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택의 탐나는 올레] (21) 한림읍 대림리~애월읍 고내리

길을 걷는다는 것은 한권의 인문학 서적을 읽는 재미와 닮았다. 역시 걷기를 좋아하는 것은 그 속도가 느리기 때문일 것이다. 삶의 속도가 너무 빠르니 삶의 속도를 늦추는 걷기야 말로 우리를 치유하고 성찰하게 한다. 유년시절 불가의 출가자로, 환속해 문화재 전문 공직자로, 세 권의 시집을 낸 시인으로, 공직 퇴임 후에는 다시 명상 간경하는 불가의 시자로 돌아가 끊임없는 자기 수행의 길을 걷고 있는 윤봉택 시인이 제주올레 1~26코스를 따라 그 길과 마을에 깃든 흥미로운 제주(탐라) 이야기를 격주로 집필한다. 탐라에서 제주에 이르는 설화와 전설, 신화와 역사를 넘나 드는 시인의 해박하고 담백한 언어를 올레길에서 듣는 재미에 빠져 보시라. / 편집자 글


누구나 제주올레 15-B 코스에 닻을 내리면 길을 잃지 않는다. 

그 달빛 따라 순례하는 올레의 마을, 포구, 해안마다 달빛을 안아 띄우기도 하고, 그 달빛으로 노를 저으며 별빛 물길을 열어 간다.

유독 ‘서목안’에는 ‘동목안’보다 월림·월령·명월·애월 등 달과 관련된 마을 이름이 많다. 지리적으로 서쪽이라서 라기보다는, 자연과 어우러지며 시대를 관조해온 풍류와 여유로운 멋스러움이, 정월오름·명월오름·명월대·월대를 빗어내면서, 바람의 신 영등할망이 하늘의 달을 ‘서목안’ 한마당으로 당겨 놓으신 것은 아니었는지.

그 올레에 서면, 한여름 뙤약볕도 가을 별빛으로 변하고,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도 마음은 설렘의 돛을 올린다. 일파만파가 아니라, 수만의 물결 고랑마다 그리움의 별 항아리를 띄우며, 억겁으로 빚어온 달님 항아를 노래한다. 

제주올레 15-B코스는 2017년 4월 22일 열었다. 한림항 비양도 도선 대합실 제주올레 15코스 출발점에서 대림리, 한수리, 수원리, 용운동, 귀덕2리, 나신동, 장라동, 장흥동, 귀덕1리, 사동, 복덕개, 하동, 금성리, 곽지리, 애월리, 한담동, 서하동, 용해동, 동하동, 고내리를 거쳐 종점 고내포구까지는 13km·33리 올레이다.

15코스 안내센터에서 대림리·한수리를 지나 ‘고락코지’ 넘으면, 큰물개(대수포구)이다. 여기서 마을 안길 따라 가면, 수원리마을회관 서쪽에서 제주올레 15-A·B코스가 나눠진다.

귀덕리 습지 소못지. 사진=윤봉택
귀덕리 습지 소못지. 사진=윤봉택

여기에서 용구왓길 따라 서쪽으로 100m 남짓 가면, 농산물유통센터 북동향이 ‘오로코미’이고, 좀 더 가면 귀덕리 습지 ‘소못지’이다. 서쪽 해안으로 가면 남쪽이 용운동 포구이며, 여기에서 귀덕2리 나신동이 시작된다.

우지연대가 있는 나신동에는 해안가에서 솟아나는 ‘나신물, 굼둘애기물’등 용천수가 많다. ‘굼둘애기물’은 귀덕2리 라신동의 동쪽 해안가에 있는 용천수이다. 귀덕2리 장로동과 라신동의 경계를 이루는 해운사 해안가 풍체 앞에 위치해 있는 이 굼둘애기물은 바위틈에서 생수가 솟아올라 언제나 깨끗하고 시원하며 물이 풍부하여 여름철과 백중날 이곳에서 목욕하고 물맞으면 잔병이 없어진다는 약수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진질’은 귀덕2리의 옛 지명이다. 그 물길 올레 해안 따라 가면, ‘한지레원, 붕도산·분동산, 진질코지, 소원’ 위에 진질개포구를 안고 있는 2011년도에 개교된 한수풀해녀학교와 포구 입구 동쪽에 도댓불이 포구를 지키고 있다.

고샅길 닮은 장흥동 올레 언덕을 지나면, 두 개의 바위섬으로 이뤄진 석천도의 거북등대가 보인다. ‘족은여, 큰여’로 이뤄진 이 석천도는, 지금의 귀덕리의 지명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궤물동산’을 지나면 귀덕포구 모살개이다. ‘모살개’ 불턱 지나 ‘되물’ 넘기면, 영등하르방·영등할마님·영등대왕의 석상과 함께 영등신과 관련된 여러 석상이 즐비하게 해안선을 지키고 있다.

귀덕리 장흥동 올레.
귀덕리 장흥동 올레.
모살개.
모살개.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8에서 ‘전라도 제주목’ 부분에 영등신 맞이는 “매년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날까지 남녀 무당이 신의 기를 함께 받들고 경을 읽고 귀신 쫓는 놀이를 하는데 징과 북이 앞에서 인도하며 동네를 나왔다 들어갔다 하면서 다투어 재물과 곡식을 내어 제사를 지낸다. 또 2월 초하룻날 귀덕 김녕 등지에서는 나무 장대로 12지신 형상을 세워 신을 맞아 제사한다. 애월포에 사는 이들은 나무 등걸 형상으로 말머리 같은 것을 만들어 채색 비단으로 꾸며 말이 뛰는 놀이를 하여 신을 즐겁게 하다가 보름날이 되면 그만두는데, 그것을 연등(燃燈)이라고 하며, 이달에는 배 타는 것을 금한다”고 하였다. 

영등신은 바람의 신이다. 중국 강남 천자국에서 마지막 북서 계절풍을 몰고 서해바다를 건너 귀덕리 복덕개로 들어와서는 우도를 통해 육지로 북상을 한다. 이 15일 기간은 환절기에 해당한다. 환절기라 바람이 거세기 때문에 바다에 출어를 하지 않는다. 초하룻날 비가 오면 ‘우장쓴영등’이라고 한다. 이 영등신은 한라산 영실 오백장군에게 입도 신고를 한 다음, 어승생의 ’단골머리‘, 산천단, 산방산, 교래 등 도내를 다니면서, 바다와 육상을 풍요롭게 하는 모든 씨앗을 뿌리고 나서, 보름날 우도를 건너 북상을 한다.

‘복덕개’를 지나면, 정짓내라 부르는 금성천이고, 그 하구에 금성포구가 있다. 정짓내를 가르는 비단교를 건너면, 지난날 금성리에서 한지를 생산하였던 ‘지장지’ 터가 있고, 제주올레 15-B 코스 중간 스탬프가 있는,  남당수 정자 그 아래에는 종이 재료를 운송하였던 ’새개‘라는 포구가 있었는데, 애월, 곽지, 어도, 어음 주민을 동원하여 개조한 포구였다. 

영등하르방, 영등할망, 영등대왕상.
영등하르방, 영등할망, 영등대왕상.
복덕개.
복덕개.

그 위 해변에 머리 일곱 개 돋은 용의 형태인 ‘칠두용지(七頭龍地)’라는 명당이 있는데 현재 용문사 위치이다.

‘촌물빌레’의 곽지노천탕을 지나면, ‘진모살’ 곽지백사장이다. 그 초입에 열녀 사노 김천덕의 정려비가 세워져 있다. 백사장 지나 ‘진모살개’를 건너면, 곽지해안길 지나 한담질 가는 올레이다.

애월 한담질 다한 곳에 한담동포구가 있고, 바로 곁에 해양문학의 백미라 부르는 ‘표해록’의 지은이 장한철의 생가이다. 장한철은 과거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1770년 12월 25일 육지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 표류를 하였다. 그는 오키나와, 전남 청산도를 거치면서 1771년 5월 8일까지의 노정을 기록하였는데, 단순한 표류기가 아니라, 해양 문화 지리까지 해박한 살핌의 흔적이 깃들어 있는 표해록이다.

열녀 사노 김천덕 정려비.
열녀 사노 김천덕 정려비.
한담동 장한철 생가.
한담동 장한철 생가.

‘새아진부리’ 지나 ‘애월코지, 등여’ 지나면, 올레 동쪽에 애월연대가 있다. ‘작지원, 너븐여, 베락코지, 쉐머리코지’ 건너면, 해안선 따라 애월환해장성이 있다. 1975년에 돌로 지어진 애월리 용해동 좀녜탈의장에서 ‘큰원, 뒷개, 납작여, 진여’를 지나오면, 올망졸망 용해마을 올렛담이 정겹다. 

애월남당에서 애월항 ‘안개’를 안아 애월진성에 닿으면, 성벽 위에 남아 있는 미석 위에 여장과 총안이, 지금도 왜구를 감시하는 듯 날카롭다. 

고내리 본향당 지나 고내포구에서 하선하면, 포구 서쪽 도댓불 모루에 보호탑이 세워져 있고, 포구 동쪽 남당을 지나면, 제주올레 15-B 코스 끝점 올레센터에서 청음 김상헌의 탐라순력은 관덕정까지 계속 이어진다.

애월포구.
애월포구.
애월진성.
애월진성.
고내포구.
고내포구.

* [윤봉택의 탐나는 올레]는 제주의소리와 서귀포신문이 공동기획으로 마련한 코너로 격주로 게재합니다. 


# 윤봉택

법호 相民.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 태어나 해인사로 출가하여 1974년 해인사승가대학을 졸업하였다. 1991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제주바람)이 당선되어 등단하였고, 강정마을에서 포교활동하면서 농사 짓다가 서귀포시청 문화재 전임연구원으로 23년 공직 근무를 마치고, 2014년부터 쌍계암 삼소굴에서 명상·간경·수행하면서 시민과 함께 소통하고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