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89) 아기 어머니 품삯은 닷되, 업저지 품삯은 한 말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편집자 글]


* 어멍 : 어머니
* 쿰 : 품삯
* 애기업게 : 업저지

1992년 여름에 촬영한 군산오름 '아기업게돌' 모습.  아기를 등에 업고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여 ‘아기업게돌’이라고 한다. ⓒ고광민, 제주학아카이브.
1992년 여름에 촬영한 군산오름 '아기업게돌' 모습.  아기를 등에 업고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여 ‘아기업게돌’이라고 한다. ⓒ고광민, 제주학아카이브.

조선 시대부터 아기를 보는 업저지라는 일거리가 있었다. 요즘 아기돌보미에 해당한다. 농사일로 바쁠 때 남의 아기를 돌봐주던 아기업게를 말한다. 여덟 살에서 열 살에 이르는 어린 계집애들이 이 일을 했다. 농사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 아직 어려 농사일을 못하고 원하는 집에 가 아기를 돌봐주는 일을 했던 것이다.

아기 어멍은 닷 되, 업저지는 한 말이라 한 것은 아기 어머니에게는 품삯으로 닷 되를 주고, 업저지에게는 한 말을 주었다는 것인데, 재미있는 셈법(계산 방식)이었다. 

같은 일을 해도 아기 엄마는 아기에게 몇 차례 젖을 먹여야 하므로 그만큼 일하는 양이 적어지니 품삯으로 쌀이 닷 되인데, 종일 아기를 들춰 안고 업어 어르는 업저지에게는 품삯으로 한 말을 준다는 얘기다. 닷 되는 반 말이니, 아기를 돌보는 업저지가 아기 어머니보다 품삯을 곱절이나 더 받았던 것이다.

일을 수행하는 성과의 많고 적음에 따라 품삯을 달리했다는 것은 얼마나 일에 종사하느냐 하는 정도나 분야를 중시했다는 말이다. 경우에 합당한 방식이었던 같다. 

오늘날 기업 등에서도 적용되는 방식이다. 종사하는 일이나 시스템이 다르고 옛날과는 그 규모가 비교가 안되지만,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느냐 그리고 그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드냐는 난이도에 따라 급료가 달리 책정되게 마련이다.

선인들이 그런 이치를 이미 꿰찼다. 애기 어멍은 어른인데도 어린 아이인 업저지만큼 품삯을 받지 못했다. 한 말과 닷 되의 거리다.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