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297) 어린아이 발목에는 발동기 달린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것을 빌려 지금을 말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으면 미래 또한 없지 않은가. 옛 선조들의 차고술금의 지혜를 제주어와 제주속담에서 찾는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지혜가 담겼다. 교육자 출신의 문필가 동보 김길웅 선생의 글을 통해 평범한 일상에 깃든 차고술금과 촌철살인을 제주어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편집자 글]


  * 귀마리 : 발목
  * ᄃᆞᆯ린다 : 달린다, 붙는다

  
너무 급해 이리저리 날뛴다고 천방지축(天方地軸)이라 한다. 어린아이 행동거지에 딱 맞는 말이다. 아이들이 얼마나 잽싼가. 발 산 즘생(발 성한 짐승)이라 빗대기도 하지 않는가. 어른이 집에 가만 있으라고 호령친다고 그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는 게 어린아이다.

성장 과정에서 으레 겪게 마련인 발달단계인데, 어떡할 것인가.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다 철이 들기 전에 거치는 것이니 조금도 염려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밖에 나가 친구들과 왁자지껄 어울려 놀지 않는 게 비정상이라 생각하면 좋다.

어릴 적 동네 아이들과 한 패가 돼 산으로 바다로 돌아다니던 추억을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나뭇가지를 꺾어 칼 삼아 전쟁 놀이를 하고, 싫증이 나면 삘기를 뽑아 먹고. 또 있었다.삘기를 뽑에 호주머니에 잔뜩 담아 가지고서 따먹기 내기를 했다. 손에 넣고 휙 흩뿌려 생긴 공간에다 손에 쥔 삘기를 세워 그게 성공하면 손에 잡은 수만큼 상대에게서 받는 방식…. 

산에서 실컷 놀았다고 끝나지 않았다. 물때에 맞춰 오후 시간(물이 빠지는 간조 때)이 되면 떼 지어 바다에 뛰어들었다. 종일 놀다 긴긴 여름 해가 저물 무렵에야 집에 돌아갔다가 어른에게 두어 사발 욕을 먹곤 했으니까.

 ‘어린아이 귀마리엔 발동기 ᄃᆞᆯ린다’

참 절묘한 표현이다. 어린아이 발목엔 웬 발동기를 달아맸는지 퍼뜩하면 온데간데없이 집에서 사라진다 함이다. 얼마나 잽쌌으면 이렇게 말했겠는가. 기가 막힌 빗댐이다. 발목을 귀마리라 한 표현도 참 오랜만에 들어본다. “푸더지멍 귀마리가 꺾어져시녜(넘어지면서 발목이 부러졌다고 하네.)” 얼마 전까지도 예사롭게 쓰던 말이다.

이젠 발동기란 말도 낯설게 들린다. 통통 소리를 내면서 살아나 기계를 돌리는 장치가 발동기다. 요즘엔 좀처럼 안 쓰이지만, 노를 젓다 이 장치를 장착해 쾌속으로 달리는 배를 발동선이라 했었다.

발목에다 발동기를 달아 놓았으니. 속도가 얼마나 빠르겠는가. 더군다나 안 그래도 빠른 아이 발목에다 달아 놓았으니 말이다. 그 장면을 연상하니 웃음이 절로 난다.


#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 자리 ▲읍내 동산 집에 걸린 달락 외 7권, 시집 ▲텅 빈 부재 ▲둥글다 외 7권, 산문집 '평범한 일상 속의 특별한 아이콘-일일일'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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