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88) 서방 복, 조식 복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편집자 글]


* 서방 복 : 남편에게서 받는 (행) 복
* 조식 : 자식


이쯤 되면 인생사 참으로 허망한 게 아닐까. 그렇다고 팔자가 정해진 것도 아니리 낙담할 일은 아니다. 사진=픽사베이.
이쯤 되면 인생사 참으로 허망한 게 아닐까. 그렇다고 팔자가 정해진 것도 아니리 낙담할 일은 아니다. 사진=픽사베이.

제주방언으로는 복(福)을 ‘복력’이라 한다. ‘복력이 좋다, 받을 복력이 이서사주’라고 널리 쓰인다. 행복이란 뜻을 달리 하는 말이다.

남편에게서 받는 복 그리고 자식에게서 받아 누리는 복. 이렇게 남편에게서 또한 자녀들에게서 복을 받들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재산도 돈도 좋지만 그것도 결국 복을 얻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은 것일 뿐이다. 행복을 누리는 것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이 선망하는 최상의 가치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말처럼 남편 속, 자식 복을 얻어 누린다는 게 그리 쉽겠는가. 남편도 남편 나름이라 성실한 성품에 인정이 있고 마음이 따뜻해 내자를 위해 배려하고 사랑한다면 그런 복이 있겠는가. 거기에다 아들딸이 행실이 착실한 데다 어머니를 위해 효도한다면 이 또한 다른 것에 비할 바 아닌 최고의 행복일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다.

이렇게 남편 복과 자녀 복을 한 몸에 누릴 수만 있다면 한 세상을 차지한 것이나 진배없는 일이다.

그러려면 우선 남편을 잘 만나야 한다. 한데 남편을 잘 만나는 일이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자기가 선택하는 일이 아니니 복불복이요 타고난 운명으로 자신에게 주어지 는 것이지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다. 

“아이고 내 팔자야, 난 어느 날 어느 시에 나네 요 모냥 요 꼴로 살암신디사. 서방은 서빙대로 민닐 눈만 떴댕 허민 술 먹엉 광절허지, 조식이엔 혼 것덜조차 호라는 글은 아니허고 간새만 허단 보난 좋은 헉교에도 못간 촌 구석이서 빈빈 놀멍 허송세월 허고 있으니 앞으로 무신 희망으로 해영 살코이? 홈 내 팔자가 한심스럽다게.”
(아이고 내 팔자야, 나는 어느 시에 났기에 요 모양 요 꼴로 살고 있는 건지. 서방은 서방대로 눈만 떴다 하면 술 먹어 미친 짓이나 하지. 자식이라 한 것들조차 하라는 글은 아니하고 게으름만 피우다 보니 좋은 학교에도 못 가 촌구석에서 빈들빈들 놀면서 허송세월 하고 있으니, 앞으로 무슨 희망으로 해서 살까? 참 팔자가 한심스럽구나.)

이쯤 되면 인생사 참으로 허망한 게 아닐까. 그렇다고 팔자가 정해진 것도 아니리 낙담할 일은 아니다. 남편을 잘 부추겨 일으키고 자식 농사에 힘 기울여 없던 복을 얻어낼 수도 있는 법. 팔자타령만 할 것도 아니다. 사람 팔자 시간 문제라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뜻이 있으면 길이 열리는 법이거늘. 

그래서 ‘서방 복, 조식 복’으로 집안을 그득 해운 연후, 고생했던 ‘옛 말 곧는’(고생했던 옛날 얘기하는) 헹복한 때를 기필코 만나야 하 것이다. 자신의 노력으로.’ 그리하여 자수성가라 했지 않은가.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