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96) 양첩한 사람 동지섣달에 얇은 옷도 그립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편집자 글]


* 양첩헌 놈 : 양첩한 사람
* 홑옷 : 속을 넣지 않은 얇은 옷, 단의(單衣)

엄동설한에 변변히 옷 하나 입지 못하는 고초를 겪어도 싸다는 강한 의미를 갖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엄동설한에 변변히 옷 하나 입지 못하는 고초를 겪어도 싸다는 강한 의미를 갖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우리나라는 일부일처를 강조하면서도 실제는 일부다처가 허용된다. 한 남자가 결혼한 부인인 본처(조강지처)와 단둘이 평생을 살아 백년해로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첩을 데리게 되면 뜻하지 않은 갖가지 순탄치 못한 일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본처와 첩 사이가 시기 질투해 집안이 시끄러운 것은 말할 게 없고, 양쪽에서 태어난 자식 간에도 뜻하지 않은 갈등이 생겨 골머리를 앓게 되기 십상이다.

밭을 놓고 다투고 집을 두고 싸운다. 심할 경우는 둘로 나뉘어 어려운 국면이 되기도 한다. 본처와 첩이 자연, 제 자식을 두둔하고 옹호할 것은 불문가지 아닌가. 이렇게 갈라치기가 될 경우, 난감한 처지가 되는 것은 두 여자를 거느린 남편일 수밖에. 도리가 없는 노릇 아닌가.

하다 보면, 본처에게도 눈 밖에 나버려, 첩에게도 대접을 받은 수가 없게 되고 만다. 대우를 받기는커녕 이쪽에서도 쫓겨 나지, 저쪽에서도 따돌림을 받게 되는 것이다.

오죽 홀대를 받았으면, 여름에 입는 홑옷도 제대로 얻어 입지 못하는 처량한 신세가 될 것인가. 이쯤 되면,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의 체신은 말할 것 없고, 주위로부터 손가락질당하는 처지가 되고 말 것은 뻔하다. 세상에 이런 개망신이 없다.

‘양 첩헌 놈 동지섣돌에 홑옷도 그립나.’

부인 둘을 두었다가 신세 망친다는 경계의 말이다. 엄동설한에 변변히 옷 하나 입지 못하는 고초를 겪어도 싸다는 강한 의미를 갖고 있다. 비슷한 말로 ‘양첩헌 놈 때 굶나’라고도 말한다. 한겨울 혹한에 옷도 변변히 입지 못하는 신세나, 끼니를 굶는 처지가 된다 한 것이나, 그게 그거, 오십보 백보 아닌가.

한 가정을 거느리는 가장이 어떠해야 한 것인가, 그 정도(正道)를 엄중하게 보여주고 있다. 집안 식솔들을 향해 호령해야 할 어른이 죄인처럼 추위에 벌벌 떨고 있지 않은가.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