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문화예술진흥원 기획 연극 ‘마술가게’

기대치(期待値).

이루어지리라 생각한 목표의 정도를 부르는 단어다. 지난 22일과 23일 제주도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연극 공연 ‘마술가게’에는 기대치를 정할 만 한 것들이 존재했다. 연극, 영화, TV까지 섭렵하며 높은 인지도를 쌓아온 원로 배우 최종원, 2021년 한국연출가협회 선정 ‘올해의 연출가상’을 수상한 이우천 연출 등이 대표적이다. 확실한 존재감을 지닌 원로 배우의 연기, 주목받는 젊은 연출가의 아이디어는 어떤 무대를 만들어낼지 궁금증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그렇게 막이 올린 ‘마술가게’는 친숙한 웃음과 강렬한 정치 풍자에서 실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제작비 규모를 고려하면 단 두 번의 공연 횟수와 완성도는 깊은 아쉬움을 남겼다.

23일 마술가게 출연진 기념 촬영. ⓒ제주의소리
23일 마술가게 출연진 기념 촬영. ⓒ제주의소리

# 도둑들이 꼬집는 삶의 애환과 정치 풍자

고급 옷을 판매하는 전시장 안에 수상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슷한 목적을 지닌 또 한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먼저 등장한 늙은 도둑(배우 최종원)과 뒤따른 젊은 도둑(이준)은 옷 가게 금고를 두고 티격태격한다. 하지만 늙은 도둑이 기가 막힌 솜씨로 금고를 열자, 둘 사이는 급격히 가까워지고 이어 스승과 제자 사이로 발전한다. 술까지 마시며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는 두 사람. 갑작스레 매장 안으로 누군가 찾아오면서 젊은 도둑은 혼자 남겨진다. 다행히 늙은 도둑이 돌아와 재치 있게 대응하며 두 사람은 무사히 빠져나가고 서로의 안녕을 빈다.

‘마술가게’는 이상범 작가가 1992년 발표한 작품이다. 도둑들의 입을 통해 기득권들의 위선을 꼬집고 인생의 애환을 곱씹는 블랙코미디 작품이다. 30년 전 원작에서도 청와대, 판·검사, 선거 등을 언급하며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았는데, 이번 제주 공연에서는 최근 한국 정치 현안을 생생하게 끄집어내며 강도를 높였다.

늙은 도둑은 젊은 도둑을 향해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국민의힘을 주로 지지하는 ‘이대남(이십대 남성)’을 지적한다. 이에 질세라 젊은 도둑은 이재명 국회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을 주로 지지하는 ‘개딸(개혁의 딸)’을 힐난한다. 대장동, 건진법사, 국회, 검찰, 조국 등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정치·사회 이슈들을 툭툭 던지는데, 예상하지 못한 관객들은 탄성과 웃음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원작 전반에서 풍기는 냉소적인 느낌 대신 공감대를 높이기 위한 배경들을 여럿 추가했다.

본처와 헤어지고 다른 여자와 사는 늙은 도둑은, 돈이 없어 신장 이식을 못해 아들을 떠나보내고 암 투병 아내와의 마지막 여행을 위해 다시 금고를 터는 인물로 변했다. 젊은 도둑은 소매치기를 배웠지만 마지막 양심만은 버리지 않은 설정을 새로 입었다. 서로를 아버지·아들로 투영하는 대사나, 젊은 도둑에게 “꿈을 포기하지 말라”로 독려하는 마지막은 투박하지만 따뜻한 메시지를 전한다.

수화기는 스마트폰으로 바꾸고 신해철의 1991년 노래 ‘재즈카페’는 영탁의 2018년 발표작 ‘니가 왜 거기서 나와’로 바꾸는 등 소소한 시대 배경도 현실에 맞게 수정했다. 가볍게 움직일 수 있는 비교적 작은 무대 세트에 영상을 결합한 연출은 소극장에 보다 적합한 한계를 조금이라도 더 확장하려는 노력으로 읽혔다. 

# 제작비에 미치지 못하는 완성도

2022년판 ‘마술가게’는 기성세대, 청년세대 모두 사는 게 만만치 않은 현실에서 서로를 위로하는 마무리로 끝맺음 짓는다. 말 한 마디, 표정 하나로 웃음을 만들어내는 최종원 배우의 경륜과 혀 짧은 세 번째 도둑을 포함해 중간 중간 유머도 추가한다. 

두 도둑은 구성진 트로트 노래를 한곡 씩 뽑아내는데 난데없이 제주도립무용단원들이 백댄서로 등장한다. 껍데기를 벗어던지자며 옷을 벗는 상황에서는 관객들에게 박수를 유도하며 늙은 도둑을 격려한다. 이 같은 연출은 앞서 언급한 공감대를 높이는 새로운 설정들과 맞물려 관객이 작품을 받아들이는 문턱을 한결 낮췄다.

다만, 연극으로서 완성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원작이 품은 날카로움 역시 다소 무뎌졌다. 마네킹 역할은 본래 주연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비판적인 메시지까지 전하는 적극적인 역할이었으나, 이번에는 주로 과거를 회상하는 용도로 비중이 낮아졌다. 마네킹 역할로 제주지역 배우들을 섭외했기에 아쉬움은 더욱 크다.

작품 속 노래, 패션쇼는 본래 앞뒤 맥락을 어느 정도 고려해 사용하지만, 이번에는 단순 볼거리에 가깝게 수정됐다. 여기에 필요 이상의 욕설과 스킨십, 조악한 영상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국내 정치 사안을 초반부 몰아치듯 쏟아내기 보다는 더 분산시켜 다뤄도 좋겠다는 인상이다.

이런 점들과 이틀 동안(22일~23일) 단 두 번에 불과한 공연 일정까지 함께 고려하면 제작비 5300만원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5300만원은 공연 단체 한 곳의 1년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공연장상주단체육성지원 예비상주단체 사업비보다 많은 액수다. 냉정하게 ‘최종원 배우와 이정도 제작비면 더 나은 작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문화예술진흥원은 올해 1월에도 최종원 배우가 참여한 연극 ‘언덕을 넘어서 가자’를 자체 기획으로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한 바 있다.

무엇보다, 최종원 배우를 포함한 똑같은 ‘마술가게’ 작품을 7월 29일부터 30일까지 김천국제가족연극제에서 다시 공연한다는 사실까지 감안하면, 이번 문화예술진흥원 기획 연극 ‘마술가게’는 작품 안팎으로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제주를 포함한 전국 연극계에서 최종원이라는 인물이 가지는 무게감은 무척 크다고 알고 있다. 인생의 황혼기를 제주에서 보내면서 지역 연극계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도 반갑다. 제주 연극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원로 배우의 활약을 비단 대형 무대에서만이 아닌 다양한 무대에서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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