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74) 모진 놈은 동티도 피해서 간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편집자 글]

모진 놈은 동티도 피행 간다(모진 놈은 동티도 피해서 간다)

* 모진 놈은 : 모진 놈은, 독한 녀석은
* 동티 : 한자어 동토(動土). 흙을 잘못 다뤄 노하게 했다가 당하는 재앙
* 피행 : 피해서, 건드리지 않고 비켜서


민간신앙에 ‘동티’라는 게 있다. 흙을 잘못 다루면 지신(地神)을 노하게 만들어 당한다는 재앙을 말한다.

집을 새로 지을 때 택일은 물론 집터를 고르고, 안밖거리를 앉힐 자리며 방위, 특히 집을 고칠 때에 이르기까지 지관(地官)을 일일이 내세웠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지신의 노여움을 사서 화(禍)를 입게 된다는 습속에서 온 것이다. 서민층에서는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땅이나 흙에 관한 것만 아니라, 나중엔 동토의 개념이 넓혀지면서 무언가 미심쩍은 것, 일상적이거나 상식의 범주를 벗어난 것에게로 확대됐던 것 같다. 

주변을 둘러보면, 막잡아 행동하는 악질적인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을 ‘모진 놈’이라 보면 좋겠다. 그런 사람에겐 동티도 어쩔 수 없는지 재앙을 받지 않는다는 얘기다. 오히려 성실하고 근면 검소한 사람이 탈(頉)을 당하는 수가 많다.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인간사 아닌가 한다. 사진출처=이토 아비토, 제주학아카이브.
주변을 둘러보면, 막잡아 행동하는 악질적인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을 ‘모진 놈’이라 보면 좋겠다. 그런 사람에겐 동티도 어쩔 수 없는지 재앙을 받지 않는다는 얘기다. 오히려 성실하고 근면 검소한 사람이 탈(頉)을 당하는 수가 많다.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인간사 아닌가 한다. 사진출처=이토 아비토, 제주학아카이브.

어렸을 때 바닷가에서 크고 두꺼운 널빤지 하나를 어깨에 메고 왔다 어머니에게 야단을 맞는 적이 있다. 당장 그 자리에 가져다 두고 오라는 호통이었다. 먼 곳에서 파도에 떠밀려 온 것이라 동티가 붙어 있다는 것이었다. 

동티가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본래 목소리가 크지 않던 어머니가 겁먹은 표정으로 치를 떠는 것이 아닌가. 기분이 찝찝했다. 시키는 대로 바닷가로 달려가 그 자리에 두고 왔더니. 다시는 밖에서 무심코 돌 한 덩이도 갖고 오는 짓을 해선 안 된다고 했다. 잘못하다가는 동티가 붙어 병에 얻어걸린다는 얘기를 몇 번인가 귀에 박히도록 했었다. 그때 그 일로 내 머릿속에는 동티가 집안에 우환을 가져오는 귀신쯤으로 아주 각인돼 있다.

‘모진 놈은 동티도 피행 간다’

이 말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모진 놈’은 어떤 놈일까. 세상 여기저기에 재앙을 뿌리고 다니는 동티도 피해 간다는 게 아닌가. 모진 놈이 무서운 동티와의 비교우위에 있지 않은가. 모진 놈은 능히 동티를 피해 자기 멋대로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속담의 핵심은 모진 놈의 행동 특성에 있다. 동티 같은 악귀(惡鬼)도 건드리지 못하는 존재로 등장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못 돼 먹었다 할 만큼 성질머리가 독한 놈은 무서운 동티도 피해서 간다 함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막잡아 행동하는 악질적인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을 ‘모진 놈’이라 보면 좋겠다. 그런 사람에겐 동티도 어쩔 수 없는지 재앙을 받지 않는다는 얘기다. 오히려 성실하고 근면 검소한 사람이 탈(頉)을 당하는 수가 많다.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인간사 아닌가 한다.

어찌나 지독한지 재앙도 비켜 간다는 뜻이니, 겁도 없이 막잡아 처신하는 사람을 꼬집어서 하는 말이다.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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