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예술칼럼 Peace Art Column] (94) 리춘펑

제주도는 평화의 섬입니다. 항쟁과 학살의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은 더욱 간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주4.3이 그렇듯이 비극적 전쟁을 겪은 오키나와, 2.28 이래 40년간 독재체제를 겪어온 타이완도, 우산혁명으로 알려진 홍콩도 예술을 통해 평화를 갈구하는 ‘평화예술’이 역사와 함께 현실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들 네 지역 예술가들이 연대해 평화예술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들의 평화예술운동에 대한 창작과 비평, 이론과 실천의 공진화(共進化)도 매우 중요합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네 나라 예술가들의 활동을 ‘평화예술칼럼(Peace Art Column)’을 통해 매주 소개합니다. 필자 국적에 따른 언어가 제각각 달라 영어 일어 중국어 번역 원고도 함께 게재합니다. [편집자 글]


'동아시아 선회하기 시리즈 Ⅱ: 얽히고설킨 그물' 전시장(CHAT6). ⓒ리춘펑
'동아시아 선회하기 시리즈 Ⅱ: 얽히고설킨 그물' 전시장(CHAT6). ⓒ리춘펑
'보편과 특수-아시아 목판 군상' 전시장. ⓒ리춘펑
'보편과 특수-아시아 목판 군상' 전시장. ⓒ리춘펑

최근 홍콩에서 아시아를 주제로 한 전시회가 2개 출현했다. CHAT6의 큐레이터 왕웨이웨이(王慰慰) 기획한 <동아시아 선회하기 시리즈 Ⅱ: 얽히고설킨 그물>과 인디펜던트 큐레이터 우쥔이(吳君儀)가 기획한 <보편과 특수-아시아 목판 군상>이 그것이다. 전자는 규모가 크고 비디오나 설치 위주인 반면, 후자는 사회성을 중시한 목판화의 실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두 전시회는 짝을 이뤄 아시아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와 우리의 상호 대화 가능성을 탐구하려 하고 있다.

두 전시회가 제기하는 아시아 의식은 홍콩 아트씬의 미래에 뭔가 영속적인 영향을 미칠까? 이 물음에 답하기는 아직 이른 것 같다. 다만 <동아시아를 다시 만든다>의 포럼에서 구마모토시 미술관 큐레이터인 사사키 겐타로 학예사가 일본·규슈의 '아시아 의식’이 흐려지는 상황을 지적하고 또 질의응답 자리에서 본 것처럼 동아시아 각지의 청중들이 이 문제에 대해 모종의 '거리감’을 갖고 있는 것 같아 이 또한 흥미로운 문제였다.

여기서 이른바 '아시아의식의 부재’라는 것은 실제로는 19세기 말의 일본이나 중국, 혹은 1990년대의 일본과 한국의 비판적 지식인에 의한 '동아시아'에 대한 치열한 논의를 참조하고 있다. 이 시기, 대만의 지식인도 적지 않은 공헌을 해, 예를 들면 천관싱(陳光興) 교수가 '방법으로서의 아시아’(2006년)를 제창해, 오늘날까지 널리 인용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신냉전'의 영향과 맞물려 동아시아의 관계가 긴박해지면서 각지의 '경계의식'이 강해지고 수평적인 '아시아의식'이 약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홍콩의 경우 아시아의식의 부재에는 독자적인 맥락이 있다. 홍콩은 '아시아의 국제도시’를 표방해, 최근에는 많은 문화·경제 인프라가 '아시아’와의 연계를 목표로 하는 새로운 움직임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대만, 일본, 한국과 비교하면 홍콩의 지식인층에서는 아시아의식은 별로 논의되지 않고 있으며, 그것은 이 말이 도시 생활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과 분명히 비례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왜 지금 아시아를 말할 필요가 있는가? 아시아에 링크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혹은 오늘날 세계화의 맥락에서 '아시아'와 '유럽'은 어떤 관계인가? 이상의 질문은 홍콩에 있어서의 '아시아 의식’의 문화적·정치적 의미에 관한 것이지만, 내가 보기엔 아직 이 논의는 발전단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문제는 아시아의식의 부재가 한편으로 문화지리적인 연대감의 문제인 동시에 어느 정도까지 역사 감각(부재)의 문제라는 점이다. 이 말이 일정한 역사적 연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만약 그 역사적 발전의 궤적에서 분리되면 비판적인 논의를 전개하기 어려워진다. 이 역사 감각은 바로 홍콩 문화의 결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시아라는 말이 빈번히 홍콩의 일상생활에서 등장해도 사람들은 이 개념에 숨겨진 의미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령 아시아라는 단어는 원래 인위적인 인식 단위였고, 그 기원은 고대 그리스인 동방이라는 기술에서 유래했으며, 16세기 말에야 이탈리아 선교사 마테오 리치에 의해 처음으로 중국어로 번역됐다. 이 개념은 사실 모종의 '서양 중심'인 시각을 내포하고 있으며, 마치 유라시아 대륙 사이에 한 줄기 '상상의 경계'가 있어 경계 밖의 다른 문명들이 점차 유럽인에 의해 '타자'로 간주되어 서로 구별되게 된 것이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고전 <오리엔탈리즘>(1978년)에서는 이 타자라는 상상력이 얼마나 유럽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자신들의 우월성을 강화했는지를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홍콩에서는 아시아를 이런 비판적 맥락에서 논하는 일이 별로 없다.

반면 19세기 이전에 아시아라는 개념은 별로 보급되지 않았다. 그 근원은 사실 식민지주의와 자본주의의 영향과 결부된 근대적 발명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아시아 여러 국민이 정치적 경제적으로 결속하여 서양에 대항하고 독자적인 발전 노선을 확립하려는 범아시아주의가 메이지 유신 후의 일본에서 제창되었다. 이 사상은 중국과 한국의 지식인과 혁명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후에 일본 전쟁의 빌미가 된 아시아주의의 여러 변주에도 불구하고 당초 이 사상은 이상주의의 관점에서 민족을 넘어 국경을 넘어 약자가 단결하여 억압과 싸우려는 진보적인 상상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그 후 개발의 실패를 제외하면, 이번에는 그것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실 오늘날 국민국가 간의 모순·적대관계를 어떻게 해체하는가에 대해 일정한 참고가 될 만한 가치를 지닌 것이었다.

그러나, '아시아의식의 부재’의 문제로 돌아가면, 상술한 바와 같은 지역간·구역간 연동의 시점은, 실은 홍콩 주류의 역사 서술에서는 그다지 일반적이지 않고, 오히려 경시되고 있는 측면의 하나이다. 통상 로컬 히스토리의 기술은 사회 내부에서 출발하는 선적인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 한층 더 '안쪽에서 바깥쪽으로’라고 성장해 가는 영향을 지적한다. 반면 또 다른 틀은 서로 다른 지역 간 상호 참조, 즉 안과 밖의 비교라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후자는 지역 고유의 궤적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보다 넓은 지역의 문맥에 초점을 맞추어 지역 간의 상호작용과 상호접속을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홍콩의 학자 로콰이처웅(羅貴祥) 교수가 "홍콩에서의 '아시아'를 상상하고 기억하는 것의 목적은 이른바 국사의 완전성이라는 것을 해체하고 독자적인 인식방법을 확립하는 데 있어 (중략) 변화를 가져오는 순간과 가능성을 재발견함으로써 기존의 가치체계를 밝히고 자기 자신의 인지방법을 확립하는 것이다"(2014)라고 말한 것은 이 때문이다.


#리춘펑

리춘펑(李俊峰, LEE Chun-Fung)은 홍콩에 거주하는 예술가이자 큐레이터이다. 그의 작품들은 공간적, 역사적, 정치적 맥락에서 공동의 관계를 탐구한다. 그는 <Can We Live Together?>(2014) 등과 같은 큐레이터 프로젝트를 비롯해 <Cycling to the Square>(2010~), <Pitt Street Riot>(2014) 등의 프로젝트에서 참여적인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 게다가 그는 홍콩의 풀뿌리 동네인 야우마테이(Yau Ma Tei)에 기반을 둔 커뮤니티-예술 공간인 우퍼텐(Woofer Ten, 2009-2015)을 포함한 여러 예술 이니셔티브의 공동 창립자였다. 한편, 그는 동아시아 멀티미팅(Multiple Meeting, 2012-2013)과 <Art/Activist-in-Residence>(2011-2015)와 같은 프로젝트와 함께 지역 간 예술/활동가 교류에 힘쓰고 있다. 


亞洲意識的缺席問題
李俊峰

最近香港不約而同出現兩個以「亞洲」為主題的展覽活動,分別是由CHAT六廠策展人王慰慰策劃的「再紡東亞:邊織邊拆的網」與及由獨立策展人吳君儀策劃的「普遍與特殊:亞洲木刻群像」。前者規模較大,媒介以錄象、裝置為主,後者則聚焦在社會面向的木刻實踐。無獨有隅,兩展覽都嘗試探討「何謂亞洲?」的問題,並提問我們之間互聯對話的可能性。

對於兩展覽所提出的「亞洲意識」未來會構成何種影響?要回答這問題似乎仍言之尚早。不過,正如在「再紡東亞」的研討會上,熊本市現代美術館策展人佐佐木玄太郎指出「亞洲意識」在日本/九州漸漸失落的語境,又或是在問答環場談到,東亞各地的觀眾似乎對這問題存在不同程度的「距離感」,這又倒是個頗有意思的問題。

這裡所謂「亞洲意識的缺席」,其實是對照於19世紀末、20世紀初「亞洲意識」的高峰期;又是或在1990年代初至2000年代,日本和韓國的批判知識分子就「東亞」作出的熱熾討論。在這時期,台灣的知識分子也曾作出不少貢獻,比如陳光興教授提出的「亞洲作為方法」,一直獲廣泛引用至今。然而,隨近年東亞地區關係變得愈來愈緊張,加上「新冷戰」的影響,各地的「邊界意識」正在增強,而橫向的「亞洲意識」似乎落於弱勢。

至於香港,「亞洲意識的缺席」又有它獨特的語境。儘管香港自許為「亞洲國際都會」(Asia's World City),近年不少新落成的文化/經濟建設亦以聯繫「亞洲」為目標,但其實相對於台日韓,「亞洲意識」在香港知識界的討論並不算多,這與它在城市出現的頻繁度亦顯然不成正比。比如,我們今天為何需要討論「亞洲」?連結「亞洲」的意義為何?甚至是,在今天全球化的語境下,「亞洲」之於「西方」,究竟是一種怎樣的關係?以上問題關乎香港「亞洲意識」的文化政治意涵,但個人認為其討論仍尚待發展。

另一問題是,「亞洲意識的缺席」一方面是文化地理層面的「連帶感」問題,同時某程度上亦是一個「歷史感」 (缺席)的問題。因為「亞洲意識」具有一定的歷史延續性,若這概念脫離其歷史發展的軌跡,人們很難開展其批判討論。然而,「歷史感」這回事其實正是香港文化的短板。或正因如此,雖然「亞洲」這詞即使頻繁地在香港的日常生活空間中出現,人們卻不一太關注這概念所隱藏的含意。

例如,「亞洲」(Asia) 這詞本來就是一個人為的認知單位,其源頭本來自古希臘人對「東方」的描述,到十六世紀末才由意大利傳教士利瑪竇(Matteo Ricci)翻譯到漢語。這概念其實內含某種「西方中心」的視角,仿佛歐亞大陸之間存在一道「想像的邊界」,而邊界外的紛異文明後來漸漸被歐洲人視作為區分你我的「他者」。在愛德華・薩依德的經典著作《東方主義》(1978)中,他便詳細闡述這種「他者想像」如何塑造歐洲人的身分認同,進而強化自身的優越性。而在香港,「亞洲」的討論不常放在這一批判語境。

另一方面,在19世紀之前,「亞洲」這概念其實不甚流行,它一定程度上是人們面對西方殖民主義的威脅及其現代化的工業能力下的一種回應。在這脈絡下,明治維新後期的日本漸發展出「亞洲主義」(又稱泛亞主義、亞細亞主義,Pan-Asianism)的主張,提出以亞洲內部的團結來抵禦西方,建立自身的發展道路。這想法後來亦影響到中國和韓國的知識分子和革命家。在此,儘管「亞洲主義」後來出現連串變奏,及至成了日本發動戰爭的借口 [註一],但從理想主義的角度,這方案最初包含跨民族、跨邊界,反霸權,反壓迫的政治想像,這其實對今天如何拆解民族國家(nation-state)之間的矛盾/敵對關係具有一定參考價值。

然而,回到「亞洲意識的缺席」問題,以上談及的跨地域/區域聯動的視角,其實正正是香港主流的歷史敘述中,較不常見或較受忽略的面向;傳統的本地歷史的書寫多是從社會內部出發的線性描述,再「從內到外」指出其延伸影響。相對而言,另一種視角則聚焦在區域之間的互相參照,是一種「內外比對」的敘事框架;後者的關注點不在於本地的獨特軌跡,而是一個較宏觀的區域脈絡,以探討各地域之間的互動互聯為目標;而這或就如本地學者羅貴祥教授所言,「香港的『亞洲』想像與記憶的目的,恰巧是要將所謂國族歷史的完整性拆解 [...] 藉以重覓那些帶來改變的時刻與可能,來釐清既有的價值系統,建立本身的認知方法。」(2014)。

圖1:「再紡東亞:邊織邊拆的網」展覽現場。(CHAT) 
IMG 1: Exhibition View of “Spinning East Asia Series II: A Net (Dis)entangled”. (CHAT)

圖2:「普遍與特殊:亞洲木刻群像」展覽現場
IMG 2: Exhibition View of “Universality & Particularity - Woodcut Portraits in Asia”

註一:「亞洲主義」在往後的歷史發展中遭遇連番變奏,並演變成以日本為中心的殖民統治與侵略戰爭。另外,戰後由美蘇兩國主導下的「冷戰」佈局與邊界意識等,都讓「亞洲意識」變成更複雜的問題。由於編幅有限,且留日後有機會再與大家詳談。


「アジア」意識の不在
リー・チュンフォン

最近、香港で「アジア」をテーマとする展覧会が2つ出現した。CHAT 6のキュレーター・王慰慰が企画した「東アジアを紡ぎ直すⅡ」と、インディペンデント・キュレーターの吳君儀が企画した「普遍と特殊―アジア木版群像」だ。前者は規模が大きく、ビデオやインスタレーションが中心であるのに対し、後者は社会性を重視した木版画の実践に焦点を当てている。両展覧会は対を成して「アジアとは何か」という問題や、私たち相互の対話の可能性を探究しようとしている。

2つの展覧会が提起する「アジア」意識は、香港のアートシーンの将来に何か永続的な影響を与えるだろうか?この問いに答えるのはまだ早いようだ。ただ、「東アジアを紡ぎ直す」展のフォーラムで、熊本市美術館キュレーターの佐佐木玄太郎学芸員が、日本/九州における「アジア意識」の薄れゆく状況を指摘し、また質疑応答の場で見たように、東アジア各地の聴衆がこの問題に対してある種の「距離感」を持っているようで、これもまた興味深い問題だった。

ここで、いわゆる「アジア意識の不在」というのは、実際には19世紀末の日本や中国、あるいは1990年代の日本と韓国の批判的知識人による「東アジア」についての白熱した議論を参照している。この時期、台湾の知識人も少なからぬ貢献をし、たとえば陳光興教授が「方法としてのアジア」(2006年)を提唱し、今日まで広く引用されている。しかし近年、「新冷戦」の影響と相まって東アジアの関係が緊迫化するにつれ、各地の「境界意識」が強まり、水平的な「アジア意識」が弱体化しているように思われる。

香港の場合、「アジア意識の不在」には独自の文脈がある。香港は「アジアの国際都市」を標榜し、近年は多くの文化・経済インフラが「アジア」との連繋を目指す新しい動きが少なくない。にもかかわらず、台湾、日本、韓国と比較すると、香港の知識人層では「アジア意識」はあまり議論されておらず、それはこの言葉が都市の生活で頻繁に登場することと明らかに比例していない。たとえば、なぜ今「アジア」を語る必要があるのか?「アジア」にリンクするとはどういうことか?あるいは、今日のグローバル化の文脈で、「アジア」と「欧米」はどういう関係なのか? 以上の問いは、香港における「アジア意識」の文化的・政治的意味合いに関わるものだが、私自身は、まだまだ議論が発展途上であると考えている。

もう一つの問題は、「アジア意識の不在」が一方で文化地理的な「連帯感」の問題であると同時に、ある程度まで「歴史感覚」(不在)の問題であることだ。この言葉が一定の歴史的連続性を持っているがゆえに、もしその歴史的発展の軌跡から切り離されると、批判的な議論を展開することが難しくなる。この歴史感覚はまさに香港文化の欠点だ。それゆえに、「アジア」という言葉が頻繁に香港の日常生活で登場しても、人々はこの概念に隠された意味にあまり注意を払っていないのかもしれない。

たとえば「アジア」という言葉はそもそも人為的な認識単位であり、その起源は古代ギリシャ人「東方」という記述に由来し、16世紀末にようやくイタリア人宣教師のマテオ・リッチによって初めて中国語に翻訳された。この概念は実はある種の「西洋中心」な視覚を内包しており、あたかもユーラシア大陸の間に一条の「想像の境界」があり、境界外の異なる文明が次第にヨーロッパ人によって「他者」とみなされ、互いに区別されるようになったのだ。エドワード・サイードの古典『オリエンタリズム』(1978年)では、この「他者」という想像力がいかにヨーロッパのアイデンティティを形成し、自分たちの優越性を強化したかを詳述している。香港では「アジア」をこのような批判的文脈で論じることはあまりない。

一方、19世紀以前に「アジア」という概念はあまり普及しなかった。その根源は、実は植民地主義や資本主義の影響と結びついた、近代的な発明である。このような流れの中で,そこで、アジア諸国民が政治的・経済的に結束して西洋に対抗し、独自の発展路線を確立しようとする「汎アジア主義」が明治維新後の日本で提唱された。この思想は中国と韓国の知識人や革命家に影響を与えた。後に日本の戦争の口実となった「アジア主義」[注1]のさまざまな変奏にもかかわらず、当初この思想は、理想主義の観点から、民族を越えて、国境を越えて、弱者が団結して抑圧と戦おうとする進歩的な想像力であったと言える(その後の発展における敗北を除いては、今回はあまり触れない)。それは実際、今日の国民国家間の矛盾/敵対関系をいかに解体するかについて一定の参考となる価値を持つものだった。

しかし、「アジア意識の不在」の問題に戻ると、上述したような地域間/区域間連動の視点は、実は香港主流の歴史叙述ではあまり一般的でなく、むしろ軽視されている側面の一つである。通常、ローカル・ヒストリーの記述は、社会の内部から出発する線的なものである。これに対して、さらに「内側から外側へ」と伸びていく影響を指摘する。これに対してもう一つの枠組みは、異なる地域間の相互参照、つまり「内と外の比較」という物語に焦点を当てる。後者は、地域固有の軌跡に着目するのでなく、同時により広い地域の文脈に焦点を当て、地域間の相互作用と相互接続を探求することを目的とする。香港の学者、羅貴祥教授が「香港における『アジア』を想像し記憶することの目的は、いわゆる国史の完全性というものを解体して、独自の認識方法を確立することにあり(中略)変化をもたらす瞬間と可能性を再発見することで,既存の価値体系を明らかにし,自分自身の認知方法を確立すこととなる」(2014)と述べているのは、このためである。

図1:「東アジアを紡ぎ直すⅡ: 網を張り、分解する」展覧会場(CHAT) 
図2:「普遍と特殊―アジア木版群像」展覧会場


The Absence of Asia Consciousness
LEE Chun-Fung

Recently, two art events with the notion of "Asia" have appeared in Hong Kong, which are "Spinning East Asia Series II: A Net (Dis)entangled" and  "Universality & Particularity - Woodcut Portraits in Asia". The former is larger in scale, and the media is mainly video and installation, while the latter focuses on woodcut printing that engages social reality. Both exhibitions try to explore the question of  “what is Asia” and the possibility of communicating with each other.

Will the notion of "Asia" raised by these two exhibitions have a lasting impact on the local art scene? It seems too early to answer this question. However, as at the exhibition forum of "Spinning East Asia", Sasaki Gentaro, the curator of Kumamoto Art Museum, pointed out the fading situation of "Asia Consciousness" in Japan/Kyushu, and we also briefly discussed the issues that our audience seems to be indifference to this issue, which is quite an interesting question to me.

Here, the so-called "Absence of Asia Consciousness" is actually a relative issue in reference to the late 19th century in Japan and China, or in the 1990s when Korean critical intellectuals raised the discussions of "East Asia". During the same period in Taiwan, Prof. Chen Kuan-hsing 陳光興 proposed "Asia as Method" (2006), which has been widely cited today. However, with the tension between Mainland China and Taiwan in recent years, the discussion of "Asia" is becoming marginalized.

As for Hong Kong, the "Absence of Asia Consciousness" has its own unique context. Although Hong Kong has claimed to be "Asia's World City", and many new cultural/economic infrastructure have also aimed to connect this city with "Asia". While, compared with Japan and South Korea, critical discussion of  "Asia" is obviously not proportional to the frequent appearance of this term. For example, What is the significance of linking "Asia"? With the context of globalization today, what would be the (political) relationship between "Asia" and "West"? These questions are about why we need to discuss "Asia" today, but rarely discussed.

Another problem is that , the "Absence of Asia Consciousness"  is in fact also an absence of the "sense of connectivity", which in turn is a matter of “historical sense”. If this term is separated from its historical context, it is difficult for people to trace or develop its critical views. While, the lack of historical sense is precisely the shortcoming of Hong Kong, that may be the reason why the word "Asia" appears frequently, but people are not really interested in its cultural-political side.

For example, the word "Asia" was actually embraced with a "Western-centric" perspective, as it was originally invented by the ancient Greeks to describe “The East”. This concept set up an imaginary border between Eurasia, and the different civilizations outside the border were gradually regarded as "the other". For example, in Edward Said's classic book Orientalism (1978), he elaborates how this imaginary of "the other" shapes European identities and thus reinforces their own superiority.

On the other hand, before Western civilization came to Asia, the concept of "Asia" was not very popular actually. Its root is in fact connected with the influence of colonialism and capitalism, it is a modern invention. In this context, "Pan-Asianism" which aims at creating a political and economic unity among Asian peoples to resist the West and establish its own development path is brought out in Japan. Such ideas later influenced intellectuals and politicians in China and Korea. Here, the early period of "Pan-Asianism" can be described as a progressive imagination that tried to unite the weak to fight against oppression(Except for the defeats in its development afterward, yet I don't talk much about it here this time). 

However, returning to the issue of "Absence of Asian Consciousness", in fact the above-mentioned framework of “Cross-border Perspective” is not really common in the traditional historical narratives in Hong Kong. Usually, the writing of local history starts from the interior of society with its development linearly. Relatively speaking, an alternative framework is the cross-reference between different regions, which does not focus on the unique trajectory of locality, but at the same time links it to a larger context to study how things are inter-connected. This is why local scholar Prof. Lo Kwai Cheung 羅貴祥 said, “The purpose of imaginating Hong Kong's "Asia" happens to be to dismantle the integrity of the so-called national history, in order to rediscover the moments and possibilities that bring about change, and to establish its own cognitive method”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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