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251) 김지하, 우주생명학, 작가, 2018. 

사진=알라딘.
사진=알라딘.

2022년 5월 8일, 김지하 시인이 타계했다. 그로부터 49일 후, <김지하 시인 추모 문화제>(2022.6.25. 서울 천도교 대교당)가 열렸다. 코로나19 여파로 경황이 없어 고인의 장례를 가족장으로 치른 후 49재를 맞아 김지하 지인들이 만든 추모의 자리였다. 고인의 시에서 나온 노래들이 울려퍼졌고, 그의 말을 씨앗 삼은 춤과 미술이 함께 했다. 김영동, 임진택, 김봉준, 문진오, 이청산, 김평수 등의 예술가들이 나섰다. 유홍준, 황석영, 김용옥, 염무웅, 김형수, 최열, 채희완, 이부영 등이 예술과 철학, 미학, 생명운동 등에 걸친 고인의 너른 품을 다시 생각하는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나는 꼬박 다섯시간 동안 같은 자리에 앉아 김지하와 더불어 60년을 함께 해온 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고인을 추모하는 이들의 마음은 예상보다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새삼스러운 일이었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에 맞선 저항예술가의 상징 김지하. 한국사회는 그를 서서히 지워나갔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1970년대 독재에 대한 저항정신 이상의 것이었다. 불교와 동학을 섭렵했으며 천부경과 정역 등 이 땅에 발딛고 살아온 사람들이 쌓아온 천문과 인문에 심취하여 생명사상을 정립해나간 김지하의 유산은 분단체제에 갇힌 한국사회에 진영논리를 넘어서는 깊은 울림을 준다. 

김지하는 1941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중학교 시절 원주를 거쳐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했다. 시인으로 등단한 그는 <오적>, <타는 목마름으로> 등 자본과 권력을 비판하는 저항시를 발표하여 옥고를 치른 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무기징역 감형으로 오랜 감옥생활을 했다. 1970년대 박정희 군사독재 체제에 저항한 그는 혹독한 수형 생활 이후 1980년대부터는 전통사상에 심취하여 생명사상을 다듬어갔으며 이에 기반한 문학작품과 저술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나 김지하는 시대와 불화했다. 1991년 분신정국에서 조선일보에 게재한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글로 민주화 운동 세력의 거센 비판을 받았고, 2012년 박근혜지지 선언으로 진보 진영과 결별했다. 이 두 사건으로 인하여 1970년대의 저항시인 김지하는 민주화운동의 상징에서 변절자로 낙인 찍혀 서서히 잊혀져갔다. 격변하는 한국사회의 정세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하지 못하고 때로는 정무감각 떨어지는 행보를 해왔다는 비판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예술가이자 사상가로서 김지하의 업적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특히 이 책 <우주생명학>은 방대한 사유의 세계를 자유분방하게 펼쳐낸 난해한 책이어서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김지하는 마지막 시집 <흰 그늘>과 함께 마지막 산문집으로 이 책 <우주생명학>을 탈고했다. 평생 글을 써온 이가 이 책을 마지막으로  76세(2017년 당시) 이후에는 그림만 그리겠다고 선언하면서의 일이었다. ‘1부. 궁궁 유리 화엄 대개벽: 시김새 / 2부. 우주생명학 1: 서다림, 서다림으로부터 / 3부. 우주생명학 2: 풍류역 / 4부. 우주생명학 3: 화엄경과 통일의 길’. 목차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가 말하는 우주생명학은 자연과학에서 이야기하는 우주와 생명이 아니다. 그는 동학과 정역(正易), 불교와 풍류사상에서 밝히는 자연과 인간, 하늘과 땅, 산과 물,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가르침을 토대로 우주와 생명의 대서사를 풀어낸다. 그는 이 책 서문에 이렇게 밝혔다. 

“나는 최근 누군가를 나도 모르게 더듬어 찾고 있었다. / 누굴까? / 잃어버린 선생 수운(水雲)이시다. / 그런데 겨울 어느 날 선생님이 오셨다. / 그래서 이 책이 시작된다. / 모른다. / 나는 이 책이 이제부터의 이 나라와 / 세계의 길이라는 것, 그것뿐! / 그리고 짧은 '시김새'와 함께 / 나는 이제 어릴 적의 한(恨) 〈그림〉으로. / 그리고 저 산으로 돌아가는 것 / 그것뿐!”

이 책에는 김지하 특유의 사상, 특히 전통의 종교적 가르침을 미학적 혜안으로 재해석한 윱합적 사유가 담겨있다. 김지하는 20세기 전반에 식민지배를 거쳤으며, 20세기 후반부터 분단체제를 겪으면서도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한국의 향후 국가적 목표를 제시했다. 그는 남녀평등과 빈부격차 해소 등의 평등을 이루고, 통일과 동서 화합 등의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우리의 문화적 자산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을 필쳐 21세기의 새로운 문명을 열어내고자 했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주와 생명의 큰 변화 속에서 참다운 '선후천융합대개벽(先後天融合大開闢)'을 이루어야만 한다. 그것이 '궁궁 유리 화엄 대개벽'이다.”

시대와 불화했던 김지하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를 사유하고 성찰했다. 한국인들의 촛불 에너지를 이끌어낸 저변의 힘을 동학의 횃불에서 찾고자 했다. 월가점령 등으로 나타난 전지구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를 진단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기도 했다. 그의 사유와 실천은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동시대 속에서 살아있는 것이기를 원했다. 동시대의 시대정신을 여성의 리더십으로부터 찾고자 했던 그는 여성동학의 역사에 주목하여 ‘삼천 년을 짓밟혀 온 못난 백성들과 여인들의 역사’ <김지하의 수왕사>를 저술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강원도 남부 내륙의 산등성이와 골짜기와 바위와 물줄기에서 우주적 정신성을 찾아내려고 했다. 특히 동강산수문화에 주목한 김지하는 백두대간 허리의 동강을 중심으로 우주생명학을 펼쳐보였다. 

우주와 생명에 관한 그의 사유는 대체로 시공간을 초월하는 것인데, 풍류를 설파하는 대목에서는 매우 구체적으로 특정 장소를 지목했다. 치악산 자락 원주에 살았던 김지하는 한반도 중부를 종조선이라 불렀다. 그 중조선의 동쪽 내륙은 백두대간의 중심이다. 그 가운데, 오대산과 태백산의 산맥들과 그 산자락을 타고 흐르는 동강의 물줄기들에 주목했다. 그는 동해 바다와 백두대간, 그리고 동강의 산수문화를 ‘새 시대의 역(易)을 뜻하는 우주생명학 그 자체’라고 말했다. 그는 강원도 남부 내륙의 산과 골짜기, 흙과 바위, 산맥과 물줄기의 흐름을 따라잡으며 중조선의 풍류로 우주와 생명 이야기를 펼친 것이다. 

이 책 <우주생명학>은 21세기 정신성의 씨앗으로서 하늘과 땅과 사람과 목숨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는 그것을 종교적 영성을 넘어서는 21세기 정신성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을만한 씨앗으로 삼기로 했다.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참혹한 고통을 감내하며 유신독재와 1:1로 맞섰던 김지하는 이후 현실정치와 관련한 몇 가지 필화사건 때문에 변절자로 낙인찍혀 퇴색되어 갔지만, 그가 끌어안았던 우주와 생명의 정신적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굿판이나 박근혜 지지 등의 이유로 그의 업적을 지우기에는 그의 빛이 너무 밝다. 유미적 형식주의나 비판적 리얼리즘 수준에 머물렀던 20세기 후반 한국의 예술을 하늘과 땅과 사람과 목숨을 끌어안는 삶 속의 예술로 바꾸고자 했던 김지하의 너른 품을 다시 생각한다.


 # 김준기

홍익대학교 예술학 학사, 석사, 미술학 박사. 한국큐레이터협회 회장, 미술평론가.

전(前) 부산비엔날레 전시기획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제주도립미술관 관장,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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