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최초 ‘제주 중앙위’ 고무적…심사보류는 아쉬워

최근 4·3중앙위원회 회의가 사상 최초로 제주에서 열려 윤석열 정부의 4·3해결에 대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희생자 결정 등에 대해선 보다 전향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래픽=김찬우 기자] ⓒ제주의소리
최근 4·3중앙위원회 회의가 사상 최초로 제주에서 열려 윤석열 정부의 4·3해결에 대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희생자 결정 등에 대해선 보다 전향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래픽=김찬우 기자] ⓒ제주의소리

2014년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제주4·3을 국가추념일로 지정한 것은 지금 생각해봐도 아이러니하다. ‘완전한 해결’로 나아가는 하나의 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무척 다행스런 일이긴 해도 말이다. 그만큼 박근혜 정부는 추념일 지정 말고는 집권 내내 4.3과 관련해 퇴행적 행보를 보였다. 

‘예정된 공식 무대’에서 치적을 알리고픈 욕망이라도 있을법한데 웬일인지 박 대통령은 추념일 지정만 해놓고 그해 열린 첫 국가 추념 행사에 불참했다. 이게 의아하다는 얘기다. 

약속을 잘 지키는 대통령이라서? 4·3 국가추념일 지정은 2012년 12월 대선 때 박 대통령의 제주지역 주요 공약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4·3해결의 여정에 있어서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은 일종의 암흑기였다. 불통의 세월이었다. 오죽하면 ‘잃어버린 9년’이란 말까지 나왔겠는가. 

두 정부에서 4·3의 시계는 거꾸로 흘렀다. 4·3특별법, 4·3위원회 폐지가 시도됐다. 극렬보수 세력의 끊임없는 4·3흔들기를 방관함으로써 사실상 4·3정립을 방해했다. 헌법소원심판, 행정소송, 국가소송이 줄을 이었다. 두 대통령은 4·3추념식에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4·3희생자 사실조사를 제주도에 요구하기도 했다. 재심사를 유도해 희생자 결정을 취소하려는 속셈을 품었던 보수단체와 부화뇌동했다. 국가추념일 지정 이듬해의 일이다. 

비극의 역사를 딛고 일어섰던 제주도민들은 시계추를 되돌리려는 일련의 불순한 시도들도 모두 극복했다. 이른바 ‘4·3민심’은 이러한 굴곡을 거치며 자연스레 형성됐다. 

희생자 사실조사 문제로 시끄러웠던 2016년 1월말이었다.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 제주도당이 중앙당을 향해 성명을 발표했다. 사실조사 중단 조치를 강력히 건의하는 내용이었다. 톤도 그렇고 성명에서는 절박함이 묻어났다. 

제20대 총선(4·13)을 70여일 앞둔 시점이었다. 성명은 4·3을 목전에 두고 역풍을 우려한 선제 대응 성격이 짙었다. 제주도당은 단순히 사실조사 중단 만을 요구하지 않았다. 화해와 상생, 도민대통합의 시대를 여는데 앞장서겠다는 다짐까지 했다. 

지역의 보수정당이 중앙당을 향해 읍소 아닌 읍소를 하는 풍경은 한동안 총선 때마다 재연됐다. 공교롭게도 총선 선거일은 1996년 제15대 총선(4·11) 때부터 법정화돼 줄곧 4·3 직후 치러졌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4·3 해결에 소극적으로 비춰졌던 보수정당으로선 일정상으로도 매번 불리한 형국이었다. 그 벽을 뛰어넘으려고 제주도당은 발버둥을 쳐야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사실상 여·야의 구분이 무색해졌다. 선거 공약에서도 차별성이 거의 사라졌다. 오히려 보수정당 쪽에서 4·3해결의 목소리를 더 크게 내는 경우도 있으니 격제지감이 든다. 2년여 전 제21대 총선(4·15)에서는 4·3이 보수정당에 악재로 작용하지도 않았다. 당시 웬만한 이슈는 코로나 19 사태에 묻힌 측면도 있긴 했다. 

바야흐로 4·3해결이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된 것 같아 반갑다. 이런 흐름을 더욱 굳히는 뜻깊은 회의가 최근 제주에서 열려 이목을 끌었다. 4·3 관련 최고 의결기구인 4·3 중앙위원회가 발족 22년만에 최초로 제주에서 소집된 것이다. 그것도 보수 정부에서. 

회의에서는 희생자 88명과 유족 4027명 등이 추가로 공식 인정됐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제주4·3이 비극의 역사에서 벗어나 통합과 화해의 역사로 우리 사회에 기억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뿐만 아니라 한 총리와 장·차관 등 정부위원들은 최초로 제주4·3평화공원에서 합동 참배를 실시했다. 

윤석열 정부가 4·3중앙위 회의를 제주에서 연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설사 이벤트성이 있다고 해도 나무랄 일이 아니라고 본다. 통치 행위도 따지고 보면 뭔가를 보여주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올해 4·3 추념식에 대통령 당선인 신분으로는 처음으로 참석해 ‘온전한 명예회복’을 약속한 그였기에 진정성을 믿고 싶다.   

다만 한가지. 4·3 당시 설치된 폭발물에 의해 한국전쟁 이후 사망한 어린이 2명에 대해 희생자 심사보류 결정이 내려진 것은 못내 아쉽다. 4·3특별법 상의 ‘4·3기간’을 기계적으로 적용한 결과다. 시기만 다를 뿐 비슷한 유형의 피해자가 희생자 또는 후유장애자로 결정된 사례가 있는 만큼 융통성을 발휘할 수도 있었다. 

이건 그 무엇도 아닌, 상식으로 접근할 문제이다. 이왕 윤석열 정부가 화해와 통합을 선언한 이상 보다 신축적이고 전향적인 태도를 취했으면 한다.  

국무총리가 위원장이고 법무부장관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4·3중앙위에서 결정된 희생자를 놓고 일개(?) 검찰이 뒤늦게 문제를 제기하는 최근의 황당한 상황도 바로잡아야 한다. ‘법과 규칙에 따라서…’? 이번 제주 방문 당시 한 총리의 입장은 한마디로 모호했다.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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