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94) 아이 행실과 심술은 집안의 선천성으로 간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편집자 글]


* 몽니 : 받고자 하는 대우를 받지 못할 때 내는 심술
* 우던(덥덜) : 종내기, 집안(혈통-가문), 선천성

그 사람을 제대로 알려거든 그 근본, 그러니까 집안의 조상 이력이며 부모를 보라 한다. 그 집안에 흐르고 있는 피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사진=픽사베이
그 사람을 제대로 알려거든 그 근본, 그러니까 집안의 조상 이력이며 부모를 보라 한다. 그 집안에 흐르고 있는 피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사진=픽사베이

사람의 심성은 유전적이다. 얌전하고 온순하다든지 거칠고 독단적이라는 그 사람의 성격은 타고난 것이므로 그 집안의 혈통을 물려받은 경우가 많다. 부전자전, 그 애비에 그 자식이란 말에 잘 함축돼 있다. 아이 때부터 어딘가 모르게 집안 ‘티’를 낸다는 얘기다.

흔히 항간에서 이런 말을 한다.

“다른 건 모르키여마는 피사 속여지느냐? 그 집안 조손 아니냐게(다른 건 모르겠지만 피야 속일 수 있느냐? 그 집안 자손 아니냐.)”

물론 인격 수양을 통해 좋은 심성을 기를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바탕을 이루는 품성은 어딘가 모르게 남아 있게 마련이라는 말이다. 그 사람을 제대로 알려거든 그 근본, 그러니까 집안의 조상 이력이며 부모를 보라 한다. 그 집안에 흐르고 있는 피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 집 촘 좋은 덥덜더리여. 놈안티 궂은 소리 혼마디 모르곡, 성질이 대낭고치 꾸짱허연 바른말만 헌다(그 집 참 좋은 집안사람들이다. 남한테 궂은소리 한마디 할 줄 모르고, 성질이 대나무같이 곧아서 바른말만 한다.)”

행여 몽니 궂은 집안으로 알려지면 그 후손들이 알게 모르게 손해나 상처를 입게 될 터이니, 문제다.

하지만 ‘아무개 집’이라 해서 그런 집안이 있는 게 인간 세상이다. 하기는 그런 심술이나 부리는 집안사람들이 거들먹거리며 잘 사는 세상이라 말문이 막히곤 한다. 그런 자들이 바로 갑질 하는 자들이 아닌가. 세상은 참 고르지 못하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고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다. 이치를 익히고 사람의 도리를 애써 배워 행하면, 그 유전인자라는 것도 점차로 변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험한 집안에서 선행(善行)을 함으로써 세인들의 입에 회자되는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이를테면 중죄인이 개과천선해 새사람이 되기도 하지 않는가.

‘아이 행실광 몽닌 우던으로 간다. (아이의 행실과 심술은 집안에서 비롯된다)’

윤리적인 노력으로 한 방에 허물어 버렸으면 좋을 말이다.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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