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229) 한악, 향렴집, 학고방, 2020.

한악, 향렴집, 학고방, 2020. 사진=알라딘.
한악, 향렴집, 학고방, 2020. 사진=알라딘.

가끔 누군가에게

가끔 누군가에게서 책이 날아온다. 반갑게 맞이할 때도 있고, 그냥 시큰둥할 때도 없지 않다. 일단 받으면 무심하게 펼쳐 유심하게 읽어본다. 그리고 혹 눈에 띄는 구절이 있으면 나름 연상하여 몇 마디 떠올리고 곧 바로 핸드폰을 들어 문자를 보낸다. “가만히 기린을 바라보다 빈털터리 마음을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잠시 후 핸드폰이 울린다. “앗! 기린이가 잘 찾아갔군요.” 그런데 어떤 책은 금방 답장을 보내지 못하고 잠시 생각에 잠긴다. 오늘 이야기할 책이 그러하다.

향렴의 향내

책의 제목은 『향렴집香奩集』. 『당시삼백수』를 읽어본 이들은 혹시 7언절구 「이미 서늘해져(已涼)」를 기억하실지 모르나 일반인들에게는 이름조차 낯선 당나라 말기 시인 한악韓偓의 시집이다. 저자는 물론이고 제목도 낯설다. 향렴香奩이라! 저자는 분명 사내인데, 무슨 향렴인가? 염奩은 흔히 쓰는 한자는 아니지만 옛날 아낙네들에겐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은, 어쩌면 누군가에겐 선망의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향이나 화장도구를 집어넣는 상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사내가 쓰기는 했으되 여인네의 숨결을 담은 것임에 틀림없을 터이다. 당연히 남녀의 사랑과 이별에 관한 내용이 대다수이다. 이런 유형의 시詩나 사詞를 일반적으로 애정시라고 하나 이외에도 향염香艶, 염정艶情, 규원閨怨이란 말을 붙이기도 한다. 조선시대 시재 넘치는 풍류남아 임제林悌의 ‘무어별無語別’이 떠오른다. “월나라 서시西施마냥 아리따운 열다섯 처녀 부끄러워 말도 못하고 헤어져. 집으로 돌아와 중문 닫아걸고, 배꽃 흩뿌린 듯 교교한 달 바라보며 눈물 흘리네(十五越溪女, 羞人無語別. 歸來掩重門, 泣向梨花月).” 

본시 시의 대종이라 할 서정시는 사람의 정감을 읊은 노래에서 시작했다. 사람의 정감이야 희로애락이 모두 포함할 것이나, 그 모든 것을 안고 있는 것은 역시 사랑이 아닌가싶다. 사랑 때문에 즐겁고, 사랑 때문에 화내며, 사랑 때문에 슬퍼하고, 사랑 때문에 기뻐하니, 어찌 아니 그러하겠는가. 하여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이 시가든 노래든, 아니 거의 모든 문학의 이야깃거리가 되었던 것이 아닐까싶다. 

한악은 그런 사랑에 대해 「한식날 밤에 부쳐(寒食夜有寄)」에서 이렇게 읊었다. 

사랑이란 무릇 어찌할 줄 모르는 것 
이때의 그리움은 반드시 애간장을 끊는다네.
구름 옅고 달 어두운 한식날 밤
발 너머 가랑비 속에 살구꽃은 향기롭네.
風流大抵是倀倀, 此際相思必斷腸. 雲薄月昏寒食夜, 隔簾微雨杏花香.(125쪽) 

한식날은 동지 지나 105일째 되는 날로, 주로 청명淸明과 같은 날이거나 다음날이다. 청명은 교외에서 남녀가 만나 답청놀이하며 즐기는 날이다. 헌데 가랑비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무슨 연유가 있었는지 그녀는 사랑하는 임과 함께 노닐지 못하여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런 마음 아는지 모르는지 살구꽃 향기 정원 가득하다. 역자는 ‘창창倀倀’을 어찌할 줄 모르는 모양으로 풀이했는데, ‘倀’에는 광狂의 뜻도 있으니 미칠 것 같은 상태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아, 그렇다. 사랑은 정말 미칠 것 같은 마음이다. 그의 시 「오경五更」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옛날 일찍이 울금 침대에서 함께 할 것을 약속하여
한밤중 몸 숨겨 규방으로 들어왔었지.
품속에서 이마의 금장식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어둠 속에서 수놓은 신발 향기만 느꼈다네.
이때 이별하려 하면 혼은 함께 끊어졌고
이후 서로 만나면 눈은 더욱 미칠 것 같았네.
그 모습들 이내 사라지고 슬픔만 남았으니
일생토록 얻은 것은 처량함뿐이라네. 
往年曾約鬱金牀, 半夜潛身入洞房. 懷裏不知金鈿落, 暗中唯覺繡鞋香.
此時欲別魂俱斷, 自後相逢眼更狂. 光景旋消惆悵在, 一生贏得是淒涼.(50~51쪽)

사랑하는, 그러나 이제는 헤어진 연인과의 밀회가 농밀하다. 화면으로 옮긴다면 분명 19금이다.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려면 이렇듯 “혼이 함께 끊어지고(魂俱斷)”, 다시 만나게 되면 “눈이 더더욱 미칠 듯하다(眼更狂).” 행복한 시절은 이미 사라져 없으니 뭐라고 말해야 할까? “일생토록 얻은 것은 처량함뿐이지.”  

어찌 이런 사랑만 나누는고? 「만나지 못해(불견)」는 더 심하다.

행동거지를 단속하니 또 의심받을까 두려워서이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마음속 생각을 눈으로만 말하네. 
이 한 몸 그대 집의 제비가 되고자 하니
추사일 돌아갈 때에도 돌아가지 않으리.
動靜防閑又怕疑, 佯佯脈脈是深機. 此身願作君家燕, 秋社歸時也不歸.

역자의 해설에 따르면, 이 시는 남몰래 하는 은밀한 사랑과 변하지 않는 사랑의 맹서를 나타내고 있다. 시에서 두 사람은 남몰래 사랑을 나누고 있다. 그런데 언젠가 한 번 걸린 적이 있다. ‘又’라는 표현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니 짐짓 아닌 척 ‘양양佯佯(거짓인 척)’하면서 ‘맥맥脈脈’, 즉 묵묵히 마음속 감정을 눈으로만 전할 따름이다. 만나지 못하는 마음이 오죽했으면 차라리 제비가 되어 그대의 집을 자유롭게 오가며 추사秋社(제비는 춘사일春社日에 왔다가 추사일秋社日, 즉 입추 후 다섯 번째 되는 무일戊日에 돌아간다)에도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겠는가? 춘향전에 옥중 춘향이가 부르는 「갈까부다」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하늘에 직녀성은 은하수가 막혔어도, 일 년 일도 보련마는. 우리 님 계신 곳은 무삼 물이 막혔간디 이다지도 못 오신가. 차라리 내가 죽어 삼월동풍 연자燕子(제비) 되어 임 계신 처마 끝에 집을 짓고 노니다가 밤중이면 임을 만나 만단정회萬端情懷를 풀어내고.”

염정艶情 뒤에 숨은 이야기

옛날에 작시作詩야 사대부라면 누구나 능히 해야 할 일이었을 터이나 왜 굳이 이런 염정시를 짓고자 했을까? 그래서 자꾸만 그 배경을 캐고, 시대를 살피며, 불우不遇 여부를 찾아본다. 한악(842~923년)이 살았던 시대는 당말唐末 오대五代시절이다. 당조 소종昭宗 때 한림학사, 중서사인, 병부상서, 한림승지 등을 역임한 그는 907년 당조가 망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당조는 안록산과 사사명의 난리(755~763년. 안사安史의 난亂)가 겨우 종식된 후 어용御容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환관들의 손에 계속 휘둘렸다. 그리고 120년 후 다시 황소黃巢의 난리로 치명타를 얻어맞았다. 황소에게 주온朱溫이란 유력한 부장이 있었는데, 빈농 출신으로 호족 집안에서 머슴으로 일하던 사내였다. 이후 당조에 항복하여 좌금오위대장군 등의 관직을 받고 전충全忠이란 이름까지 하사받았다. 소종과 재상 최윤崔胤의 요청으로 당시 환관에게 농락당하던 장안으로 진격하여 환관들을 물리치고, 절도사 이무정李茂貞에게 가 있던 소종을 다시 장안으로 모셨다. 그러나 그의 욕심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재상 최윤과 소종을 죽이고 겨우 열 세 살의 아이를 황제(소선제昭宣帝)로 등극시킨 다음 3년 만에 양위시키고 자신이 직접 황제 자리에 올라 국호를 후량後梁으로 정했다.

이로써 당조는 289년의 역사를 마감하고, 이후 후량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우후죽순으로 난립하는 이른바 오대십국五代十國(전체 15개국. 송대 사가들이 다섯 나라만 정통왕조로 인정하여 오대五代라고 불렀다)의 분열기로 접어들었다. 주전충이 당 조정에서 막강한 권세를 휘두르고 있을 당시 한악은 정사품 병부시랑兵部侍郎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국방부 차관급인데, 당시 그의 심사가 어떠했을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결국 주전충에게 미움을 받아 복조사마濮州司馬로 폄적貶謫되어 산동으로 쫓겨났다가 다시 지금의 귀주, 하남 등지로 떠나야만 했다. 이후 주전충이 소종을 죽이고 소선제를 등극시킨 후 인심을 얻기 위해 그를 장안으로 불렀으나 아예 관직을 내던지고 지금의 강서성 무주撫州를 거쳐 복건으로 들어갔다. 그의 향렴집은 바로 복주 시절에 쓰고 정리한 것이라 한다. 이렇듯 그의 파란만장한 삶의 역정을 살피다보면 문득 그의 애정시에 나름 깊은 뜻이 숨겨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말 위에서 보다(馬上見)」란 시를 읽어보면 그런 생각이 굳어진다. 

건장한 말에 연전 문양 먼지 가리개 두르고
말에 오르니 인간 세상 귀양 온 신선이시네.
도포 입고 옥 등자에 발 걸치고
이별하는 소매에 금 채찍 쥐셨네.
가실 때 몽롱이 취했다가
돌아오실 땐 피곤에 쓰러져 잠이 들었네.
내 신세 마부보다 못함이 스스로 가련하니
남은 온기가 향기로운 말안장 깔개에 남아 있네.
驕馬錦連錢, 乘騎是謫仙. 和裙穿玉鐙, 隔袖把金鞭.
去帶懵騰醉, 歸成困頓眠. 自憐輸廄吏, 餘暖在香韉. 

여기서 ‘적선謫仙’은 연모하는 임이 분명한데, 과연 그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하여 이를 군주로 대비해도 그리 허물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굳이 억매일 필요 없다. 자칫 잘못하면 『시경』 「풍風」, 특히 정나라 민간인 정풍鄭風과 위나라 민간인 위풍衛風을 음란한 기풍이 크게 유행함(음풍대행淫風大行)을 풍자한 것이라 풀이하는 등 유교의 교화적 관점을 중시했던 한漢나라 주석가(특히 전한前漢시대 모형毛亨의 모시毛詩)들이 범한 잘못을 답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공자가 「위령공衛靈公」에서 정성鄭聲을 싫어하여 몰아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주희는 한나라 주석가들을 비판하면서 그 자체로 음시淫詩, 즉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로 말했던 것이다. 임이 임금인들 어떠하고, 아닌들 또 어떠하겠는가? 혹시 역으로 임금에 대한 그리움을 읊은 것처럼 치장하고 사실은 발가벗은 속내를 드러내려고 작심한 것일 수도 있으리라. 한악이 「향렴집서香奩集序」에서 “진실로 대장부가 할 것은 아님을 알면서도 정情을 잊을 수가 없었으니, 이는 천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에 새삼 귀가 쫑긋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심규호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졸업, 동대학원 중문학 박사. 제주국제대 교수, 중국학연구회, 중국문학이론학회 회장 역임. 현 제주중국학회 회장, (사)제주문화포럼 이사장.

저서로 《육조삼가 창작론 연구》, 《도표와 사진으로 보는 중국사》, 《한자로 세상읽기》, 《부운재》(수필집) 등이 있으며, 역서로 《중국사상사》, 《중국문학비평소사》, 《마오쩌둥 평전》, 《덩샤오핑과 그의 시대》, 《개구리》, 《중국문화답사기》, 《중국사강요》, 《완적집》, 《낙타샹즈》 등 70여 권이 있다.

shim42star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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