이문호

이문호 교수는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출신 전기통신 기술사(1980)로 일본 동경대 전자과(1990), 전남대 전기과(1984)에서 공학박사를 각각 받고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서 포스트닥(1985) 과정을 밟았다. 이후 캐나다 Concordia대학, 호주 울릉공- RMIT대학, 독일 뮌헨,하노버-아흔대학 등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1970년대는 제주 남양 MBC 송신소장을 역임했고 1980년부터 전북대 전자공학부 교수,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며 세계최초 Jacket 행렬을 발견했다. 2007년 이달의 과학자상, 과학기술훈장 도약장, 해동 정보통신 학술대상, 한국통신학회, 대한전자공학회 논문상, 2013년 제주-전북도 문화상(학술)을 수상했고 2015년 국가연구개발 100선선정, 2018년 한국공학교육학회 논문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제주문화의 원형(原型)과 정낭(錠木) 관련 이동통신 DNA코드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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