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포에지, 1983년작 허영선 첫 시집 ‘추억처럼 나의 자유는’ 복간

작가 겸 4.3연구자 허영선의 첫 시집이 다시 세상에 나왔다. 29년만이다.

출판사 문학동네가 최근 복간한 시집 ‘추억처럼 나의 자유는’은 1983년에 처음 발표됐다. 시인이 1980년 ‘심상’ 신인상으로 등단한 지 3년 만이다. 문학동네는 국내 주요 시인들의 옛 시집을 다시 발표하는 작업 ‘문학동네 포에지’를 이어오고 있다. 60편까지 진행했는데 허영선 시인의 책은 53번째다. 

‘추억처럼 나의 자유’는 시 60여편이 실려 있다. 제주 자연과 역사를 비롯한 각종 대상들을 마주하며 풀어내는 심상은 심오한 듯 때로는 날카롭다. 억압받던 시대 분위기에 20대 시절을 보내면서, 청년 허영선이 품은 진지·솔직한 사랑에 대한 고민들도 만날 수 있어 새롭다.

추억처럼 나의 자유는
허영선

내가 아직 들풀이었을 때
벌판은 쏟아져 강으로 흐르고,
흘러서 나의 자유는
탓할 것 없었네

철든 바람과도 입맞추고
목화처럼 번져,
하늘이 강물로 풀려서,
흘러서 돌아오는 강가에 서서
나의 자유는
오랑캐꽃

미나리아재비
민들레 씨앗으로 날아오르던 
내 살점의 꽃들

예감하는
소금기로도 남아 있었다


칸나를 위하여
허영선

목숨이야
한낱 답답함일 뿐

출렁이는 살 속마다
피를 모아뒀었지
바람의 성긴 결, 그만한 접촉마저
숨가빠지는 진홍

들여다보면
정맥의 푸른 줄기 사이로
섬 한 채
목숨처럼 떠다니고 있다

1983년 12월, 당시 허영선은 책머리에서 “부끄러움과 어둠의 밀도, 잠과 꿈, 나를 오랫동안 묶어두었던 모든 말에 대해 확연해지는 이 미안함, 나는 이것들로부터 우선 탈출하고 싶다”며 “어둠과 빛, 시를 쓴다는 일은 모색과 실험을 통해 나를 확인하는 일인 것 같다. 뮤즈에게 감사를”이라는 소감을 남겼다.

그리고 29년이 지난 2022년 9월, 허영선은 책머리에 “문득 고개를 들고 보니 파도를 벗어나고 싶어하던 너는 끝내 그 속에 있다. 칸나가 붉은 바다로 가고 있다. 지금 사라진 자들의 그날들을 찾는 나는 어쩌면 그 무렵 이미 모호하지만 그 소리들을 듣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라고 스스로를 돌아봤다.

시인 허영선은 1980년 ‘심상’ 신인상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추억처럼 나의 자유는 ▲뿌리의 노래 ▲해녀들 등이 있다. 김광협문학상을 수상했다.

96쪽, 문학동네,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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