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호의 짧은 글, 긴 생각] 일흔 여덟 번째

시간이 지날수록 제주다움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제주출신의 공학자, 이문호 전북대학교 초빙교수가 '제주의소리' 독자들과 만난다. 제주다움과 고향에 대한 깊은 성찰까지 필자의 제언을 ‘짧은 글, 긴 생각’ 코너를 통해 만나본다. / 편집자 주
전라남도 광양시 섬진강 매화마을 일원. ⓒ문화체육관광부
전라남도 광양시 섬진강 매화마을 일원. ⓒ문화체육관광부

하얗게 불타는 매화(梅花)의 비밀은? 나풀나풀 꽃잎

해마다 3월 20일 경이면 전남 구례에서 경남 하동에 이르는 지리산 자락과 섬진강변 매화 축제로 전국이 들썩인다. 전남 백운산 자락 광양의 홍매화, 백매화 꽃은 너무 아름답다. 흐드러지게 핀 광양 매화꽃, 그 속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인가?

제주에 매화는 서귀포칠십리시공원, 걸매생태공원, 그리고 구억-서광 중산간 노리매 등이 있다. 오래 전에 사계-모슬포 송악산을 걸어서 서광을 오는데, 노리매공원의 김동규 대표가 차를 태워주면서 매화 향기 속에서 차 한 잔 하자고 해 간 적이 있다. 향이 그윽했다. 나풀나풀 휘날리는 매화꽃잎이 나비(蝶)같다.

퇴계와 두향, 매화에 얽힌 사연

이황(李滉) 퇴계(退溪)(1502-1571)는 매화(梅花)를 끔찍히도 사랑했다. 퇴계 전기를 보면, 매화를 노래한 시(詩)가 일백(一白)수가 넘는다. 이렇게 놀랄 만큼 큰 집념으로 매화를 사랑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단양군수 시절에 만났던 관기(官妓) 두향(杜香) 때문이었다. 퇴계 선생이 단양군수로 부임한 것은 48세 때였다. 그리고 두향의 나이는 18세였다. 두향은 첫눈에 퇴계 선생에게 반했지만, 퇴계의 처신이 풀 먹인 안동포처럼 빳빳했다. 

그러나 당시 부인과 아들을 잇달아 잃었던 퇴계 선생은 그 빈 가슴에 한 떨기 설중매(雪中梅) 같았던 두향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두향은 시(詩)와 서(書)와 거문고에 능했고 특히 매화를 좋아했다. 그녀는 언제나 퇴계의 곁에서 거문고를 타며 퇴계(退溪)의 얼굴에서 미소(微笑)가 떠나지 않게 한 여인(女人)이다. 두 사람의 깊은 사랑은 그러나 겨우 9개월 만에 끝나게 되었다. 퇴계 선생이 경상도 풍기군수로 옮겨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별을 앞둔 마지막 날 밤, 마주 앉아 주고받았던 한시(漢詩)가 백미(白米)다.

“죽어 이별은 소리조차 나오지 않고(死別己呑聲)살아 이별은 슬프기 그지없네(生別常測測)” 그리고 퇴계는 말을 이었다. “내일이면 떠난다. 기약이 없으니 두려움뿐이다.” 두향이가 말없이 먹을 갈고 붓을 들었다. 그리고는 시 한 수를 썼다.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제어느 듯 술 다 하고 님마저 가는 구나꽃 지고 새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퇴계 선생이 돌아가시기 전 유언으로 ‘매화 화분에 물 줘라’라고 했을 정도다. 살아 생전에는 매화를 예찬한 시 107수를 짓고, 그 중 92수를 골라 『매화시첩』을 펴냈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단일 소재 시집이다. 후세 사람들은 1000원짜리 지폐 주인공으로 퇴계 이황을 새기면서 선비의 상징, 사군자 중 하나이자, 그가 좋아했던 매화를 함께 넣었다.

제주 한림읍 홍매화. 사진제공=한림공원.
제주 한림읍 홍매화. 사진제공=한림공원.

왕면(王冕)의 시 백매(白梅), 맑은 향기가 만리에 봄을 알리는 ‘청향만리(淸香萬里)’ 

중국 원(元)나라 말기 시인 왕면(王冕)의 시 백매(白梅)에서 연유하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원나라 말기의 시인이자 화가인 왕면(王冕)이 지은 ‘백매(白梅)’의 후반부다.

왕면은 가난한 집안에 태어났는데 어려서부터 시와 그림을 좋아해 소를 돌보는 중에도 꽃을 그리거나 때로는 몰래 주변의 학당에 가서 귀를 기울이곤 했다. 뒤에 집을 떠나 사찰에서 지닐 때는 불상 무릎에 앉아 불상을 비추는 등불 아래서 글을 읽었다고 한다. 훗날 학문을 성취했지만, 벼슬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고, 평생 가난하게 살면서 때로는 그림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곤 했다.

시인은 특히 매화를 사랑해 자신의 집을 매화옥이라 부르고 스스로 매화옥주(梅花屋主)라 칭했다. 시의 전반부에선 백매가 얼음과 눈이 덮인 숲속에 있으므로 세상 속에 뒤섞여 있는 복숭아·자두꽃과 같지 않음을 칭송하고, 후반부에선 하룻밤 새 피어난 그 맑은 향기가 온 세상에 봄을 부르는 것을 찬미하고 있다. 백매는 하얀 색깔 때문에 눈에 덮여 있으면 그 존재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꽃이 피어 맑은 향기가 퍼져 나오는 순간 봄의 이른 전령으로서 존재감이 부각된다. 옛 시인들이 특히 설중매를 좋아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박석 교수의 촌평이다. 필자는 하얀 매화꽃을 빨갛게 타는 불을 넘어 하얗게 불을 태우는 꽃이라고 본다.

매화꽃잎이 다섯 장인 이유?

매화가 가진 매력은 많은 풀과 나무들이 서로 경쟁하듯 꽃을 피우는 따뜻한 때가 아니라 아직은 추운 초봄에 먼저 피어나서 봄소식을 진하면서도 맑은 향을 뿜어낸다는 것이다. 실제 꽃의 생김새나 향기도 좋지만 다른 누구보다 먼저 행동하는 창의적(?)인 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매화, 산수유, 생강나무, 개나리 진달래, 박태기나무, 하얀 목련, 왕벚나무 꽃등을 보면 꽃이 먼저 피는 나무들은 이전 해 가을에 겨울눈을 만들어 다음 해 봄에 꽃을 만들 에너지를 저장해 놓는다. 그렇게 하면 겨울을 견디고 나서 봄이 되자마자 어떤 꽃보다 빠르게 꽃을 피울 수 있다. 다른 꽃들에 비해 잎이 없이 꽃이 먼저 피는 꽃들은 벌과 나비들에게 더 쉽게 눈에 띌 뿐만 아니라 바람에 꽃가루를 날릴 때도 잎에 걸리지 않아 꽃가루의 수정에 더 효율을 높일 수 있다. 

매화는 봄이라는 계절의 생리를 누구보다 먼저 터득한 꽃나무다. 봄에 바로 꽃을 만들어 수정하여 가장 빠르게 열매를 맺는다. 매실(梅實)이 바로 그렇다. 매화를 화괴(花魁)라 부르는 이유다. 꽃의 우두머리 사군자(四君子, 매화·난·국화·대나무)다. 그러면 꽃잎이 5장인 이유는 무엇인가? 피보나치 수열을 따른 코딩(Coding) 탓이다.

피보나치 수열[Fibonacci Sequence, 이탈리아, 1202년, 산술(算術)의 서(書)]은 첫째 항의 값이 0이고 두 번째 항의 값이 1일 때, 이후의 항들은 이전의 두 항을 더한 값으로 이루어지는 수열을 말한다.

이를테면, 제3항은 제1항과 제2항의 합, 제4항은 제2항과 제3항의 합이 되는 것과 같이, 인접한 두 수의 합이 그 다음 수가 되는 수열이다. 즉, 0, 1, 1, 2, 3, 5, 8, 13, 21, 34, 55,… 인 수열(數列)이며, 즉 1, 1, 2, 3, 5로 다섯 번째 5는 앞의 2와 3을 더한 값이다. 잎이 나는 순서와도 관계된다. 햇빛을 최대로 받기 위해서는 서로 겹치지 않도록 꽃잎이 각도를 72도로 비튼다. 이유는 360도 원(圓)을 다섯 등분한 72도이다. 공간기하학(空間幾何學)이 별미다.

꽃잎은 흰빛에서 붉은빛으로 다양하며, 아주 진한 붉은색에 가까운 빛깔을 내기도 한다. 꽃잎의 수가 5장인 경우에는 장미과 식물로 분류하는데, 찔레·산딸기·살구·자두·사과 등 다양한 식물들이 매실나무와 함께 장미과에 속한다. 감귤나무도 꽃잎이 5장으로, 20개 정도의 수술과 1개의 암술이 있다. 꽃을 피우는 것은 식물 공학적으로 플로리겐(Florigen) 호르몬, 생장을 억제하는 것은 앱시스산(Abscisic Acid)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확실히 꽃을 피우는 물질은 못 찾고 있다. 쌀쌀한 2월, 이른 아침에 새 떼들이 매화나무의 새싹 꽃봉우리를 쪼아 먹는 것을 눈여겨 봤다. 모든 성장 에너지가 꽃 봉우리에 맺혀있다는 것을 새들은 안 것이다.  
   
매화의 열매 매실

두산백과 자료에 의하면, 매화나무의 열매는 매실(梅實)로, 원산지는 중국이며 3000년 전부터 건강보조 식품이나 약재로 사용되었다. 둥근 모양이고 5월 말에서 6월 중순에 녹색으로 익는다. 3000년 전부터 건강보조 식품이나 약재로 써왔다. 한국에는 삼국시대에 정원수로 전해져 고려 초기부터 약재로 써온 것으로 추정된다. 수확 시기와 가공법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껍질이 연한 녹색이고 과육이 단단하며 신맛이 강한 청매, 향이 좋고 빛깔이 노란 황매, 청매를 쪄서 말린 금매, 청매를 소금물에 절여 햇볕에 말린 백매, 청매의 껍질을 벗겨 연기에 그을려 검게 만든 오매 등이 있다. 전라남도 순천과 광양 경상남도, 경상북도 등지에서 많이 재배하며, 일본과 중국 등에서도 식용으로 재배한다. 열매 중 과육이 약 80%인데, 그 중에서 약 85%가 수분이며 당질이 약 10%이다. 무기질·비타민·유기산(시트르산·사과산·호박산·주석산)이 풍부하고 칼슘·인·칼륨 등의 무기질과 카로틴도 들어있다. 그 중 시트르산은 당질의 대사를 촉진하고 피로를 풀어주며, 유기산은 위장의 작용을 활발하게 하고 식욕을 돋우는 작용을 한다. 알칼리성 식품으로 피로 회복에 좋고 체질개선 효과가 있다. 특히 해독작용이 뛰어나 배탈이나 식중독 등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되며, 신맛은 위액을 분비하고 소화기관을 정상화하여 소화불량과 위장 장애를 없애 준다. 변비와 피부미용에도 좋고 산도가 높아 강력한 살균작용을 한다. 최근에는 항암식품으로도 알려졌다. 보통 술을 담가 먹으며 잼·주스·농축액을 만들어 먹거나 말려서 먹는다. 그밖에 간장·식초·정과·차를 만들거나 장아찌를 담그기도 한다.

# 이문호

이문호 교수는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출신 전기통신 기술사(1980)로 일본 동경대 전자과(1990), 전남대 전기과(1984)에서 공학박사를 각각 받고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서 포스트닥(1985) 과정을 밟았다. 이후 캐나다 Concordia대학, 호주 울릉공- RMIT대학, 독일 뮌헨,하노버-아흔대학 등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1970년대는 제주 남양 MBC 송신소장을 역임했고 1980년부터 전북대 전자공학부 교수,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며 세계최초 Jacket 행렬을 발견했다. 2007년 이달의 과학자상, 과학기술훈장 도약장, 해동 정보통신 학술대상, 한국통신학회, 대한전자공학회 논문상, 2013년 제주-전북도 문화상(학술)을 수상했고 2015년 국가연구개발 100선선정, 2018년 한국공학교육학회 논문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제주문화의 원형(原型)과 정낭(錠木) 관련 이동통신 DNA코드를 연구하고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