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71) 며느릿감 보려거든 그 어머니를 보라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편집자 글]

   
  * 메노릿ᄀᆞ심 : 며느릿감
  * 보컬랑 : 보려거든, 볼 것이면

  
훈시조이면서도 매우 흥미로운 말이다. 집에 새 며느리를 물색 중이거든 딴 건 관두고라도, 그 어머니를 보고 택하라 하고 있다. 
  
아버지는 아예 제쳐두고 어머니를 내세우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대부분 딸은 얼굴도 어머니를 닮지만 성격이며 자태(맵시), 인품이며 교양에 이르기까지 어머니를 빼놓고 닮는 경우가 많다. 얼굴이며 솜씨나 손매야 타고나는 것이라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인격이며 언행 그리고 대인 관계 등은 후천적인 요인이 많이 작용한다. 딸은 아들보다 어머니 그늘에서 자란다는 게 맞을 것이다. 일거수일투족 어머니가 하는 것을 주의 깊게 눈여겨보고, 귀 기울여 들으며 때로는 흉내내 따라 해보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에 딸 자신도 모르게 그 어머니를 닳아가게 된다. 학교 교육만이 교육과정이 아니다. 가족들 그중에도 특히 어머니는 딸에게 바로 교육과정이나 다름없다. 어머니처럼 하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면 점차 동일시(同一視)하게 마련이고, 나중엔 혹사(酷似)하게 닮는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아이고, 가이는 어떵ᄒᆞ민 어멍을 기영 닮은고 이?(아이고, 그애는 어떻게 하면 어머니를 그렇게 닮을까 이?)”라거나, “그 집 ᄄᆞᆯ말가? 떼여 볼 디 엇이 착ᄒᆞ녜. 머리 좋지, 행실 착ᄒᆞ지. 얼굴ᄁᆞ지 고완 미인으로 소문났지 않으냐게.(그 집 딸 말이냐? 떼어 볼 데 없이 착하네. 머리 좋지, 생실 착하지, 얼굴까지 고와 미인으로 소문났지 않으냐.).” 
 
여염집 항간에서 많이 하는 말이다. 좋은 말도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천리를 떠돈다.
    
집에 새로 들어오는 며느리는 단지 새 식구일 뿐 아니라 가세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사람이다. 자식만 잘 낳는다고 되지 않는다. 행여 심성이 곧고 행실이 착하면 조상 음덕이겠으나, 혹여 잘못했다가는 집안을 망하게도 한다. 낭비벽이 있어 돈을 물 쓰듯 한다든가, 주변과 화목할 줄 몰라 만날 다투고 불화하면 집안이 편할 날이 없다. 가세가 기우는 건 한순간의 일이다. 후회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메노릿ᄀᆞ심 보컬랑 그 어멍을 보라’
  
어머니는 그 딸을 비춰보는 잘 닦인 거울에 다름 아니다. 그 거울에 비춰보면 속속들이 알 수가 있는 법이다. 외모만이 아니라 마음자리까지 모두 나타난다. 어머니에게서 딸은 민낯과 만날 수 있다는 말이다. 납득하다 남을 말이라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뒤집어 얘기하면, 어머니를 보면 그 딸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부전자전이라 하듯, ‘모전여전’ 아닌가.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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