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84) 손이 놀면 입도 논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편집자 글]


* 놀민 : 놀면

국회가 열리지 않았으면 세비나 특별활동비도 받지 않는 게 원칙에 맞는 일이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로서 국민에게 고개를 수그릴 수밖에 없는 일이다. 사진=픽사베이.
국회가 열리지 않았으면 세비나 특별활동비도 받지 않는 게 원칙에 맞는 일이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로서 국민에게 고개를 수그릴 수밖에 없는 일이다. 사진=픽사베이.

“손은 혼번 꼬딱도 아니 허멍 입만 놀리젠 허염서?”
(손은 한번도 까딱 안 하면서 입만 노리려고 하느냐?) 

할 일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입으로 먹기만 하려느냐고 욕하는 말이다. 당연한 얘기다. 손은 일을 하는 것이 제 구실인데, 놀기만 하면서 먹기만 한 대서야 말이 될 것인가.

인간은 호모 파베르(Hommo Fabel)다. 손을 놀려 무얼 만든다. 손은 노작(공작)을 위해 태어난 도구다. 만드는 일을 한다. 손이 있어야 물건을 만들 수 있다. 무얼 만드는 데 손이 없으면 안된다.

손은 꼼짝도 않으면서 먹기만 하는 것은 말 그대로 몰염치다. 일한 만큼 먹는 게 순리다. 일은 하지 않으면 먹겠다고 나설 수 있는 일인가. 사람에게는 체면이라는 게 있다. 일하지 않고 먹기만 하는 것은 결코 자신의 낯을 세우는 일이 아니다.

이를 조금만 확대 해석하면 여기에 딱 알맞은 사회현상이 있다. ‘무노동, 무임금’이다. 노동의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 급료 아닌가. 노동을 하지 않으면 임금도 없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정한 이치다. 

특히 정치 쪽, 국회에서 이 말이 자주 나온다. 회기에 회의는 하지 않으면서 회비만 받아먹는다고 비아냥하는 국민의 목소리다. 회비만 아니라 특별활동비까지 꼬박꼬박 챙긴다. 헌정사상 수없이 있었던 일이다. (그럼에도 ‘무노동’으로 갔던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 돈이 어디서 나온 것인가. 국민들이 내는 혈세가 아닌가.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국회가 열리지 않았으면 세비나 특별활동비도 받지 않는 게 원칙에 맞는 일이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로서 국민에게 고개를 수그릴 수밖에 없는 일이다. 

무위도식이라는 말이 있다. 일은 하지 않으면서 먹기만 한다는 말이다. 이처럼 파렴치한 일이 있는가. 하긴, 일은 안 하면서도 먹어야 하는 게 사람이다.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그러랴 할지 모르나, 삶의 주체로서 반드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문제다. 할 수 있는 무슨 일이든 하면서, 밥을 축내야 마땅한 일이다. 그게 기본적으로 사람의 구실을 하는 것이다.

“손이 놀민 입도 논다”

중병으로 몸져누워 있지 않는 한, 손을 움직여야 한다. 가족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주어야 함은 물론, 주위에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려 애쓰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게 사람의 삶이다.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