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이 주인이다-제주 마을이야기] (7) 와흘리 – 후손들이 마을 땅을 지키는 방법

마을의 자원과 가치를 주민들이 발견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공동체를 조성하기 위한 마을만들기 사업. 시행착오와 현실적 어려움을 넘어 제주 마을 곳곳에서는 ‘작지만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제주의소리]는 제주특별자치도마을만들기종합지원센터와 함께 주민 주도의 마을만들기를 통해 희망의 증거를 발견한 제주의 마을들을 살펴보는 연중기획을 마련했다. 이를 계기로 더 나은 제주의 미래를 향한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 편집자
작년 열린 와흘리 메밀문화제 당시의 모습.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연극과 음악을 즐기기 위해 도민과 관광객들이 와흘리를 찾았다. /제공=와흘리 ⓒ제주의소리
작년 열린 와흘리 메밀문화제 당시의 모습.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연극과 음악을 즐기기 위해 도민과 관광객들이 와흘리를 찾았다. /제공=와흘리 ⓒ제주의소리

5월 주말, 제주 조천읍 와흘리는 메밀꽃으로 화사하게 물든다. 오는 22일까지 진행되는 2022 와흘리 봄메밀문화제는 그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기회다. 제주 신화 속 인물 자청비가 연극으로 되살아나고, 세계음악 공연과 함께 주민들이 메밀을 활용해 만든 퓨전 음식도 맛볼 수 있다. 

한라산 능선을 배경으로 넓게 펼쳐진 메밀밭 위에서 그네를 타고 사진을 찍는 경험은 제주의 찬란한 봄을 온전히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 아름다운 풍경은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화사한 메밀꽃과 문화제는 주민들이 합심해 일군 결과물이다.

이 10만평 규모의 땅은 ‘먼나머루’로 불리던 유휴부지로 소와 말을 방목시키기도 했고 조사료 생산지로도 활용됐던 곳이다. 와흘리 새마을리 명의였던 이 땅을 잘 보존하면서도 마을에 도움을 될 방법을 구상하다 나온 답은 메밀. 척박한 제주 중산간에 최적인 작물이다.

메밀과 함께 제주신화에 등장하는 사랑과 농경의 신인 자청비도 마을에 안착했다. 농경 신화 ‘세경본풀이’에는 자청비가 메밀 씨앗을 제주로 가져오는 내용이 핵심일 만큼 메밀과 자청비는 서로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였다. 와흘리는 마을공동체의 성소(聖所)인 본향당에서 정기적으로 당굿이 열리는 마을이기도 했다.

유휴부지였던 먼나머루는 이제 마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봄과 가을에 메밀꽃이 활짝 피면 문화제가 열린다. /사진 제공=와흘리. ⓒ제주의소리
유휴부지였던 먼나머루는 이제 마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봄과 가을에 메밀꽃이 활짝 피면 문화제가 열린다. /사진 제공=와흘리. ⓒ제주의소리
유휴부지였던 먼나머루는 이제 마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봄과 가을에 메밀꽃이 활짝 피면 문화제가 열린다. /사진 제공=와흘리. ⓒ제주의소리
유휴부지였던 먼나머루는 이제 마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봄과 가을에 메밀꽃이 활짝 피면 문화제가 열린다. /사진 제공=와흘리. ⓒ제주의소리

와흘메밀마을 향토음식체험 축제에 이어 메밀문화제가 열리고 조용했던 마을에 도민과 관광객들이 찾아왔다. 아름다운 농촌풍경과 문화자원들을 지녔지만 사람들이 머물지 않고 지나가는 마을로만 여겨지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마을에 생긴 긍정적인 변화다.

김두환 와흘리장은 “주민들은 ‘조금만 재정비를 하면 이렇게 바뀔 수 있구나’라고 느끼게 됐다”며 “이제 주민들은 여기에 앉아 담소를 나누면서 이 곳의 힘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곳이 주민들에게 각별한 이유는 중산간 마을이 처한 상황 때문이다. 10년, 20년 전 ‘아이들 교육을 위해 중산간 땅 1000평 팔아서 제주시내에 집 하나 사는’ 방식을 택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 당시 세대에는 이것이 큰 목표였다. 그러나 마을 입장에서 보면 주민들의 땅이 점점 없어져가는 셈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새마을회 명의로 먼나머루가 보존돼 왔던 것은 마을에게는 축복이었다. 이제 와흘리는 메밀이라는 아이템을 바탕으로 소비자들과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방안을 구체화하고 있다.

김두환 와흘리장. ⓒ제주의소리
김두환 와흘리장. ⓒ제주의소리

메밀 퓨전 요리, 메밀피를 넣은 베개, 메밀 어묵 등 상품을 다양화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는 동시에 메밀밭 앞에 위치한 방문자센터가 와흘에서 생산된 각종 농축수산물을 만날 수 있는 공간으로 가꿀 계획이다.

김두환 이장은 “과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소와 말을 방목하던 곳에 후손들이 하나씩 하나씩 구슬을 꿰고 있다. 더디고 느리지만 마을 사람들이 조심스럽고 진지하게 노력하고 있다”며 “해마다 이 곳을 찾아서 마을과 이 공간이 어떻게 바뀌는지 지켜봐줬으면 좋겠다”고 마음을 전했다.

와흘리는?

548세대에 1120여명 살고 있는 제주시 조천읍 와흘리는 본동, 상동, 고평동, 초록동, 정원동 등 5개 자연마을로 이뤄져 있다. 400~500년 전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지며 과거엔 누온흘, 눈흘, 궷도르곶, 논을, 눈을 등으로 불렸는데 모두 ‘넓게 펼쳐진 큰 숲’을 뜻한다. 지금 명칭도 누울 와(臥)자와 산 높을 흘(屹) 자로 구성됐다. 넓은 들판에서 뒤로는 한라산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고 바다가 내다보이는 풍경 덕에 낭만적인 풍경을 자랑한다. 4.3 당시 불타 없어졌다가 1954년 재건됐다. 

넓은 목초지와 함께 길이 1300m의 용암동굴인 와흘굴, 구그네오름, 넓은못, 웃벵듸물과 마을의 쉼터 역할을 하는 큰 팽나무들이 유명하다. 곶자왈 마을 가운데에 있는 본향당에서는 매년 당굿이 열린다. 축산업과 함께 메밀, 감귤 등 밭작물이 주를 이룬다. 1972년부터 마을 가게에서 술 판매를 금지해왔다. 전원적인 풍경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정착주민이 해마다 늘고 있다.

민간신앙의 중심인 와흘본향당에서는 당신(堂神)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는 ‘신과세제(新過歲祭)’가 열리는데 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로 여겨진다. 이날 주민들은 모여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 가정마다의 행복을 기원한다.

마을만들기를 통해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이 주는 선물, 와흘메밀마을’이라는 비전을 수립했고 ‘치유와 여가의 본고장’이 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와흘본향당의 모습. /제공=와흘리.
와흘본향당의 모습. /제공=와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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