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수, 제주와 자치 이야기] (7) 용역방식 반드시 재검토…도민 동의안 마련 위한 토론이 우선

오영훈 도지사는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공약했다. 구체적으로는 제주도를 5~6개 정도의 기초자치단체로 나누고, 기초자치단체의 권력 구조는 기관통합형으로 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일정과 관련해서는, 임기 초 2년 내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4년 후 지방선거에서는 도민들의 손으로 기초자치선거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한다. 

  기초자치단체 부활, 원칙부터 세워야

우선 오영훈 도지사가 기초자치단체 부활에 대한 의지를 밝힌 점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기초자치단체 부활 논의가 처음이 아닌 만큼,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몇 가지 원칙을 세울 필요가 있다. 

첫째는, 도민들의 동의수준이 높은 안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기초자치단체 부활과 관련해서는 ‘어떻게 중앙을 설득할 것인지’부터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주도민들의 동의수준이 높은 안이 마련되는 것이다. 

도민들의 동의수준이 높을수록 중앙정부에 대한 설득력과 협상력이 강해질 수 있다. 반대로 도민들의 동의수준이 낮다면 중앙과 협상 과정에서 ‘도민들도 의견이 갈라지는데, 어떻게 하느냐’는 얘기를 들을 수밖에 없다. 

  지도에 선 긋는 방식이 아니라 역사/문화/지역특성 기반해야

둘째, 인위적으로 지도에 선 긋는 방식이 아니라 역사, 문화, 제주의 특성에 기반한 기초자치단체 부활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선진국에 가까운 지방자치를 했던 때는 1961년 5.16. 쿠데타 이전이었다. 

그때는 도시지역은 시(市) 단위에서, 농촌 지역은 읍·면 단위에서 지방자치를 했다. 그것이 유럽·일본·미국에서 하고 있는 지방자치 모델이다. 독일의 기초지방자치단체인 게마인데(Gemeinde), 스위스의 코뮌, 일본의 정(町)·촌(村) 모두 우리의 읍·면 정도 규모이다. 스위스의 경우에는 인구가 1천명이 안 되는 기초지방자치단체도 수두룩하다. 그래도 모범적인 지방자치를 하고 있다.

게다가 제주도의 경우에는 읍·면의 인구가 육지부와 비교하면 매우 많은 편이다. 육지부의 경우에는 인구가 2천명이 안 되는 면이 수두룩하다. 인구가 작은 군의 경우에는 통틀어서 2만~3만명 남짓 수준이다. 그런데 제주의 경우에는 애월읍, 조천읍, 한림읍, 대정읍 등 인구가 2만명이 넘는 읍들이 많다. 육지의 웬만한 군(郡) 수준의 인구인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5~6개 수준으로 ‘인위적인 선 긋기’ 방식의 기초자치단체 부활이 아니라 다른 대안을 논의해야 한다. 5~6개라는 것은 역사·문화적인 근거도 없고, 논리적인 근거도 없다. 읍·면의 인구가 많은 제주의 특성에도 맞지 않는다. 

필자는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도시지역은 시(市) 단위 자치를, 나머지 읍·면 지역의 경우에는 읍·면자치를 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도시지역의 동장은 주민직선제로 뽑고 주민자치회의 기능을 강화하는 동단위 근린자치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것은 활발한 토론을 위해 제시하는 개인적 의견이다. 

이것이 중앙을 설득하는데 불리한 것도 아니다. 지금 지방자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읍·면 자치권 부활에 대한 공감대가 상당하다. 인구가 감소하고 고령화되고 있는 농촌 지역을 살리기 위해서도 읍·면 자치권의 부활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특별자치를 하는 제주도가 지역 특성에 맞춘 기초지방자치를 하기 위해 읍·면 자치를 부활시키겠다는 것은 오히려 설득력이 있다. 

  용역이 아니라 범도민적 토론이 필요 

셋째, 용역이 아니라 범도민적 토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제주의 경우에는 일부 전문가들이 용역을 맡는 방식으로 행정구역 개편 논의를 해 왔으나, 이런 방식으로 안 된다는 것은 이미 드러났다. 오히려 여러 방안을 놓고 도민사회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토론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도의회와 집행부가 협의하여 범도민적 토론을 진행할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언론이나 시민사회도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작위 추첨으로 뽑힌 도민들이 모여서 토론하는 ‘숙의민주주의 방식’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제주의 경우에는 ‘숙의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주민참여기본조례’도 제정되어 있다. 이런 조례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런 토론을 통해서 기초자치단체 부활방안이 정리되고 좁혀지면 주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벌써부터 용역을 한다고 하니 매우 우려스럽다. 용역과정에서 주민참여나 의견수렴을 한다고 하나, 과연 제대로 될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용역 방식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부디 기초자치단체 부활 문제가 이번에는 제대로 논의되고 추진되기를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런 원칙들부터 토론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폭넓은 공감대 위에 로드맵이 제시될 필요가 있다. 이번에는 기초자치단체 부활 논의가 성과를 거둘 수 있기를 기대한다.  


# 하승수 변호사는?

1992년 공인회계사 시험, 1995년 사법고시까지 합격한 엘리트지만,  정작 그는 편한 길을 택하지 않았다. 변호사 일을 하면서 참여연대 실행위원과 납세자운동본부 실행위원장,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등 시민운동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2006년부터 약 4년간 국립 제주대학교 법학부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로 강단에 서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 이후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을 맡으며 시민운동에 매진했다. 2012년 녹색당 창당에도 참여했다.

지금은 세금도둑 잡아라 공동대표와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풀뿌리 지방자치를 향한 '하승수, 제주와 자치이야기'를 매월 한차례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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