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영해 수호에 앞장서온 한 예비역 해군 제독이 자신의 게으른 제주살이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다. 

30여 년의 군 생활을 마치고 제주 한림에 터를 잡아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신정호 예비역 해군 준장의 ‘간세의 삶을 그리다(소울앤북)’ 산문집이다. 

‘간세’는 제주어로 ‘게으름’이라는 뜻이다. 제주도 올레길 주요 길목마다 하늘색 옷을 입고 서 올레꾼들의 발길을 안내하는 말의 형상을 지칭하기도 한다. 

저자는 3년 전 주변 사람들의 걱정을 뒤로하고 새로운 고향을 만든다는 마음으로 제주살이를 시작했다. 평생 군인으로 살아온 세상과 평범한 촌부로 살아가는 세상은 큰 차이가 있지만 스스로 생각을 바꾸고 낯선 이웃들과 사귀면서 비로소 고향과 같은 따뜻한 정을 느낀다.

제주에 정착한 뒤 사계절이 지나고 어느 정도 살림살이를 마련, 안정적인 삶을 살게 된 그는 틈틈이 기록해 둔 이야기를 모아 생애 첫 산문집을 발간했다. 

앞서 지난해에는 초보 제주살이 이야기 ‘트멍에 살어리랏다(소울앤북)’을 펴내기도 했다. 

저자는 작가의 말을 통해 지나는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하거나 여행에 지친 나비들의 쉼터가 되어주는 간세의 삶을 하나씩 그려 나가기로 마음먹었다고 밝힌다. 

저자는 “누구나 자신이 밟아온 삶에서 벗어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내가 만든 경험의 울타리가 나를 가두려 하고 미래의 불확실성이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고 말한다. 

이어 “새로운 고향을 만든다는 설렘 하나로 좌충우돌하면서 하루하루를 이어왔다. 여럿이 힘을 합쳐야 빛낼 수 있고, 빈틈없는 일 처리를 인생 최고의 가치로 여겨왔던 지난날의 방식은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또 “이곳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에서야 트멍(틈새)이 주는 삶의 풍요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됐다”라면서 “물과 인심이 좋은 한림은 태양이 뜨겁게 솟아오르는 아침 풍광보다 우아하게 저무는 저녁이 더 아름다운 곳”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철 따라 올레나 오름을 다니면서 자연에 순응하는 법을 익혔다. 이제야 뼛속까지 군인이었던 30여 년의 흔적들이 하나둘 지워지기 시작했다”며 “올레의 갈림길에서 바른길로 인도하는 간세처럼 누군가는 중심을 잡고 나아갈 방향을 가리켜야 한다”고 말했다.

저자는 “제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많은 분께 트멍의 행복과 더불어 간세의 여유로운 삶이 함께하길 바란다”고 했다. 

저자는 해군사관학교와 미 해군 Naval Command College를 졸업하고 독도함 함장과 해군진해기지사령관을 역임했다. 지금은 ‘내 마음이 머무르고 이웃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인 제주에 정착해 작가로서의 인생 2막을 열어가고 있다.

217쪽, 소울앤북,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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