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대 탐라문화연구원-심리건강연구소, 6일 국가폭력트라우마 포럼 개최

세대를 뛰어넘어 이어지는 ‘국가폭력 트라우마(trauma)’를 없애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 변화, 정치적 개선 노력 같은 ‘사회적 인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과 심리건강연구소는 6일 제주대 인문대학 2호관 현석재에서 ‘2022 국가폭력트라우마 포럼’을 개최했다.

심리건강연구소는 지난해 8월부터 올해 4월까지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지원으로  ‘5.18 피해자 유가족 1세대 및 2세대 실태조사’ 연구를 진행했다. 국가폭력으로 고통 받아온 1세대와 2세대들의 정신적 고통 상태를 심도 있게 분석한 흔치 않은 시도다.

이날 포럼은 ‘트라우마의 세대전이―5.18과 4.3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를 통해 심리건강연구소가 5.18 피해자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내용으로 진행됐다. 5.18 트라우마의 세대전이를 통해 4.3 트라우마 대응에 있어 참고할 부분을 모색해보자는 취지다.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과 심리건강연구소는 6일 제주대 인문대학 2호관 현석재에서 ‘2022 국가폭력트라우마 포럼’을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원과 심리건강연구소는 6일 제주대 인문대학 2호관 현석재에서 ‘2022 국가폭력트라우마 포럼’을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 명백한 트라우마 전이

5.18 피해자 유가족 조사 방법은 양적 연구와 질적 연구로 구분했다. 양적 연구는 5.18 희생자 유가족 1세대 59명, 2세대 64명이 참여했으며 구조화된 질문지를 이용한 1대 1 면접 조사와 온라인 조사, 우편 조사를 병행했다. 특히 앞선 2020년 예비연구를 통해 개발한 인권개반 트라우마 진단지표를 활용했다. 질적 연구는 1세대 16명, 2세대 14명을 섭외해 평균 1시간 53분 동안 인터뷰를 가지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양적 조사 결과, 조사에 참여한 전체 인원의 81.6%가 심리적 어려움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유가족 피해자 1세대의 PTSD(외상후 스트레스장애,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진단율은 30.51%를 보였는데, 2세대의 PTSD 진단율은 1세대 절반 수준인 15.63%를 보였다. 특히, 잠재적 PTSD는 1세대가 49.15%로 나타났는데, 2세대는 43.75%로 1세대에 육박하는 높은 수치를 보였다.

뿐만 아니라 세부적으로 ▲시민·정치적 권리 및 평등권 ▲인권침해 피해자의 권리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침해에 대한 답변에서도 희생자 자녀는 희생자 배우자와 형제·자매 만큼의 높은 트라우마 경험 수치를 보였다. 배우자는 세 가지 답변 종합 점수가 3.62점, 형제·자매는 3.24점으로 나타났는데 자녀는 3.20점을 기록했다. 특히,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침해는 피해자 형제·자매(2.86)보다 자녀(2.98)가 더 높게 응답했다.

이 같은 결과를 두고 연구진 가운데 한 명인 김종곤(건국대)은 “5.18 피해자 2세대 역시 장기간 반복해서 정신적 폭력에 노출돼 피해를 입어왔다는 것을 시사한다”면서 “2세대 연구참여자 가운데 40대 이하 역시 미비한 진상규명, 역사 왜곡, 유가족 폄훼 등으로 인해 슬픔과 우울, 고립감, 수치심, 불안 같은 부정적 정서 경험을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줄곧 반복하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 같지만 다른 1세대와 2세대의 트라우마

▲가족의 죽음 및 상해를 목격하면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자녀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고 5.18의 상처를 물려준 것 같아 괴롭다
▲가족의 죽음과 5.18의 진실에 대해 침묵하면서 울분했다.

- 5.18 유가족 1세대 트라우마 유형 가운데 일부

▲부모로부터 정신적·신체적 폭력을 당했다.
▲자녀 양육에 어려움을 겪었다.
▲가해자의 사과 없음과 그 지지세력들의 역사 왜곡에 분노를 느낀다

- 5.18 유가족 2세대 트라우마 유형 가운데 일부

이번 연구에서는 5.18 희생자 유가족 1세대와 2세대 모두 트라우마를 경험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연구진 남경우(건국대)는 “가족 내 트라우마가 1980년을 경험한 부모-자녀에서 끝나지 않고 그 다음 세대에서도 반복되고 있다”면서 “부모들이 온전한 부부의 관계를 지속하지 못한 경우, 2세대 스스로 부부의 관계에 대한 불안감을 가진다. 유가족 2세대 조사에서도 ‘좋은 배우자’에 대한 상을 그리지 못함을 토로했는데, 이는 가족을 재생산할 수 있는 권리와 돌봄을 할 권리를 침해당한 것”이라고 밝혔다.

# 사회적 인정, 국가폭력 트라우마 해결의 필수 조건

이번 연구 결과, 국가폭력 트라우마는 개인이 일상에서 겪는 트라우마와는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어 해결 조건도 달라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연구진 김석웅(심리건강연구소)은 “일반 폭력 사건의 경우 피해자는 국가의 보호를 받게 된다. 하지만 국가폭력 트라우마의 경우 폭력의 주체가 국가라는 특성으로 피해자들은 보호를 받기 어렵다. 이는 궁극적인 보호체계가 사라짐을 의미한다. 소속감을 박탈당하고 고립되며 자신의 피해사실을 밝히기 어렵게 된다”고 설명했다.

연구진 가운데 한 명인 김석웅(심리건강연구소)의 발표 모습. ⓒ제주의소리
연구진 가운데 한 명인 김석웅(심리건강연구소)의 발표 모습. ⓒ제주의소리

더불어 “공동체로 피해가 확산될 것이 두려워 공동체가 피해사실을 침묵하게 되는 ‘공모된 침묵’ 현상이 일어난다”며 “그렇기에 국가폭력 트라우마는 국가에 의해 손상된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적 배·보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은 국가에 의해 손상된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고 있으나 5.18 망언 등 역사적 왜곡 시도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사회와 공동체의 인식에 따라서 트라우마가 다시 심화되고 변형될 수 있다. 일반 트라우마의 경우 신체적·심리적 회복이 중요한 문제지만, 국가폭력은 공동체를 비롯한 사회구조적 요인이 개입하기 때문에 공동체가 피해자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유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면서 “정신건강 중심의 접근이 아니라 피해자들의 인권을 인식하고 존중하는 심리사회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연구진 김종곤 역시 “5.18에 대한 부정과 왜곡은 단순히 5.18이라는 기억을 배제하는 것을 넘어 유가족들의 치유 가능성을 박탈하고 그들의 삶을 무화시키는 것이다. 5.18 유가족들의 트라우마는 이들이 5.18에 속박돼 있음을 보여준다. 자기 존재의 의미를 많은 부분 5.18에 두고 있는 것”이라며 “5.18과 4.3 등 대부분의 국가폭력의 경우가 같은 형태”라고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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