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83) 서울놈 글꼭지야 모른다 한들 말꼭지야 모르랴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편집자 글]


* 글꼭지사 :  글의 내용이야
* 몰른덜 : 모른들

사진=픽사베이.
요즘엔 제주도가 사람이 살기 좋은 곳으로 돼 많이 내려와 살고 있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서울과 제주가 역전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사진=픽사베이.

예로부터 서울 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선망하는 곳, 우리나라의 수도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시골뜨기니 촌놈이니 하는 말은 서울 사람들이 상대를 비하해 하는 말이기도 했지만, 서울 사람들을 부러워해 하는 말, 곧 열등의식의 발로에서 나온 말이기도 하다.

‘사름은 나거든 서울로 보내곡, 망아지를 나거든 제주도로 보내라’ 한 말에는 이런 서울과 시골에 대한 극명한 차별적 인식이 들어 있었다. 요즘엔 제주도가 사람이 살기 좋은 곳으로 돼 많이 내려와 살고 있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서울과 제주가 역전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서울말은 국어의 표준어의 지위를 갖고 있다. 그러니까 서울말 이외의 지방의 말들은 표준어가 아닌, 비표준어가 된다. 국어를 대표하는 서울말은 어감이 부드럽고 사분사분하고 현란하게 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 그렇지 않은가. 서울말을 귀에 거스르다 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도 그렇지 배우지 못해 글로 쓴 것이야 해득(解得)을 못할망정 아무리 서울 사람의 말이라 해도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겠느냐 함이다. 혹여 절해고도에 태어나 열악한 자연 환경에서 억척스레 농사지으며 살아 학교 마당을 구경해 보지 못한 옛 제주 사람들 심중에 잠재해 있던 열등감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안 배웠으니 글은 알 수 없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되, 말하는 분위기나 흐름쯤은 족히 알아차린다는 얘기다. 서울말이 오죽 매끄러운가. 말만 그런 게 아니라 능수능란한 표정에 웃음까지 띠어가며 말을 하면 까딱하다 말의 진의(眞意)를 놓쳐 버릴 수도 있다는 뜻이 숨어 있다. 잘못 들었다가 낭패를 살 수도 있으니, 그냥 단순히 짚고 지나칠 말이 아니다.

생활수준에서 문화의 차이를 느낄 만큼 서울과 제주의 거리는 현격했다. 사실이지 195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제주도민은 육지에 나가 홀대를 받았다. ‘제주도민증’을 제시하면 그 순간부터 차대(差待)를 받았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여인숙에 가 일박하려면 도민증을 내보여야 하던 시절. 제주도 사람이면 이부자리 나오는 것부터 달랐다. 서울특별시민증이 무슨 벼슬처럼 빛을 발하던 때가 있었으니 어이없는 일이 아닌가.

‘서울놈 글꼭지사 몰든덜 말꼭지사 몰르랴.’

제아무리 서울 사람들 말솜씨가 세련되지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만은 제대로 알아들 수 있다는 것. 글은 읽지 못해 하릴없어도 말까지 못 알아듣는 천치바보가 아니라는 뜻으로 재해석하면 좋을 것이다. 

그래도 속뜻을 짚어보며 은연중 쓴웃음을 짓게 한다.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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