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택의 탐나는 올레] ⑥ 제주인의 삶을 고스란히 담아낸 길

길을 걷는다는 것은 한권의 인문학 서적을 읽는 재미와 닮았다. 역시 걷기를 좋아하는 것은 그 속도가 느리기 때문일 것이다. 삶의 속도가 너무 빠르니 삶의 속도를 늦추는 걷기야 말로 우리를 치유하고 성찰하게 한다. 유년시절 불가의 출가자로, 환속해 문화재 전문 공직자로, 세 권의 시집을 낸 시인으로, 공직 퇴임 후에는 다시 명상 간경하는 불가의 시자로 돌아가 끊임없는 자기 수행의 길을 걷고 있는 윤봉택 시인이 제주올레 1~26코스를 따라 그 길과 마을에 깃든 흥미로운 제주(탐라) 이야기를 격주로 집필한다. 탐라에서 제주에 이르는 설화와 전설, 신화와 역사를 넘나 드는 시인의 해박하고 담백한 언어를 올레길에서 듣는 재미에 빠져 보시라. / 편집자 글

탐라국에는 ‘당 오백 절 오백’이라 하였을 만큼 신당이 많다. 이는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자연과 더불어 공존하려는 섬사람의 발로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탐라에는 일만 팔천 신이 있다. 따라서 어느 마을 어느 해변에 닿아도 마을을 지켜주는 본향당과 마을에서 마을을 엮어주는 신당들이 있다.

뭍에는 당산 능선에 서낭당을 두어 모시지만, 탐라에는 한라산 자체가 당산 역할을 하기에 마을마다 터를 마련하여 신당을 둔 게 특징이다. 이처럼 마을마다 신당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삶의 교류가 스며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제주올레 곳곳에도 이러한 신당들이 있어 순례길을 멈추게 한다. 이처럼 탐라 인의 삶이 오고생이 녹아 있는 특별한 신당이 제주올레 4코스에서 만날 수가 있다.

한모살. ⓒ윤봉택
한모살. ⓒ윤봉택
당케포구. ⓒ윤봉택
당케포구. ⓒ윤봉택

이번 여섯 번째 순례는 제주올레 4코스이다. 제주올레 4코스는 2008년 10월 25일 열 번째로 개장된 올레이다. 표선면 한모살 당케포구에서 표선리 동서하동, 한지동·가마 세화2리·토산2리·신흥1~2리·태흥1~3리·남원리 등 아홉 마을을 지나 남원읍 남원포구 까지  19km, 48리이다. 

4코스 출발점 표선 당케는 백사장 ‘한모살’ 끝자락에 있다. 지역에 따라서는 포구를 ‘케·개·개맛·개창·성창·돈지’라고 부르지만, 탐라인에 있어 포구는 삶의 들숨 날숨의 영원한 모항이다.

노른빌레-난코지 해안선-자위대동산-주어해안-주어 좀녜불턱. ⓒ윤봉택
노른빌레-난코지 해안선-자위대동산-주어해안-주어 좀녜불턱. ⓒ윤봉택

해안선 따라 길게 누워있는 성담에서는 지난날 해변마을이 겪었을 인고를 느끼게 한다. 포구에서 서쪽 해안선 따라 ‘난코지’로 나가면 작은 못처럼 보이는 ‘노른빌레’가 있다. 여기에서 ‘난코지’ 지나 ‘절을레’ 건너 ‘자위대동산’을 지나 ‘주어’ 동하동 좀녜불턱까지는 해안선 따라 올레가 이어진다. 이곳에서 다행히 물때가 맞아 물질 가시는 좀녜 삼촌을 만났다. 고단한 삶에서도 바다를 숨비질하는 좀녜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이 아닌가.

방개동산 해안-갯늪-안개늪-물이찌깍. ⓒ윤봉택
방개동산 해안-갯늪-안개늪-물이찌깍. ⓒ윤봉택
물이찌깍과 고래비진개, 거우개 해안(왼쪽). 거우개 해안 올레. ⓒ윤봉택
물이찌깍과 고래비진개, 거우개 해안(왼쪽). 거우개 해안 올레. ⓒ윤봉택

서쪽으로 ‘방개동산’ 동하동 좀녜불턱을 지나면 ‘갯늪·누깨통·코생이늪·안개늪·물이찌깍’이라 부르는 작은 습지가 있는데, 겨울에는 청둥오리 떼를 볼 수가 있고, 좀 더 가면 ‘고래비진개’와 소금을 생산했던 자연 포구 ‘거우개’가 있다.

선수빌레코지-너부름 해안-서상동 동개밍개 좀녜불턱. ⓒ윤봉택
선수빌레코지-너부름 해안-서상동 동개밍개 좀녜불턱. ⓒ윤봉택

제주해양수산연구원 앞 바다 ‘선수빌레코지’도 그냥 넘길 수 없는 코지이다. 여기에서 ‘너부름’ 해안선을 돌아 가면 서상동 좀녜불턱을 중심으로 ‘동개밍개·섯개밍개’가 나누어진다.

도청오름-설능개 한지동마을 해안-한지동 터웃개. ⓒ윤봉택
도청오름-설능개 한지동마을 해안-한지동 터웃개. ⓒ윤봉택

여기에서 도청오름을 바라보면 표선리 가장 서쪽 동네, ‘설능개’라 부르는 표선리 한지동 마을이 보인다. 한지동 좀녜불턱을 지나면 세화리(가마리)와 경계를 이루는 이 마을에 테우 정도만 출입이 가능한 스산한 ‘터웃개’가 있다. 세화리는 법정동, 가마리는 자연마을 명칭이지만, 세화리에서 토박이는 '가마리'라고 부른다. 그래서 초등학교 명칭도 '가마초등학교'이다.

가마리 서으레 해안-도릿줄, 거믄머체-가마리포구 광명등. ⓒ윤봉택
가마리 서으레 해안-도릿줄, 거믄머체-가마리포구 광명등. ⓒ윤봉택

가마리 ‘서으레’ 해안을 따라 ‘도리줄, 거믄머체’를 지나면 생걸리포구 가기 전 이 마을 포구를 안내하던 ‘광명등’이 있다. 대부분 포구의 등대를 ‘도대불’이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광명등’이라고 하였다. 여기에는 작은 규칙이 있다. 광명등에 불 밝히는 분을 ‘불칙이’라고 하였는데, 등대 불칙이에게는 어선들이 월급 대신 고기를 주었으며, 대부분 나이 많으신 분들이 ‘불칙이’를 하였다. 1900년대 초반 표선까지 해안도로가 개설되면서 없어진 것을, 2021년 주민의 노력과 보조를 받아 지금 형태로 복구하였다.

생걸이포구. ⓒ윤봉택
생걸이포구. ⓒ윤봉택
생걸이남당 제단. ⓒ윤봉택
생걸이남당 제단. ⓒ윤봉택

가마리 생걸이포구에서는 그냥 지나가지 말고 도로 우측에 있는 ‘생걸이남당’을 살펴보시길 권한다. 이곳 당신은 다른 곳과 달리 특이하게도 작은 먹돌이다. 150년 전 안·김·홍씨 세 하르방이 낚시하는데 같은 먹돌이 세 번이나 바늘에 걸려 올라오기에 이를 소중히 여겨 포구 주변에 신단을 차려 머정 좋게 하여 달라고 정성을 들이게 되면서 신당이 조성되었다.

궤두둑 올레. ⓒ윤봉택
궤두둑 올레. ⓒ윤봉택
궤두둑 고는개해안-흘려해안의 좆내민돌. ⓒ윤봉택
궤두둑 고는개해안-흘려해안의 좆내민돌. ⓒ윤봉택

 그리고 세화2리 좀녜 불턱을 지나 대숲 올레를 나오면 ‘궤두둑’ 해안가에 세화2리와 토산2리 경계를 이루는 소하천 ‘고는개’가 있다. 이곳에서 좌측 해안을 ‘흘려’라 부르며, 이곳에 뾰쪽하게 솟아오른 바위 하나가 있는데, 이를 ‘좆내민돌’이라 하는데 멀리서 봐야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알토산 한집-알토산 집탁개 토산리포구-알토산 한집 여드뤳당. ⓒ윤봉택
알토산 한집-알토산 집탁개 토산리포구-알토산 한집 여드뤳당. ⓒ윤봉택

토산2리 포구인 ‘집탁개’ 못 미쳐 작은 하우스가 있는데 알토산 한집 알당인 ‘여드뤳당’의 발상지이다. 본래는 토산2리사무소가 있는 ‘메뚜기모루’에 있었다가 포구 서쪽 해안가에 담을 쌓아 옮겼는데, 다시 포구 동쪽으로 옮겼다. 여기 당신은 전남 나주 금성산 신령으로 뱀신을 모시는  당이다.

산열이통 해안-알토산 당동산 중간 스탬프-신흥1리 밭담. ⓒ윤봉택
산열이통 해안-알토산 당동산 중간 스탬프-신흥1리 밭담. ⓒ윤봉택

‘산열이통’ 해안을 지나 토산2리사무소를 넘으면 중간 스탬프가 있고, 신흥1리로 나가면 토산리와 신흥리 경계 송천이 있다. 이곳 하천부터 마을 중심에 이르기까지 과수원 방풍용으로 쌓은 돌담이 시대에 따라, 처음에는 몽실몽실한 냇돌을 썼다가 후에 냇돌이 소진되자 빌레나 머들을 깨어 밧담을 쌓은 다양한 돌담 형식을 살필 수가 있다. 

신흥1리 포구 보말개-태흥2리포구 관선포-구려 폴개해안-봉안이개-태흥3리포구 덕둑개의 개맛물-포신당 해안선(시계 방향). ⓒ윤봉택
신흥1리 포구 보말개-태흥2리포구 관선포-구려 폴개해안-봉안이개-태흥3리포구 덕둑개의 개맛물-포신당 해안선(시계 방향). ⓒ윤봉택

마을을 지나 다시 해안으로 내려서면 형세가 고동 닮아 ‘보말개’라 부르는 신흥1리포구가 있고, 그 해안 건너에는 태흥3리 마을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포신당이 있다. 이곳 해변에 앉아 잠시 검블리다보면 머언 물마루에 바람 날리는 하얀 그리움을 만날 수가 있을 것이다. 설령 삶 전의 일이라 하여도 등 돌려 돌아앉지 않았다면 분명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수가 있으리니, 일어서면 바로 ‘덕둑개’라 부르는 태흥3리포구가 보이리니, 그곳에서 ‘개맛물’을 담으면 테우 타고 오시는 이를 만나지리니, 관선포라 부르는 태흥2리포구는 옥돔의 고향이다. 태흥리에도 신당이 10개소나 되는데 이 중 일곱 군데가 태흥2리에 있다. ‘구려 폴개’해안에서부터 ‘봉안이개’ 지나 의귀천까지 그만큼 바다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삶이 치열했음을 느낄 수 있다.

의귀천 고냉이소-태흥1리포구-벌포연대. ⓒ윤봉택
의귀천 고냉이소-태흥1리포구-벌포연대. ⓒ윤봉택

예부터 마을이나 집안에 흉사가 있으면, 이 소에 고양이를 집어 던져 액땜하는 ‘고냉이소’가 의귀천에 있는데, 그 아래가 바로 태흥1리포구이다. 해안 공원을 지나면 고븐데기에 동쪽으로는 표선리 소마로연대, 서쪽으로는 남원 금로포연대와 교신하였던 벌포연대가 있고, ‘서착물’ 해안에 닿으면 담쟁이로 단장된 성담이 그대로 남아 있어 즐겁다. 

서충전 냇깍. ⓒ윤봉택
서충전 냇깍. ⓒ윤봉택
서충전 냇깍-생이보리 해안-재산이개 남원포구(왼쪽). 재묻은개 해안.  ⓒ윤봉택
서충전 냇깍-생이보리 해안-재산이개 남원포구(왼쪽). 재묻은개 해안.  ⓒ윤봉택

서중천은 성판악 성널오름에서 발원하여 물오름, 동수악, 민오름, 머체오름을 지나 태흥1리와 남원리 경계를 이루며 해안에서 풀어진다. ‘재묻은개’에서 잠시 휴식을 하다 보면, ‘진쟁이’ 물살 풀며 다가오시는 좀녜 삼촌을 만날 수 있는 ‘생이보리’가 있는데, 그 너머가 제주올레 4코스 닻 내리는 ‘재산이개’ 남원포구이다.

* [윤봉택의 탐나는 올레]는 제주의소리와 서귀포신문이 공동기획으로 마련한 코너로 격주로 공동 게재합니다. 

# 필자 윤봉택 시인은

법호 相民.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태어나 해인사로 출가하여 1974년 해인사승가대학을 졸업하였다. 1991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제주바람)이 당선되어 등단하였고, 강정마을에서 포교활동하면서 농사 짓다가 서귀포시청 문화재 전임연구원으로 23년 공직 근무를 마치고, 2014년부터 쌍계암 삼소굴에서 명상·간경·수행하면서 시민과 함께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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