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81) 남편 잘못 만나 울고, 아내 잘못 만나 울고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편집자 글]


* 서방 : 남편
* 못 들령 : 잘못 만나
* 울곡 : 울고
* 각씨 : 아내

1954년 제주 결혼식 사진. 사진=홍성흠, 제주학아카이브.
1954년 촬영한 제주 결혼식 사진. 기사 내용과 무관. / 사진=홍성흠, 제주학아카이브

옛날에는 남녀 간의 혼사가 얼굴 한 번 대면하지도 못하고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딸아이 이팔청춘 열여섯 살이 되면 한 동네나 마을 안에서 아들 가진 집에서 ‘누구네 집 똘이 얼굴이 곱고 마음씨도 좋은 데다 공손하고 일도 잘한다더라’ 하고 소문이 나기 시작한다. 조혼으로 처녀 열여섯이면 혼기가 꽉 찬 것으로 여기던 시절이다.

아들 가진 집에서 사람을 놓아 은근히 속셈을 떠본다. 딸을 가진 부모야 총각에 대해 이런저런 품행이며 행동거지에 대해 몇 군데 알아본 연후, 어지간하면 시기를 끌지 않고 혼례를 치르는 게 상례였다. 공연히 시간을 늦추다 성혼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 게 남녀의 혼사다. 이런 허물 저런 흠집이 하나둘 드러나면서 쓸데없는 말에 말이 덧붙어 안 되는 쪽으로 흐르기 십상이 되는 수가 적지 않았다.

바로 이것이다. 남녀가 얼굴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하고 혼례를 치러 부부의 연을 맺는 것. 성격이나 취향이 맞으면 하거니와 생각하는 바나 뜻하는 것 하나에 이르기까지 전혀 딴판이라고 생각해 보자. 특히 성격 차가 심하면 혼인을 유지하기 힘든 결정적 사유가 된다. 맞춰 가면서 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남자 쪽에서 자칫 이런 불만이 방탕으로 흘러 할 일은 아니 하고 만날 술타령이나 하고 외도나 한다면 가정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다.

특이 여자 쪽이 눈물이 마를 날이 없게 되고, 종내는 한(恨)이 맺힌 나머지 파국에 이르고 말기도 한다. 남자라고 크게 다르랴. 여자가 성질이 독한 데다 살림이 야무지기는커녕 없는 소득에 낭비를 일삼는다면 어찌 될 것인가. 그 집이 바로 풍비박산이 되고 말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그뿐이랴. 둘 사이에 자식이 딸려 있다면 그 아이들이 성장 과정에서 겪어야 할 고통을 어찌해야 하나.

‘서방 못 들령 울곡, 각씨 못 들령 울곡.’

피장파장,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곤궁한 처지에 빠지게 마련이다. 잘 만나야 인생을 행복하게 살 것인데, 결국 불행을 짊어지게 된다. 세상이 달라지면서 요즘은 서로 간 사랑을 나누며 교제를 통해 결혼으로 아름답게 승화시켜 나가므로 옛날 같은 맹목적 선택에서 오는 불행이 최소화하리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 

남녀 간에 신뢰는 쌓는 것처럼 아름다운 관계는 없을 것이다. 한데 옛 시절에는 이런 자유연애에서 신뢰를 튼튼히 쌓아 결혼으로 골인하는 기반이 없었다.

배우자 선택, 그것은 인생의 행‧불행을 결정하는 요건임은 더 말할 게 없다.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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