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홍의 세상 사는 이야기] (95) 별을 따려거든 몽골로 가라!

4박 5일 동안의 몽골 여행은 ‘소확행’, ‘욜로’, ‘카르페 디엠’ 같은 말들의 근원을 되씹기에 딱 좋은 기회였다. 낯선 곳에서 낯선 인간과 사물을 만나는 여행은 나의 존재론적 의미를 성찰하게 한다. 관찰의 대상 속에 내재하는 본질을 투시하게 함으로써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낯설게 하기’ 이론처럼 일상화, 타성화한 의식을 일 깨운다.

몽골 전체 인구(330만)의 절반 정도가 사는 수도 울란바토르와 사막지대를 제외하고 몽골 전 지역은 끝없는 초원이 이어진다. 광활한 초원에서 몽골의 5대 동물(양·염소·말·소·낙타)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장면과 몽골 유목민의 전통가옥인 게르촌이 듬성듬성 들어선 모습이 진풍경이다.

푸른 초원 맑은 공기, 깨끗한 물로 표상되는 테를지 국립공원은 그 자체가 정신수련원이요, 힐링센터라고 해도 무방하다. 사진=장일홍.<br>
푸른 초원 맑은 공기, 깨끗한 물로 표상되는 테를지 국립공원은 그 자체가 정신수련원이요, 힐링센터라고 해도 무방하다. 사진=장일홍.

① 몽골 여행의 백미 - 테를지 국립공원

유네스코가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한 테를지 국립공원은 바위산으로 둘러싸였는데, 나는 우주의 정기가 뭉쳐있다는 바위에 누워 영발을 받았다. 구약성서의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시내산도 바위산이다. 바위산=영발은 동·서양의 보편적 사고다. 공원 곳곳에 거대한 기암괴석이 산재해 있고 분지 형태의 평원에는 형형색색의 기화요초가 어여쁜 자태를 뽐낸다. 나는 이걸 들꽃들의 축제, 야생화 천국이라고 불렀다. 기암괴석은 신의 조각품이요, 야생화는 신의 그림이요, 새소리·바람소리는 신의 음악이다. 대자연이 신의 예술 작품이 아니라고 할 자 누구인가?

푸른 초원 맑은 공기, 깨끗한 물로 표상되는 테를지 국립공원은 그 자체가 정신수련원이요, 힐링센터라고 해도 무방하다. 자연에 순응해서 살아가는 몽골인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를 알 만하다.

② 몽골 여행의 압권 ― 은하수 관찰

“몽골에 왜 가느냐?”고 물으면 “별 보러 간다”고 대답한다. 

몇 년 전 시베리아 바이칼호수에서 바라본 은하수도 장관이었는데 몽골의 별 무리는 더 선명하고 찬란하게 쏟아진다. 그래서 나는 별 따러 몽골에 왔다고 말한다.

우주에는 천억 개의 은하계가 있고 각 은하계는 천억 개의 별을 거느리고 있다고 한다. 천억×천억=무한대다. 광대무변한 우주에서 지구라는 행성은 티끌에 지나지 않고, 영원한 천국의 시간에 비하면 인간 수명은 찰나이다. ‘티끌 속 먼지’에 불과한 인간들이 저 잘났다고 까불고 한 줌도 안 되는 권력·명예·재물을 얻겠다고 진흙탕에서 개싸움을 벌인다. 터무니 없는 욕심 깡그리 내려놓고 교만도 버려라. 어쩌면 우리가 여행하는 진짜 이유는 이것인지 모른다.

게르 조립시간은 2시간, 분해는 30분이면 족하다. 이런 용이함과 편리함이 21세기에도 게르에 사는 까닭인 거 같다.&nbsp;<br>
게르 조립시간은 2시간, 분해는 30분이면 족하다. 이런 용이함과 편리함이 21세기에도 게르에 사는 까닭인 거 같다. 

③ 게르 체험

게르에서의 1박 2일은 세월이 가도 잊지 못할 추억이다. 황홀한 체험 때문에…. 

일행 중 하나가 “이 좁은 게르에서 어떻게 아이를 만드냐?”고 묻자 가이드는 “그래도 만든다”고 했다. 인간의 욕망은 은밀하고 격렬하니까. 게르 조립시간은 2시간, 분해는 30분이면 족하다. 이런 용이함과 편리함이 21세기에도 게르에 사는 까닭인 거 같다.

④ 위대한 문제적 인간 ― 징기즈칸

테를지 인근에 높이 40m로 세계 최대인 징기즈칸 기마 동상이 있다. 가까이서 보니 부리부리한 눈이 영웅호걸의 기상이다. 그가 세계의 1/2, 유라시아 전역을 정복한 배경은 무얼까? 징기즈칸의 리더십과 군대 조직 덕분이라고 본다. 칸은 병사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줬고 몽골군은 난관을 극복하는 유목민의 생존 방식을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징기즈칸은 이런 말을 남겼다. “한 사람의 꿈은 그냥 꿈에 불과하지만 만인이 같은 꿈을 꾸면 현실이 된다.” (무릇 지도자는 이래야 한다)

⑤ 몽골의 민속 공연

민속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민속합주단의 ‘아리랑’ 연주에 따라 관객 대다수 한국인들이 아리랑을 합창한 것이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월드컵(2002년) 때 해외동포들이 우리 선수가 골을 넣으면 아리랑을 부르며 울었다는 그 광경이 얼핏 지나갔다. 

애국심이란 무엇인가?

모든 여행기는 ‘살아있음의 흔적’이요, ‘살아있는 날들의 빛나는 기록’이다.<br>
모든 여행기는 ‘살아있음의 흔적’이요, ‘살아있는 날들의 빛나는 기록’이다.

⑥ 잊지 말아야 할 역사 ― 우리는 누구인가?

1276년 몽골(당시는 元나라)은 제주에 목마장을 설치하고 ‘목호의 난’(1374년)이 평정될 때까지 100년 동안이나 제주섬을 지배하고 수탈했다. 1960년대까지 제주인에게 가장 심한 욕은 ‘몽곳놈의 조지로 맹근 자식’(몽골인의 남자 성기로 만든 자식)이었다. 실제로 제주의 성씨(姓氏) 가운데 몇몇은 본관(本貫)이 대원(大元)인데 몽골인이 조상이라는 뜻이다. 같은 시기, 한반도의 산하도 피로 물들었고 부녀자들의 정조는 유린됐다. (몽고반점이 이종교배의 증거는 아니다)

이 혼혈의 역사, 치욕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자강불식(自强不息) 밖에는 도리가 없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됐으니 그만하면 됐다. 이젠 좀 쉬어가자”고 하는 순간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이는 세계사가 증언하는 사실이다.

⑦ 살아있음의 흔적

1980년대 전설의 디바, 윤시내가 전한다.

윤시내 ; 사람들이 왜 벚꽃에 열광하는지 아세요? 잠시 피었다가 사라지기 때문이에요.

할리우드 영화 ‘트로이’에 나오는 아킬레스(배우 브래드 피트)의 대사.

아킬레스 ; 신이 가르쳐 주지 않는 비밀 하나 알려줄까? 불사의 신은 생이 지겨워서 인간을 부러워 해. 인간은 필멸의 존재이기 때문에 살아있는 날들이 아름다울 수 있는거야.

나는 필멸의 생을 불꽃처럼 활활 태우기 위해 오늘도 여행을 하고 내일의 여행을 꿈꾼다. 모든 여행기는 ‘살아있음의 흔적’이요, ‘살아있는 날들의 빛나는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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