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250) 직업으로서의 학문·정치, 막스 베버 저, 김진욱·김승일 역, 범우사, 2002

사진=알라딘.
사진=알라딘.

‘직업으로서의 학문·정치’는 유명한 베버의 글이 합본되어 있으니 이 책이야말로 일석이조다. 그것도 5천원에. 물론 책을 사는 데 돈을 아끼지 말자는 게 내 지론이긴 하다.

이번 북세통 원고로 어떤 책에 대해 쓸까 고민하다가 연구실 책장에서 이 책을 빼들었다. 북세통 원고를 쓸 때 고른 책을 꼭 일독하는데, 책 부피가 작아 일단 합격이다. 그렇다고 책 내용이 가벼운 건 아니니,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19)는 경제, 종교, 사회 등 여러 분야를 다룬 사상가여서 그 전모를 알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은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베버 사상의 일면을 알 뿐이다. 베버의 다른 책에 비하면 이 책은 비교적 읽기가 수월하다. 

‘직업으로서의 학문’과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베버 인생의 마지막 시기에 작성된 강연문이다. 베버 생애를 알고 싶다면 ‘막스 베버, 이 사람을 보라’(김덕영 저)를 추천한다. 필자가 읽었던 여러 평전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책에 속한다. 

직업으로서의 학문과 정치 외에도 ‘직업으로서의 ○○’에 해당하는 책들이 있다. 예컨대 작가(소설가) 지망생이라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권한다. 

직업으로서의 학문

‘직업으로서의 학문’은 필자에게 매우 편하게 읽힌다. 반면에 매우 무겁게 다가온다. 학문이 천직인 교수와 학자, 학자 지망생들에게 하는 말이지만, 공부를 진중하게 생각하는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내용이 꽤 있다. (다음 내용은 ‘직업으로서의 학문’ 본문 내용을 토대로 작성된 것이다.)

첫째, 학자는 자신의 전문분야에 정열적으로 전념해야 한다. 베버는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업적을 남기기 위해서는 인접한 영역의 세력권이 침범하는 일에 일종의 체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스스로 눈가리개를 부착해야 한다. 오늘날 가치가 있고 완벽한 영역에 이르는 업적은 모두 전문가적인 차원에서 성취된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학자에게는 ‘영감’이 필요하다. 착상은 탐구를 게을리하거나 뭔가 열중하고 있는 문제를 갖고 있지 않을 때는 생기지 않는다. 물론 좋은 착상은 느슨한 때 생긴다. 책상 앞이 아니라 소파에 앉아 있을 때나 산책할 때 생긴다. 뭔가 골몰하게 집중하는 문제를 갖고 있으면서도 몸이 어느 정도 이완되는 순간에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떠오른다.   

셋째, 학자는 학문이라는 일을 통해 개성을 발휘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전문가가 되는 것이고 새로운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 스스로를 희생시키며 자신의 과제에 전력을 기울이는 사람이야말로 그 ‘일’의 가치를 증대시키고 자신의 이름을 높이게 된다.

베버는 학문의 자세/학자의 자질 외에도, 독일과 미국의 대학 제도 비교, 학문의 성격에 따라 전제에 대한 관계가 크게 달라진다는 점, 신학의 학문성 등에 대해 언급하나 여기서는 이를 다루지 않겠다. 

직업으로서의 정치

우선 다치바나 다카시의 추천글을 소개한다.

“이 책을 착실하게 읽어본 적 있는 사람과 읽어보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엄청나게 큽니다. 특히 정치인의 경우 이 책을 착실하게 읽은 사람이라면 언어를 구사하는 방식이 틀림없이 아예 다릅니다. 지식인인가 아닌가의 갈림길이 된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 문학동네, 2016, 427면)

필자가 다루고 싶은 부분은 ‘직업으로서의 정치’ 뒷부분이다. 베버는 정치가에 있어서 정열, 책임감, 판단력의 세 가지 자질이 특히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정열은 ‘일’을 향한 봉사로서 ‘책임성’과 결합하고, 이것이 행위의 결정적인 규범을 만드는 표준이 되었을 때 비로소 정치가를 만들어낸다. 또한 베버는 정신을 집중하여 냉정함을 잃지 않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능력인 ‘판단력’을 정치가의 결정적인 심리적 자질로 꼽았다. (‘직업으로서의 정치’ 본문 내용을 토대로 작성된 것이다.)

베버는 정치를 다음과 같이 정의 내렸다. “정치라는 것은 정열과 판단력 두 가지를 구사하면서, 단단한 판자에 힘을 모아 서서히 구멍을 뚫어가는 작업입니다.”

책 마지막 부분에 베버는 ‘심정윤리와 책임윤리’에 대해 언급한다. ‘심정윤리’는 행위자가 선한 의도를 가지고 행위했다면 그 결과를 묻지 않는 윤리이다. 반면에 ‘책임윤리’는 행위의 결과를 가지고 책임을 판단하는 윤리를 말한다. 윤리학의 분류에 따르면, ‘심정윤리’는 의무론(deontology)에, ‘책임윤리’는 결과론(consequentialism)에 해당한다. 

베버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책임윤리에 따라 행동하는 성숙한 인간이 “나로서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 나는 여기에 머물겠다”라고 말한다면, 측량하기 어려운 감동을 받는다고 말한다. 이때에야 비로소 타협하기 불가능한 책임윤리와 심정윤리가 서로 도와 ‘천직으로서의 정치’를 가질 수 있는 참된 인간을 만들어낸다고 봤다. 

이 외에도,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 앞부분에서 전통적 지배/카리스마적 지배/‘합법성’에 의한 지배의 구별, 비당파적 행정의 원칙, 직업정치가의 한 유형으로서 저널리스트 등을 다루었다. 

나가며 

우리는 ‘직업으로서의 학문’과 ‘직업으로서의 정치’가 요구하는 자질을 모두 갖춘 사람을 드물게 본다. 하지만 많은 경우는 그렇지 않다. ‘학문의 기술’과 ‘정치의 기술’은 닮은 듯 닮지 않았다. 일부 학자들은 정치권에서도 잘 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하지만 알고 보면 너무 다른 세상이다. 

베버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 사람을 훌륭한 학자나 대학 교수가 되도록 만드는 성질은 그를 실제 생활 속의, 특히 정치상의 지도자가 되도록 만드는 성질과는 다른 것입니다. 나아가 이 지도자로서의 성질을 갖느냐의 여부는 전적으로 우연에 의한 것입니다.”

‘직업으로서의 학문’ 영역에서는 열정적으로 학문에 매진하여 개성을 발휘하는 학자를, ‘직업으로서의 정치’ 영역에서는 정열, 책임감, 판단력을 발휘하는 정치가를 이 시대는 요구한다.

한 영역에서 요구되는 자질을 제대로 갖추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다. 다행히 학자에게 정치인의 자질을, 정치인에게 학자의 자질을 요청하지 않는다. 학자에겐 학자의 자질을, 정치인에겐 정치인의 자질을 요청할 뿐이다. 


# 고봉진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고려대 법학과 졸업,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 법학박사.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철학/법사회학 전공).

블로그: blog.naver.com/gojuraph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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