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예술칼럼 Peace Art Column] (84) 김동현

제주도는 평화의 섬입니다. 항쟁과 학살의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은 더욱 간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주4.3이 그렇듯이 비극적 전쟁을 겪은 오키나와, 2.28 이래 40년간 독재체제를 겪어온 타이완도, 우산혁명으로 알려진 홍콩도 예술을 통해 평화를 갈구하는 ‘평화예술’이 역사와 함께 현실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들 네 지역 예술가들이 연대해 평화예술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들의 평화예술운동에 대한 창작과 비평, 이론과 실천의 공진화(共進化)도 매우 중요합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네 나라 예술가들의 활동을 ‘평화예술칼럼(Peace Art Column)’을 통해 매주 소개합니다. 필자 국적에 따른 언어가 제각각 달라 영어 일어 중국어 번역 원고도 함께 게재합니다. [편집자 글]

2022년은 오키나와 반환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한 이후 동아시아는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체제에 포섭되었다. 제주 4·3항쟁과 한국전쟁, 그리고 베트남 전쟁으로 이어지는 동아시아의 시간은 오키나와라는 지역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될 수밖에 없었다. 패권국가 미국의 등장은 공산주의와의 대결을 전면에 내세운 대결의 시작이었다. 제주 4·3의 대규모 학살도 따지고 보면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부터 1972년 오키나와 반환에 이르기까지 일본, 미국, 오키나와, 그리고 대만과 한국의 관계에 주목한 나리타 지히로(成田千尋)의 《오키나와 반환과 동아시아 냉전체제》는 냉전체제 동아시아 국가의 현대사가 오키나와와 무관하지 않음을 실증적인 연구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오키나와를 통치하면서 미군기지를 건설하기 시작한다. 토지 강제 수용 등의 조치들은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가해진 또 하나의 폭력이었다. 

오키나와 반환과 동아시아 냉전체제. 나리타 지히로(지은이), 임경화(옮긴이), 소명출판, 2022. 사진=알라딘.
오키나와 반환과 동아시아 냉전체제. 나리타 지히로(지은이), 임경화(옮긴이), 소명출판, 2022. 사진=알라딘.

미군 점령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키나와인들이 선택한 것은 일본국으로 복귀였다. 물론 당시에도 복귀와 반복귀 등의 논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러한 복귀에 대한 열망은 일본 평화헌법에 의거한 오키나와 민의의 반영과 미군기지 삭감, 축소 등의 요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기도 했다. 결과론적으로 오키나와 자기결정권의 요구는 ‘반환’ 이후에도 배반되었다. 여전히 일본 내 미군기지의 75%가 넘는 기지가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현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미 점령기 미군 기지 반대 투쟁을 벌였던 오키나와인들을 한국의 이승만 정부는 철저히 외면했다. 이승만 정부는 일본 반환을 요구하는 오키나와인들의 요구를 ‘류큐의 식민화’로 규정했다. 얼핏 오키나와의 독립을 지지하는 결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여기에는 오키나와 미군 기지를 영구화하면서 친미 반공정권을 수립하고자 했던 정권의 이해관계가 작용하고 있었다. 박정희 정권 당시 미군기지 이전 문제가 등장했을 때 한국의 반응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를테면 한국의 평화 역시 오키나와의 희생을 담보로 한 것이었다. 

우리 시대의 평화가 오키나와의 희생을 담보로 한 것이라는 나리타 지히로의 지적은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강정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대두되었던 국가 안보라는 담론도 따지고 보면 ‘강요된 희생’의 연장선상에 있다. 대한민국의 건립을 위해 제주를 희생양으로 삼았던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의 대학살극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제주와 오키나와를 사유하면서 대한민국과 일본국이라는 국가 정체(政體)를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주와 오키나와는 냉전체제 동아시아의 시간을 ‘함께’ 견뎌와야만 했다. 오키나와전투와 제주 4·3이, 오키나와 미군기지와 강정 해군기지를 동시에 사유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제주와 오키나와는 ‘국가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져야 하는 세계사적 동시성을 공유하고 있다. 

제주와 오키나와가 직면하고 있는 현재적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미국이라는 글로벌리즘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을 쓰쿠바 대학 명예교수 신도 에이이치(進藤榮一)는 “아시아 역외의 공통 리스크”라고 말한다. 상시적으로 존재하는 위험요소에 대응하기 위해서 아시아 내부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그의 지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군기지 문제뿐만 아니라 통치와 자치의 문제가 여전히 극복되지 않은 과제가 되고 있는 제주와 오키나와의 현실은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일본 오키나와현청에서 헤노코 미군기지 이전 반대 입장을 표명했던 오나가 다케시 오키나와 현지사. 지난 2018년 8월 8일 67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출처=류큐신보.
일본 오키나와현청에서 헤노코 미군기지 이전 반대 입장을 표명했던 오나가 다케시 오키나와 현지사. 지난 2018년 8월 8일 67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출처=류큐신보.

반환 50주년을 맞아 오키나와 현지에서는 오키나와 자기결정권의 문제가 다시 대두되고 있다. 그것이 미군기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오키나와 주민들의 요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오키나와의 요구는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남한과 북한, 일본과 중국, 한국과 일본의 외교적 대립을 극복하고 항구적 동아시아 평화공동체를 위해서는 국가라는 이름의 통치보다는 지역이라는 이름의 자치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정치적 상상력이기도 하다. 
지금은 고인이 된 오나가 다케시(翁長雄志) 오키나와 현지사가 헤노코 미군기지 이전 반대를 내세우며 아베 정권과 대립했던 사실 역시 자기결정권의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오나가 지사는 오키나와 현민의 자기결정권이 무시당하고 있는 상황을 영혼이 굶주리고 있는 것(魂の饑餓感)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반환 50주년 오키나와는 지금도 싸우고 있다. 오키나와인들의 투쟁에서 제주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허울뿐인 특별자치라는 이름의 ‘통치’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치를 실현할 정치적 상상력은 요원한 일인가. 통치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서울 권력에 맞서 제주의 영혼을 구할 정치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 김동현

문학평론가. 제주에서 태어났다. 제주대학교 국문과와 한신대 문예창작대학원, 국민대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지은 책으로는 《제주, 우리 안의 식민지》, 《제주, 화산도를 말하다》(공저), 《재일조선인 자기서사의 문화지리》(공저) 등이 있다. 한때 지역신문 기자로 일하기도 했다. 지금은 제주, 오키나와를 중심에 두고 지역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제주 MBC, 제주 CBS 등 지역 방송 프로그램에서 시사평론가로, 제주민예총에서 정책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Rethinking self- governance on the 50th anniversary of Okinawa reversion. 
KIM Dong-hyun, literary critic

The year 2022 marks the 50th anniversary of the return of Okinawa to Japan from the US. After Japan's defeat in World War II, East Asia was subsumed into the US-led world system. The time in East Asia leading up to the Jeju 4.3 Uprising, the Korean War and the Vietnam War was not without some form of connection to the region of Okinawa. The emergence of the hegemonic US was the beginning of a confrontation with anti-communism at the forefront. Even considering the Jeju 4.3 massacre, it was closely linked to the US East Asian strategy.

Focusing on the relationship between Japan, the US, Okinawa, and Taiwan and South Korea from the end of World War II to the reversion of Okinawa in 1972, “Okinawa Reversion and the Cold War System in East Asia” by NARITA Chihiro is an empirical study showing that the contemporary history of East Asian countries in the Cold War system is not unrelated to Okinawa. The US began to build US military bases while governing Okinawa. Measures such as forced expropriation of land were another form of violence inflicted on the Okinawan people.

The choice made by the Okinawans to escape the US occupation was to return to Japan. Of course, even at the time, there were debates over "reversion" or "anti-reversion".  However, the eagerness to return was also the result of a combination of the Okinawan people's desire to be under Japan's peace constitution and demands such as the reduction and downsizing of US military bases. As a result, Okinawa's demand for the right to self-determination was betrayed even after the 'reversion'. This is illustrated by the reality that more than 75% of all US military bases in Japan are still stationed in Okinawa.

LEE Syngman’s government in South Korea thoroughly ignored the Okinawans who waged a struggle against the US military bases during the US occupation. LEE defined the Okinawans' demand for the return to Japan as the 'colonisation of the Ryukyus'. This may seem at first glance to be an endorsement of Okinawan independence, but it was in the interests of the regime to make the Okinawan bases permanent and to establish a pro-US and anti-communist regime. The South Korean response when the issue of US base relocation appeared under the PARK Chung-hee administration was not much different from this. 

Narita's point that peace in South Korea was secured by the sacrifices made on Okinawa has many implications. The national security debate that emerged in the process of building the Gangjung naval base is also, on reflection, an extension of the 'forced sacrifice'. This is also the reason for the genocidal drama of the US military government and the LEE’s administration, which sacrificed Jeju for the construction of the Republic of Korea.

This is also why, while considering Jeju and Okinawa, we must also look at the political identities of the Republic of Korea and Japan. Jeju and Okinawa had to endure their time 'together' in East Asia during the Cold War. This is also why the Battle of Okinawa and Jeju 4.3 should be considered simultaneously, as well as the US naval base in Okinawa and the Gangjung naval base. Roughly speaking, Jeju and Okinawa share a world-historical simultaneity that poses a fundamental question: what is a nation?

To overcome the current dangers facing Jeju and Okinawa, we must understand US globalism. SHINDO Eiichi, Professor Emeritus at Tsukuba University, calls it a 'common risk outside Asia'. We need to pay attention to his point that solidarity within Asia is necessary to deal with ever-present risks. The reality of Jeju and Okinawa, where issues of governance and autonomy remain insurmountable challenges, as well as the US military base issue, symbolically illustrate the fact that a 'new political imagination' is needed.

On the 50th anniversary of the reversion, the issue of the right to self-determination is once again on the rise on the ground in Okinawa. It is clear that this started with the demands of the Okinawan people for a solution to the US military base problem. However, Okinawa's demands do not stop here. It is also a political imagination that autonomy in the name of region, rather than governance in the name of state, must be prioritised for a permanent East Asian peace community, overcoming the diplomatic conflicts between South Korea and North Korea, Japan and China, and South Korea and Japan. 
The fact that the now deceased Governor of Okinawa, ONAGA Takeshi, opposed the ABE administration on the basis of his opposition to the construction of the Henoko US military base is also closely related to the issue of the right to self-determination. Governor Onaga also referred to the situation where the Okinawans' right to self-determination is being ignored as a 'hunger in the soul'. On the 50th anniversary of its reversion, Okinawa is still fighting. What can Jeju learn from the Okinawans' struggle? Is the political imagination far enough away to realise true autonomy, away from 'rule' in the name of “Special Self-Governing Province” that is only a pretense? Where is the politics of saving Jeju's soul against the power of Seoul, which refuses to give up its rule?


沖縄返還50年、再び自治を考える 
キム•ドンヒョン 文学評論家

2022年は沖縄返還から50周年となる。第二次世界大戦で日本が敗戦した後、東アジアはアメリカ主導の世界体制に包摂された。済州4•3抗争と朝鮮戦争、そしてベトナム戦争につながる東アジアの時間は、沖縄という地域といかなる形であれ関係せずにはいなかった。覇権国家アメリカの登場は、反共を前面に掲げた対決の始まりだった。済州4•3の大虐殺を考えてもアメリカの東アジア戦略と密接な関連があった。
第二次世界大戦終戦から1972年沖縄返還に至るまでの、日本、アメリカ、沖縄、そして台湾と韓国の関係に注目した成田千尋による『沖縄返還と東アジア冷戦体制』は冷戦体制における東アジア諸国の現代史が沖縄と無関係ではないことを実証的な研究で示している。米国は沖縄を統治しながら米軍基地を建設し始めた。土地強制収用などの措置は沖縄住民に加えられたもう一つの暴力だった。 
米軍占領から脱するために沖縄人が選択したのは日本への復帰だった。もちろん当時も「復帰」「反復帰」などの論争がなかったわけではない。しかし復帰に対する熱望は、日本の平和憲法下に入りたいという沖縄民意の反映と、米軍基地削減・縮小などの要求が複合的に作用した結果でもあった。結果として、沖縄の自己決定権の要求は「返還」以降も裏切られた。依然として日本国内の米軍基地の75%以上が沖縄に駐留する現実がこれを物語っている。 
アメリカ占領期に米軍基地反対闘争を繰り広げた沖縄人を、韓国の李承晩政府は徹底的に無視した。 李承晩政府は沖縄人が日本への返還を求めることを「琉球の植民化」と規定した。これは一見沖縄の独立を支持することに思われるが、ここには沖縄基地を恒久化し、親米反共政権を樹立しようとした政権の利害が作用していた。朴正熙政権で米軍基地移転問題が登場した時の韓国の反応もこれと大差はなかった。 
韓国の平和が沖縄の犠牲を担保にしたものだという成田の指摘は多くの示唆を与える。カンジョン(江汀)海軍基地建設過程で台頭した国家安保の議論も、考えてみれば「強要された犠牲」の延長線上にある。大韓民国の建設のために済州を犠牲にした米軍政府と李承晩政府による大虐殺劇もまさにこのためだ。 
済州と沖縄を考える一方で、大韓民国と日本の政治的アイデンティティに目をやらねばならない理由もここにある。済州と沖縄は冷戦下東アジアの時間を「ともに」耐え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沖縄戦と済州4•3が、沖縄米軍基地と江汀海軍基地が同時に考慮されるべき理由もここにあるだろう。荒っぽく言うと、済州と沖縄は「国家とは何か」という根本的な質問を投げかける世界史的同時性を共有している。 
済州と沖縄が直面する現在の危険を克服するには、アメリカのグローバリズムを理解しなければならない。筑波大学名誉教授の進藤榮一はそれを「アジア域外の共通リスク」と言う。常時存在するリスクに対応するためにはアジア内部の連帯が必要だという彼の指摘に注目する必要がある。米軍基地問題だけでなく、統治と自治の問題が依然として克服されない課題となっている済州と沖縄の現実は、「新しい政治的想像力」が必要だという事実を象徴的に示している。 

返還50周年を迎え、沖縄現地では自己決定権の問題が再び台頭している。それが米軍基地問題を解決するための沖縄住民の要求から始まったという点は明らかだ。しかし、沖縄の要求はここにとどまらない。韓国と北朝鮮、日本と中国、韓国と日本の外交対立を克服し、恒久的東アジア平和共同体のために、国家という名の統治よりは、地域という名の自治が優先され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政治的想像力でもある。 
今は故人となった沖縄県知事の翁長雄志が辺野古米軍基地建設反対を掲げて安倍政権と対立した事実も、自己決定権の問題と密接な関連がある。翁長知事は沖縄県民の自己決定権が無視されている状況を「魂の飢餓感」とも言った。返還50周年の沖縄県は今も戦っている。沖縄人の闘争に済州は何を学ぶのか。見せかけだけの特別自治道という名の「統治」から脱し、真の自治を実現する政治的想像力は遠くにあるのだろうか。 統治を放棄しようとしないソウルの権力に対抗して、済州の魂を救う政治は果たしてどこにあるのか。

※ 중국어 번역본 원고는 추후 게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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