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236) 이광재, 나라 없는 나라, 다산책방, 2015

이광재, 나라 없는 나라, 다산책방, 2015.
이광재, 나라 없는 나라, 다산책방, 2015.

2019년에 한국과 일본 사이의 무역전쟁이 벌어졌을 때, ‘독립운동은 못했어도 불매운동은 한다’는 결기로 온 국민이 들고일어났다. 국가적 차원의 대응도 대응이었지만, 국민들이 민간차원에서도 일본제품 불매운동으로 맞선 것은 뿌리깊은 반일감정이 크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와 국가, 국민과 국민 사이의 감정이라는 것은 일시적인 이해관계가 아니라 역사적인 경험치들이 쌓인 결과이다. 조선시대 중반에 임진왜란으로 전쟁을 일으켰던 일본은 근대화 혁명으로 힘을 기른 후, 열강들의 제국주의 침략 흐름 속에서 조선을 집어삼켰다. 일제의 식민지배는 가혹하게 조선을 유린했다. 2차 세계대전 결과 일본이 패전국으로 전락한 후, 조선에 찾아온 해방은 한반도의 분단과 전쟁이라는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

식민지를 지배한 제국에게 역사적 책임을 묻는 일은 제국주의 질서가 해체된 20세기 후반 이후 지구상의 그 어디에서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일본은 1965년의 한일협정으로 모든 것이 정상화되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개인에 대한 배보상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고, 그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조선이 식민지로 전락한 지 100년이 넘었고, 해방을 맞이한 지도 7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한국과 일본은 과거사 문제를 정리하지 못한 채,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 나라로 지내고 있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이렇게나 철저하게 대립과 갈등 구조를 지속하는 데는 앞서 말한 반일감정이라는 것이 크게 자리잡아 있기 때문이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일이 이렇게 특정한 감정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경우, 나라의 이익을 챙기는 일과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 정치인들은 이런 상황을 이용하여 국내정치의 목적으로 외교와 통상 정책을 펼치곤 한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일을 국제정치 또는 외교라고 한다. 경제적인 통상과 문화적 교류, 군사적 동맹 등 그 모든 실체적 이익을 눈앞에 두고도 반일감정이라는 문제가 나오면 이성과 합리를 뒤로 물리고 감정을 앞세워 행동하는 것을 두고 뭐라고 나무랄 수 없는 것이 한일관계의 현주소다. 어떤 경우든 감정보다는 이성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일본과의 관계에서만큼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4백년 전의 전쟁은 조선통신사를 파견하면서 국교를 정상화한 이후 점점 잊혀져 갔지만, 근대의 초입에서 벌어진 제국주의 침탈 이후 지금까지 한국과 일본은 나라와 나라 사이의 일을 이성과 합리로 처리하기보다는 반일이나 협한 등과 같은 감정의 문제에 기대고 있다. 서구화와 근대화를 앞당긴 일본이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깨고 제국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1894년의 청일전쟁 때부터다. 조선정부를 보호하겠다며 조선에 군대를 파견한 청나라에 맞서 일본 군대가 한반도에 상륙하면서 벌어진 청일전쟁의 결과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는 오키나와를 병탄한 것과 동일한 수법으로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바로 이 사건, 청일전쟁이라는 경천동지할 사건은 조선반도를 놓고 구 제국 중국과 신 제국 일본이 격돌한 것이었다. 조공이라는 형태로 국제질서를 유지해온 동아시아에서 식민지배라는 제국주의 질서가 들어오기 시작한 일대 사건이다. 이렇듯 과거의 국제질서가 새로운 국제질서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청나라와 일본의 대립 과정에서 조선의 정부는 무기력하기 짝이 없었다. 청나라와 일본, 러시아, 미국, 프랑스 등 열강들의 각축 사이에서 제대로 된 근대화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몰락해가는 그 무기력함은 한국사 전체를 통틀어보아도 다시 보기 어려운 암흑의 순간들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참혹한 사건은 동학농민혁명이다. 나라를 살리겠다고 나선 백성들을 외세를 끌어들여 살육한 조선은 이미 나라가 아니었다. 

1894년에 벌어진 동학농민혁명은 쇠락해가는 조선의 부패와 무능을 바로잡기 위한 농민들의 봉기에서 비롯했다. 전주화약을 기점으로 농민들의 생각은 일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청일전쟁의 와중에 발생한 동학농민전쟁은 그 양상이 달랐다. 몰락해가는 조선이라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죽창을 들고 호남 들판에 모여든 백성들이 근대식 화기로 무장한 일본과 조선의 군대에 맞선 이 역사적인 사건은 참혹한 비극으로 결말을 맺었다. 나라를 구하겠다는 백성들을 제압하기 위해 제국주의 침탈을 준비하고 있는 일본을 끌어들인 조선 정부의 선택은 소설가 이광재가 말하고 있는 ‘나라 없는 나라’의 실체가 드러난 슬픈 역사의 과정이었다. 

이광재의 장편소설 『나라 없는 나라』는 동학농민혁명의 주역들을 등장시켜 혁명의 시작과 끝을 사건으로 재구성한다. 동학농민혁명은 먼 과거 조선의 일이 아니라, 동시대 역사를 구성하는 한국 근대 초입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 전근대와 근대, 제국과 식민, 봉건질서와 자본주의 등 이분법적인 대립 구조가 갈등하던 그 최전선에서 백성의 힘으로 거대한 힘에 맞선 숭고하고 장엄한 혁명이다. 이 소설은 역사적 사건을 생생한 현재적 사건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동학농민혁명의 발발에서 전봉준 장군의 체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그려낸다. 소설의 시작은 대원군과 전봉준의 만남이다. 운현궁을 찾아든 녹두 장군 전봉준과 대원군 이하응의 만남을 시작으로 하는 이 소설은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 등의 혁명 지도부와 흥선대원군을 비롯한 정부의 젋은이들과 주변인들을 통하여 이광재는 생생한 사건으로서 혁명의 발발과 전재 과정을 그러내고 있다. 

“120여 년 전의 전봉준과 농민군은 하나의 세계가 이미 종언을 고하고 있음을 갈파하였습니다. 그 세계는 더 이상 가치 있는 삶을 사람들에게 제시할 수 없었지요. 오직 국민을 몇몇 귀족을 먹여 살리고, 국가 기구를 운영하는 수단으로만 여겼으니까요. 따라서 다수의 사람들에겐 삶의 활로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세계였지요. 그것이 바로 전봉준과 농민들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된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어떻습니까? 오늘날의 세상과 유추되지 않나요? 우리가 사는 이 근대는 고장 나 덜컹거리고, 신자유주의는 어느 한 극단을 향해 치닫는 것 같습니다. 학생과 자영업자, 직장인과 청년들이 모두 죽겠다고 아우성칩니다. 이 시대에 대한 심각한 성찰과 대응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주 비참해질지도 몰라요. 이미 충분히 비참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역사를 돌아봤지요. 역사란 '오늘의 지나간 일'이기 때문에 지혜를 얻을 보물창고입니다.”

소설가 이광재(1963~)의 말이다. 전북 군산에서 태어나 철학을 전공한 그는 1989년 무크지 『녹두꽃』에 단편 「아버지와 딸」로 등단했다. 소설집 『아버지와 딸』(1992)과 장편소설 『내 가슴의 청보리밭』(1993), 『폭풍이 지나간 자리』(1994) 등을 냈고, 전봉준 평전 『봉준이, 온다』(2012)를 냈다. 그는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을 맞은 2015년에 펴낸 이 소설 『나라 없는 나라』로 제5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했다. 5월 11일은 동학농민혁명 법정 기념일이다. 1894년 5월 11일의 황토현전승일을 혁명기념일로 정한 것이다. 자칫 먼 옛날의 지나간 일로 잊혀지기 십상인 역사적 서사를 생생한 사건으로 묘사해낸 이 소설 『나라 없는 나라』는 120주년을 지나 127주년을 맞이하는 동학농민혁명의 현재성을 다시 확인하게 하는 소설 버전의 혁명 이야기다.

# 김준기

홍익대학교 예술학 석사, 미술학 박사.
현(現)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한국큐레이터협회 회장, 미술평론가.
전(前) 부산비엔날레 전시기획 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제주도립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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