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호의 짧은 글, 긴 생각] 일흔 여섯 번째

시간이 지날수록 제주다움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제주출신의 공학자, 이문호 전북대학교 초빙교수가 '제주의소리' 독자들과 만난다. 제주다움과 고향에 대한 깊은 성찰까지 필자의 제언을 ‘짧은 글, 긴 생각’ 코너를 통해 만나본다. / 편집자 주
타원 곡선의 제주도와 삼성 Logo. ⓒ제주의소리
타원 곡선의 제주도와 삼성 Logo. ⓒ제주의소리

1. 삼성(三星)은 왜 ‘3’인가?

삼성 창업주는 호암 이병철, 1938년 창업한 대구 삼성상회(三星商會, 로고는 별 셋)가 모태다. 삼(三)은 ‘크고 많은 것, 강한 것’이라는 뜻을 지녔기 때문에 우리 민족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이며, 성(星)은 밝고 높고 영원히 깨어 빛난다는 의미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1993년 3월부로 새로운 로고로 바꿨는데, 20억의 비용을 들여서 미국 L&M에서 직접 디자인했고, 이때 나온 디자인이 바로 파란색 ‘S Λ M S U N G’이라 쓰인 제주모형의 타원 로고(Logo), 워드마크는 타원형과 색상, ‘SAMSUNG’이란 글자가 유기적으로 작용해서 전체적으로 삼성을 표현하는 아이덴티티(Identity)가 반영되어 있다. 또 마크 안의 문자를 영어로 표현하여 세계 어디서나 같은 발음으로 읽혀지고 쉽게 기억할 수 있도록 했는데, 타원형의 디자인은 유연성과 단순함을 강조하며, 우주와 세계무대를 상징하는 타원을 비스듬히 처리해 동적(動的)이고 혁신적(革新的)인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다.

또 S와 G의 터진 부분을 통해 내부와 외부의 기운이 통하게 하여 세계와 호흡하고 인류사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았으며, A자의 가로 지름을 제거하여 개방성(開放性)을 나타내었다. 영문 로고의 디자인은 세련되고 정교하게 처리해 기술주의의 고객지향 의지, 첨단기업의 이미지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표현했다.

그런데, 삼성의 로고는 왜 제주 모형을 본떴을까? 제주가 남동방향으로 20도 기운 타원형, 삼성도 남동방향으로 20도 기운 타원형, 가운데를 한라산이 삼성(三星)으로 바꾼 것뿐이다.

1938년 ‘별표 국수 삼성’ 로고에 별 셋도 제주 밭담사람인(人)자를 형상화한 것과 같은 이치다. 사람 머리에 별 하나, 좌우다리 발 끝에 별 하나씩, 별 둘. 즉, 밭담도 사람인(人) 자로 양다리에 돌 한 덩어리씩을 밑돌로 놓고 그 위에 머리 모양으로 한 덩어리 윗돌을 붙였다. 제주도의 남동 20도 기운 타원은 바다 물길과 한라산의 응력 탓으로 바다에 정박한 배(船) 모양인데 반해 삼성은 다이나믹하게 헤쳐나가는 행주형(行舟形) 배 모양으로 ‘S Λ M S U N G’이 돛대라고 볼 수 있다.

창업주 이병철은 신입사원 면접에서 관상을 봐 사람 됨됨이를 봤다. 인(人)이다. 인은 ‘3’이다. 인(人) 자는 머리와 좌우 발목 마디에 별(Star, 星)이 있는 글자다. 반면에 제주 밭담을 붙일 때, 괸돌 두 덩어리 위에 돌 한 덩어리를 얹는 게 별 대신에 돌(Stone, 石)이다. 밭담의 기본은 사람 인 자를 횡적으로 붙여가면서 밭담 네트워크를 쌓는 것이다. 이병철 회장은 밭담의 기본 철학을  본 것이다. 기업이 흥망성쇠는 인재(人才)에 있다고 본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를 네트워킹(Networking)해 미래를 창조한 것이 오늘날 3성(三星)이다.

2. 3다도의 ‘3은’?

현무암 자갈밭을 갈다 보면, 큰 돌덩이와 자갈이 끝없이 나온다. 밭 가운데 그 돌을 모아 놓은 곳이 ‘머들(돌석, 무리 뢰石磊)’.  그 머들을 펼친 것이 밭담이다. 밭 구석에 머들은 밭을 경작하면서 한 돌, 두 돌 땀방울이 묻어있는 ‘모아진 잡석의 돌 무더기’다. 머들을 만들 때는 굽 돌로 ‘굄돌’을 밑돌로, 그 위에 돌을 한 단 두 단 ‘붙여나가면서’ 작은 자갈 돌을 가운데와 틈새로 끼워 가면 바로 머들이 생긴다. 고려 1234년 전주 부안출신 김구(金坵)판관은 25살 젊은 나이에 제주 판관으로 부임, 밭담을 창안했으며, 제주섬의 땅이 소유 경계의 다툼과 우마, 방풍 및 방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구획 공간’을 돌담 이음으로 단칼에 해결했다.

기본 아이디어는 두 가지: 머들에 모아진 돌을 공간 땅 평면에 가로로 연결하여 세우는 것과 동네사람끼리 분쟁을 화해(和解)의 수단으로 삼촌과 사람인(人) 자를 구현한 것이다. 삼촌(三寸)과 인(人)은 굄돌 두 돌 위에 돌 한 덩어리를 올려놓은 모양이다. 사람 인 자도 양다리에 돌 한 덩어리씩을 밑돌로 놓고, 그 위에 머리 모양으로 한 덩어리 돌을 붙였다. 삼각형의 삼(三)이고, 촌(寸)은 피붙이의 마디. 돌무더기은 한문으로 ‘석뢰(石磊)’인데, 돌 석(石)자인 두 둘을 밑돌로 그 위에 한 개 돌을 올려 붙여진 돌무더기 삼각형 모양이 ‘뢰’ 자다. 백성(百姓)과 서민(庶民) 셋 이상 모이면 무리 중(众)이다. 돌무더기 뢰(磊) 자의 돌 석(石)자를 사람 인(人)으로 바꾼 것이 사람의 무리 중(众)이 아닌가. 유학(儒學)에 밝은 김구 판관이 통찰로 보여준 자연과 학문의 통섭(統攝, Consilience)이 놀랍다. 김구(金坵) 판관의 이름 구(坵)자도 흙토(土) 변에 언덕 구(丘), 즉 밭의 언덕(머들, 石磊)으로 밭담을 의미한다. 삼촌(三寸)과 사람인(人)자 기본이 되어 삼각형, 사각형, 사다리 꼴 등으로 연결한 돌담, 22,000km의 밭담이다.

제주사람들은 밭담을 쌓는 것도 밭 돌담을 ‘붙인다’고 한다. 돌챙(石手, 쟁이)이는 사람의 ‘살(肉)’을 붙이듯, 돌을 ‘나풀나풀’하게 붙여나간다. 석수(石手)쟁이는 두 가지 생활 철학기술(?)을 터득한 사람이다. 돌의 수눌음과 사람의 수눌음이다. 첫째, 돌의 수눌음, 홑(외) 담인 밭담은 수눌어지게 붙여져 축성되지만, 어떤 태풍이 불어와도 끄덕하지 않는다. 얼키설키 붙여진 밭담 사이의 틈새 돌 트멍으로 바람이 불고 지나지만 밭담은 끝까지 버틴다. 그 이유는 돌 각자가 제자리를 지키면서 돌의 이웃과 의지(依支)하고 서로 부여잡고 보듬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돌과 돌의 ‘수눌음(石磧)’이다. 제주 특유의 사회관습, ‘괸당’도 돌의 수눌음에서 왔다. 둘째, 사람의 수눌음(手積)이다. 수눌음은 ‘손들을 눌다’의 뜻이고 눌다는 ‘쌓다’로 손들을 ‘붙여’ 서로 도와 가면서 화산회토의 척박한 땅에서 밭일을 한다. ‘눌’은 보리 눌, 촐 눌, 돌 눌 인 머들(石磊) 등이 있다. 

3. 괸당의 어원은 어디에서 왔는가?

돌을 붙이면 괸담, 사람의 손을 붙이면서 나타난 것이 괸당이다. 즉 ‘괸담’에서 제주어 밑받침인 담의 미음이 이응으로 발음 변화가 됐다. 괸담은 돌무더기 머들 ‘뢰(磊)’이고, 괸당은 백성(百姓), 서민(庶民)의 무리인 무리 ‘중(众)’으로 됐다.

한편, 네이버 인터넷 국어사전에 의하면 “괸당의 어원은 동사 ‘괴다(밑을 받치다(Support)’에서 나온 말로 서로 사랑하는 관계, 즉 혈족, 친족이란 제주 방언이다”라고 나와 있다. 역사적으로는 돌 문화에서 밑을 받치는 형태는 굄돌, 굄돌 위에 올려 받치는 건 괸돌이다. 괸돌은 고대 부족 국가 지배계층의 무덤 또는 제단을 의미하며, 이 단어의 유래는 큰 돌을 받치고(Support) 있는 것을 의미하는 ‘지석(支石)’이다. 여기에 돌을 붙이면 ‘돌담’, 밑받침 되는 돌은 ‘굽돌’또는 ‘굄돌’, 그리고 그 위에 돌을 다시 붙여나가면 괸돌이 ‘괸담(礎墻)’이 된다. 돌과 돌의 ‘수눌음(石磧)’이다. ‘괸담(礎墻)’은 제주인의 관습상 발음 변화-할머니가 할망이 되듯-(口語体)가 되면 괸당이 된다. 오늘날 굄돌과 괸돌이 차이는 책상이 굄돌, 책상 위에 올려놓은 컴퓨터는 괸돌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볼 수있다. 제주사람의 고단한 삶이 ‘옹이’(枙)인 머들, 그 머들이 밭담이 되고, 밭담의 속살(內肉)은 삼촌 괸당(众)으로 변했다. 

괸당의 다른 연구는, 1993년 제주대 김혜숙 교수의 제주의 가족과 궨당 연구, 2010년 제주 MBC 김훈범 PD의 애월읍 고내리 궨당 드라마, 1995년 현평효 교수의 제주어 사전에 나온 제주의 궨당을 들 수 있다. 돌보는 무리의 뜻으로 궨당(眷黨)을 해석했다. 이는 제주에 돌의 문화를 고려않고 한문글자를 그대로 인용했다. 중국에서 권당(眷黨)은 소위 리더(Leader)가 자신의 그룹 인원을 돌본다는 뜻으로 쓰인다. 제주의 괸당과는 거리가 있다. 요즘 제주에서는 괸당이란 말을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4. 3다의 걸출한 사람은? 없다.

제주도의원 출신 도지사 출마자와 국회의원을 보면 한마디로 도토리 키 재기다. 좀 뭐한 얘기 같지만, 제주대학총장(2010-2018,세종대 경영학박사)한 사람이 제주도지사에 출마 한다고 해서 놀랬다. 제주도 교육감 출마는 이해가 가지만 자기 전공 관련분야에 일을 하는 것이 도민들 보기에도 좋다. 예를 들어, 전주 서거석(일본 중앙대 법학박사) 전북대총장의 경우, 8년 전북대 총장(2006-2014)을 역임하고 8년 후 전북교육감에 출마했는데, 인기투표 1위다.

제주교육감은 현교육감이 3선(12년) 장기집권을 위해 이(齒)를 악물고(?) 있는가하면, 전직 교장급들은 서로전쟁을 벌이고 있다. 제주에 교육의 발전을 생각했다면, 제주대 총장출신이 교육감에 나와야 한다. 어쨌든, 야권 교육감 출마자들은 단일화가 안되면 패(敗)한다. 제주도 지사 장기집권(12년)에 피해를 경험한 것이 몇 년 전 일, 고인물은 썩는 법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로, 제주사람들은 정신 차려 급변하는 세상에 맞는 훌륭한 교육감을 뽑아야한다. 인재양성은 초중고 교육에 있다. 물론, 도민 민생은 도지사의 역량에 달려있고, 제주도의 장래는 청소년교육을 책임지는 선생님과 교육감에 달려있다. 특히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이 말씀 한마디가 청소년이 일생을 좌우한다. 유지경성(有志竟成, 뜻이 있어 마침내 이루다)의 뜻으로, 이루고자 하는 뜻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成功)한다는 것을 비유(比喩·譬喩)하는 말이다.

필자의 경우, 1956년 버스도 안다니는 웃드르 광챙이 서광국민학교 6학년 때 일이다. 덕수출신 이윤길 담임 선생님께서 짝궁 고행조(高幸助)에게 의사가 되고, 이문호(李門浩)는 대학교수가 되도록 ‘하나에 미쳐라’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이름풀이를 했다. 다른 사람을 도우는 게 의사이니 행조(幸助)이고, 문이 넓으니 문호(門浩)로 학문이 넓고 깊은 게 대학(大學), 교수가 될 이름이라, ‘하늘이 무너져도 된다’라고 했다. 이 말씀 한 마디 대로 30년 후, 인천과 전주에서 유명 의사(전남대의대 졸업, 한양대 박사, 산부인과전공)와 교수(일본 동경대와 전남대 박사, 미국미네소타대 포스트 닥, 정보통신)가 되었다. ‘하나에 미쳐라’는 말은 ‘미쳐야 골문(Goal門)을 열 수 있다(狂通門)’로 불광불급(不狂及), 즉 어떤일에 몰입(沒入)하고 그것만 생각하면 통(通)한다는 말이다. 혼(魂)이 있는 선생님 밑에 혼(魂)이 있는 제자가 태어난다고 했다.

삼성의 이병철이나 이건희 같은 걸출한 사람과 퇴계 이황 같은 학자가 제주에 있는가? 있다면 강원도 출신 김영관 지사를 들 수 있다.

밭담창안자 김구(1234년)가 간 700년 후, 36세 준장 김영관 제독(강원도 김화군 출신, 1961~1963년 현역 준장으로 제12대 제주도지사)이 있다. 제주사람은 아니지만 귀감이 되는 인물이다. ‘제주 사람을 하늘로 받들어’ 제주의 물, 5.16 도로, 전기를 해결하고 제주 대학의 국립대 승격과 감귤 조성 농업을 뿌리 내리게 했다. 김 지사의 제주 지사 3년 동안의 회고록을 보면 제주사랑이 넘쳐난다. 당시 1961년 9.8 박정희 의장이 전국 시·도 초도순시에서 제주를 첫 방문지로 해서 제주에 대한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박 의장이 묵을 호텔이 없어 도지사 관사에 머물렀다. 당시 북제주군에 박종실(朴宗實, 1875-1966, 1957년 제주도서관 건립) 씨, 남제주군에 강성익(康性益1890-1968, 11대 제주지사) 사업가가 김 지사를 도왔다. 정보화 세상에 제주는 앞으로 200년을 어떻게 가야하나?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곳이 제주와 닮은 싱가폴 섬이다. 제주의 발전 동력은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1963년 싱가폴(697㎢)의 이광요(1923-2015) 총리와 제주(1833㎢)의 흘러간 바람들

제주 면적은 싱가폴의 2.6배로 한국의 특별자치도의 가장 큰 섬이다. 일본 강제 점령기를 거쳐 4.3사건을 거쳤다. 싱가폴도 일본 강제 점령기와 영국의 식민지를 거쳤다. 이광요 (1923-2015영국 케임브리지대)총리는 싱가폴의 역사를 새로 쓴 인물이다. 간단한 예가 당시 세워진 싱가폴의 국립대와 난양공대는 현재 세계 톱 2~3위에 오른다. 세계 최고 인재들이 모여 들게 만든 사람이 바로 이광요 총리다. 두 대학은 미국 MIT와 스텐포드, 버클리대학과 어께를 나란히 한다. 거기엔 제주보다 아주 작은 섬 국가의 이광요 총리의 철학이 만든 결과다. 그 사이에 제주특별자치도에서 대통령급인 도지사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모두 흘러가는 바람들이었다. 김구 판관이나 김영관 지사처럼 ‘제주사람들을 위한’ 민치(民治)를 펴지 못했다. 제주 1000년을 내다본 게 아니라 용이 꼬리가 된 ‘룡지사’처럼 자신의 앞날을 위한 자치(自治)를 폈다. 만일 도민의100년을 위해 먹고살 수 있는 농·생산 제조업을 부흥하고, 세계 유명 대학이나 지식 산업을 창출했다면 관광객은  싱가폴처럼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법, 이광요의 국정 철학의 비법을 몰랐다. 

제주는 청정 자연인 곶자왈을 파괴(22%)하고 골프장 7개 건설로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는 게 제주 발전이라고 생각했다. 지식산업을 생각 못했다. 발전 명목으로 곶자왈 속에 중국 노름판을 벌리게 한 어떤 지사는 12년간(1991-2004) 장기 집권을 하면서 제주 파괴(?)에 앞장 선 것이 아닌가. 그때 지방 언론과 교수들은 입을 닫았고 제주연구원과 공무원은 수족처럼 움직여 ‘제주의 치욕(恥辱)’ 기간이었다.

역사를 거슬러가 보면, 산업 사회의 초기 진입 단계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었다. 1960-2000년대 사이에 한국은 이병철의 삼성전자, 정주영의 현대건설과 자동차 사업이 태동기로 제주가 손짓만 했다면 일(誘致)이 쉽게 이뤄졌을 것 이다. 그때, 제주의 앞을 내다보는 걸출한 인물이 없었는가? 있다. 공군 소장 출신의 박충훈 상공부 장관(1919-2001, 일본교토 동지사 상고, 훗날 대통령 권한대행)이다. 두 번씩 상공부 장관과 부총리 겸 경제부총리를 지낸 경제통인 박충훈 장관이 제주를 위해 움직였다면 삼성전자나 LG 브랜드 유치나 제주 특성에 맞는 기업 창업이 가능했지 않았을까. 하귀 출신 고광림(1920-1989, 미국 하버드대 박사) 미국 코네티컷주립대 교수도 집안 가족의 하버드 박사가 12명이지만 제주 고향에 큰 흔적이 없다. 하귀리에 고 박사 가족 현양비만 세워 졌다. 아쉬운 대목이다.

골프장 대신 세계적인 특정 아이템을 갖는 연구 대학이나 연구소, 반도체 설계소를 곶자왈에 세웠다면 오늘날 제주의 역사는 많이 변했을 터. 섬나라 대만을 보면, 대만(3만6193㎢, 제주의 20배)의 비메모리반도체 TSMC(모리스 창, 미국 스텐포드대 전기과 박사, 1987년 창업)가 세계 톱 기업으로 대만을 먹여 살리고 있다. 모리스 창(Morris Chang, 張忠謀, 1931년)은 중화민국의 반도체 엔지니어 겸 기업인이다. 세계 최초의 파운드리 기업인 중화민국의 TSMC를 1987년 창업했고, 전 회장을 역임했다. 중화민국의 반도체산업을 탄생시킨 장본인으로서, 중화민국 첨단산업의 대부, 중화민국 반도체의 아버지로 불린다. 1998년 커먼웰스(Common Wealth) 잡지가 선정한 중화민국의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 비즈니스위크의 ‘아시아의 떠오르는 별’ 50인, 97년 비즈니스위크 ‘올해의 톱경영자 25인’ 등에 선정되었다.

만일 제주대학과 경쟁하는 특성 대학을 만들었다면 서로 경쟁하면서 상생이 되어 서로가 발전한다. 그 예가 전남대와 맞먹는 광주과기원, 경북대와 경쟁하는 포항공대가 만들어졌다. 필자는 1990년초 전주삼례-이리-군산의 삼각지대에 테크노벨트를 설계했다. 기억에 남는 선각자는 명륜학원 설립자인 강석범(1917-1979) 전 제주상고 교장이 제주실업전문대를 세웠다. 그에 명함도 ‘제주도 강석범’ 여섯 글자였다. 검은 고무신을 신고 다니는등 온갖 기행이 많았다.

김구 판관과 김영관 지사가 그랬듯이 제주는 제주 사람이 먼저다. 유람 오는 관광객은 두 번째다. 강대국인 미국의 트럼프나 바이든 대통령을 보면 알 수 있다. 즉, 미국의 이익이 우선이고, 코로나 백신 주사도 미국인이 먼저다. 앞으로 오는 새천년 제주는 제주도민을 위한 농·생산 제조업과 돌연변이 바이러스균 국제연구소, 전력 특구의 정보통신 인공지능 반도체 산업 유치 등으로 관광 산업에 치우친 산업 구조를 확 바꿔야 한다. 감귤 대신 커피나무는 어떤가.  싱가폴의 이광요 총리, 대만의 반도체 TSMC의 모리스 창 박사는 태어난 고향의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건 수구초심(首丘初心)의 본보기다.  제주 천년을 위해서는 사람을 키워야 제주가 산다. 제주가 눈을 떠야한다. 3성이 사람을 키우듯이. 이 글을 이윤길(93세) 서광초등학교 담임(1956년) 선생님 영전에 올립니다.

# 이문호

이문호 교수는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출신 전기통신 기술사(1980)로 일본 동경대 전자과(1990), 전남대 전기과(1984)에서 공학박사를 각각 받고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서 포스트닥(1985) 과정을 밟았다. 이후 캐나다 Concordia대학, 호주 울릉공- RMIT대학, 독일 뮌헨,하노버-아흔대학 등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1970년대는 제주 남양 MBC 송신소장을 역임했고 1980년부터 전북대 전자공학부 교수,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며 세계최초 Jacket 행렬을 발견했다. 2007년 이달의 과학자상, 과학기술훈장 도약장, 해동 정보통신 학술대상, 한국통신학회, 대한전자공학회 논문상, 2013년 제주-전북도 문화상(학술)을 수상했고 2015년 국가연구개발 100선선정, 2018년 한국공학교육학회 논문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제주문화의 원형(原型)과 정낭(錠木) 관련 이동통신 DNA코드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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