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252) 옌롄커, ‘사서(四書)’, 문현선 옮김, 자음과 모음, 2012.

사진=알라딘.
사진=알라딘.

1.
아시아 문학이 일궈내고 있는 성취를 얘기할 때 중국 작가 옌롄커(閻連科, 1958~)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의 현실에 대한 예각적이면서 웅숭깊은 비판적 성찰을 보이는 옌롄커의 문학 대부분이 중국 내부에서 금서가 되었듯이, 그는 문학이 수행해야 할 정치윤리적 몫을 그가 놓여 있는 구체적 현실 속에서 담대히 실현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의 문학에서 미적 감응력이 결핍되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우리에게 내면화된 서구의 소설과 다른 차원에서 소설적 진실을 탐구한다. 

2.
세계의 유수 문학상 수상 이력과 함께 올해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옌롄커의 문학은 한국 독서계에 소개된 중국문학 중 비교적 널리 번역돼 있다. 그중 장편소설 ‘사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 소설 역시 옌롄커의 다른 소설이 그랬던 것처럼 중국 내에서 출판이 쉽지 않았던데 반해 한국을 비롯한 20여 개 나라에서는 번역돼 있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그가 “‘중국식 문학’에 위배되는 문장이 ‘사서’에 상당히 많이 들어 있”(7쪽)다고 하듯, ‘사서’는 소설의 양식적 측면뿐만 아니라 주제적 측면에 이르기까지 문제적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우선, 양식적 측면에서 ‘사서’는 모두 16장으로 이뤄져 있는데, 각 장은 이 소설의 제목이 단적으로 나타내듯, 네 종류의 책——‘하늘의 아이’, ‘옛길’, ‘죄인록’, ‘시시포스의 신화’ 등으로 구성돼 있다. 그러니까 ‘사서’는 그 내부에 네 종류의 글쓰기를 포함하는바, 이 네 종류의 글쓰기가 각기 제 몫을 수행하는 것은 물론, 그들 사이의 관계를 맺으면서 ‘사서’의 서사를 구축한다. 그렇다면, 옌롄커가 이런 서사의 양식을 주도 면밀히 구사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런 서사의 양식은 그동안 우리에게 낯익은 액자 소설의 양식, 즉 액자의 틀처럼 큰 틀의 서사가 따로 있고, 액자의 틀 내부에 내용물이 있듯 큰 틀의 서사 안쪽에서 진행되는 또 다른 서사로 구성돼 있는 그런 소설의 양식을 취하지 않는다. 그보다 네 종류의 서로 다른 글쓰기들은 각기 개별적 독립성을 갖되 서로 연관을 이루는 그리하여 ‘작가’와 옌롄커가 치열히 탐구하는 소설적 진실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다시 묻자. 옌롄커가 ‘사서’에서 탐구하는 소설적 진실의 진경(眞境)은 어떤 것일까.

옌롄커는 그의 산문집 ‘침묵과 한숨’에서 의미심장한 언급을 한다. “내가 보는 것은 깊은 밤 숲속의 어둠과 공포”인데, “나는 어둠이 시간과 장소이자 사건일 뿐만 아니라 물이자 공기이며 사람이라는 것을, 인성이자 사람들의 가장 일상적인 존재요, 호흡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 언급은 옌롄커의 문학 세계의 밑자리에 흐르고 있는 (무)의식을 가리킨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둠’에 대한 그의 사유는 그의 문학적 생애와 무관할 수 없는 것이며, 이는 또한 작가를 에워싸고 있는 존재론적 바탕과도 무관할 수 없는 것이다. 작가가 살아내고 있는 구체적 삶의 현실뿐만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원적 그 무엇을 함께 아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 같은 사유는 ‘사서’를 이해할 때 매우 요긴한 참조점으로 작용한다. 

3.
‘사서’의 중심 서사를 정리해보면 이렇다. 중국 대륙 중원의 황허 남쪽 “모래땅과 들풀, 아득한 황무지, 그리고 소수의 촌락과 사람들만이 남”아, 예로부터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까지 “사형수부터 노동 교화범까지 다양한 범죄자들”(44쪽)의 유배지인 곳에, 교화가 필요한 죄인들이 집단 노역을 한다. 죄인들 대부분은 지식‑교양인으로, 작품에서는 구체적 해당 시기를 밝히고 있지 않지만, 강철과 밀과 옥수수 등의 생산량 증대를 중국의 모든 행정 기관들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점을 고려해볼 때, 무엇보다 소설 속에 뚜렷이 표현하고 있듯,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 영국과 미국을 뛰어넘자’(147쪽)란 구절을 통해 추정해본다면, 1950년대 후반 중국의 근대화 운동에 박차를 가하면서 벌인 ‘대약진 운동’ 시기를 작가가 다루고 있다 해도 틀리지 않을 터이다.

작중에서 이 유배지는 ‘99구’로 호명되는데, 이곳은 천혜의 유배지로 교화범들은 쉽게 탈출할 수 없을뿐더러 ‘99구’의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관리 감독자 ‘아이’의 감시 시스템—적절한 보상과 징벌로 교화범들의 상호 감시가 철저히 작동하도록 함으로써 교화범들은 국가의 생산량 증대의 목적 달성을 위해 자신들의 한계 이상의 능력을 강요받는다. 이를 위해 ‘아이’는 교화범들이 소유한 책들 중 국가가 지정한 반동서적을 압수하여 지식‑교양인의 자기존재의 바탕인 성찰의 권능을 거세시킨다. ‘아이’가 그들에게 오직 필요한 것은 국가가 자신의 담당 지구인 ‘99구’에 할당한 심지어 그 할당량을 초과한 생산에 목숨을 건 생산지상주의를 맹목적으로 수행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이’는 국가의 최고 상부로부터 생산력 향상의 영웅으로 인정받는 것을 절대지상의 목적으로 삼을 뿐이다. 교화범들을 대상으로 한 상벌제를 채택하고 서로 감시하는 시스템을 마련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 일환으로, ‘아이’는 작중인물 ‘작가’에게 “99구 죄인들의 실상을 낱낱이 기록해서 제출하”(41쪽)하는 ‘죄인록’ 집필을 허락하는 조건으로 책읽기와 글쓰기의 부분적 자유를 누리도록 한다. 

옌롄커의 ‘사서’는 이렇듯이 ‘작가’가 ‘99구’에서 일어나는 생산지상주의와 연관한 상세한 일들을 들려준다. “가장 변경의, 가장 황허에 인접한 곳”(45쪽)에서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둠과 공포의 현실을 응시한다. 그러니까 ‘사서’를 이루는 네 종류의 책과 서로 다른 네 종류의 글쓰기는 ‘99구’의 어둠과 공포의 현실을 겨냥한 것으로, ‘99구’는 ‘대약진 운동’ 시기 중국에서 일어난 특정한 노동 교화소의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서구의 근대를 빠른 시기에 따라잡고 그것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는 중국식 사회주의 근대화 프로젝트가 낳은 모순과 문제점을 옌롄커의 소설쓰기로 대응한 셈이다. 

4.
이와 관련하여, 소설 속 여러 사건들이 있는데, 그중 몇 사례를 들어보자.

강철 생산량을 파격적으로 늘리기 위해 ‘99구’에서는 흑사 제련술을 개발한다. 흑사 제련술은 새롭고 파격적인 것으로 간주돼, 철의 원료를 수입할 필요 없이 황허의 자연 모래를 이용하여 강철 생산이 가능하므로 중국의 자생적 근대화에 박차를 가함으로써 머지않아 서구의 근대를 따라잡고 능가할 수 있는 자신감을 부여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제련 기술은 과학적 엄밀성을 요구하는바, 흑사 제련술로는 최상급 강철 수준에 못 미치는데도 불구하고 관련 기관은 ‘아이’에게 강철 생산에 관련한 거짓 지시도 모자라 농업 식량 생산의 증대를 위한 새로운 제안을 한다. 여기서, ‘대약진 운동’의 일환으로 강철 생산의 증대에 따른 재래식 용광로의 과학적 한계와 그것을 운영하는 데 따른 문제, 그리고 인민공사를 중심으로 한 농업 생산량 증대를 위한 농촌의 근대화 프로젝트에 수반한 당 관료의 부정 부패에 대한 옌롄커의 문학적 비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식 사회주의 근대화 초기에 빚어진 어둠과 공포를 옌롄커는 응시한다. 

이러한 응시는 중국의 대기근을 맞은 현실에 대한 재현에서 한층 더욱 짙은 어둠과 공포의 서사로 나타난다. ‘99구’의 교화범들은 대기근 속 절대생존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삶을 보인다. 대기근 사태에 지식‑교양인의 존재형식은 사치스럽다. 더 이상 먹을 것이 없는 극한의 상황에서 그들은 죽은 시체의 살점을 떼어내 먹으면서 목숨을 가까스로 연명해나간다. 이 극한의 현실에서 ‘작가’는 어떻게 해서든지 해결책을 찾아보려고 ‘99구’를 떠나 도움을 상부에 요청하려고 하지만, 그는 “가장 최고 상부가 대기근 중에는 누구도 자신의 마을이나 지역을 떠날 수 없으며 자신이 있는 곳에서 몇 명이 굶어 죽었는지 외부에 발설할 수 없다고 정했다더군요.”(511쪽)와 같은 절망과 환멸의 전언을 전달할 뿐이다. 비단, 이것이 1950년대 후반 중국의 대기근의 현실에만 해당되는 것일까.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팬데믹 초기 거의 예외 없이 전 세계의 일상에 삽시간에 퍼져나간 바이러스에 대한 무지와 공포는 사회적 단절과 격리, 그로 인한 인간 존재의 극심한 소외에 직면하지 않았던가.

5.
옌롄커는 ‘사서’의 결미‑‘시시포스의 신화’에서, 앞서 살펴본 중국식 사회주의 근대화의 프로젝트와 연관한 문제들과 대기근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인간존재의 어둠을 끝까지 응시한다. 이것은 시시포스의 신화적 진실에 대한 관념적 추상에 기대는 것과 다른 차원, 달리 말해 시시포스가 바위를 굴리는 방향과 무관하게, 바위를 굴리는 (보이는) 행위에 따른 논리관계만 주목하는 게 아니라 시시포스의 행위에 보이지 않는 진실과, 그 진실에 가려져 있는 또 다른 진실을 찾는, 옌롄커의 말을 빌리자면 ‘신실주의(神實主義)’의 글쓰기 미학을 추구한다. 어둠과 공포에 대한 ‘신실주의’ 글쓰기는 그러므로 문제적이다.


# 고명철

1970년 제주 출생.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998년 <월간문학> 신인문학상에서 <변방에서 타오르는 민족문학의 불꽃-현기영의 소설세계>가 당선되면서 문학평론가 등단. 4.3문학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세계문학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연구와 비평에 매진하고 있다.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문화)을 공부하는 ‘트리콘’ 대표. 계간 <실천문학>, <리얼리스트>, <리토피아>, <비평과 전망> 편집위원 역임. 저서로는 《세계문학, 그 너머》, 《문학의 중력》, 《흔들리는 대지의 서사》, 《리얼리즘이 희망이다》, 《잠 못 이루는 리얼리스트》, 《문학, 전위적 저항의 정치성》, 《뼈꽃이 피다》, 《칼날 위에 서다》 등 다수. 젊은평론가상, 고석규비평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mcritic@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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